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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경 Aug 23. 2024

두 스승의 삶

귀국하자마자 심리학,철학 강의가 연달아 있었다.

시차적응도 하기전에 바로 A,D랑 뒤늦은 휴가차, 2박 3일 워터파크도 다녀왔다. 휴가지에서 줌으로 학회 특강도 참석하였다. 다음학기 수강신청은 아는 선생님이 연락하지 않았다면 깜박하고 놓칠뻔 했다.

너무 피곤하다.

거기서도 여기저기 하나하나 도장깨끼 하느라, 바빴다.

20년만의 미국행이었는데, 다시 또 내 생에 못 올수도 있다는 조급증으로 눈에 하나라도 더 담고 경험하기 위해 나름 계획을 세웠는데도 뭔가 급하게 허겁지겁 닥치는대로 해치운 느낌이었다.

중심을 잃으려고 할때마다 스스로 이번여행의 핵심이 무엇인지 되묻고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음악관련, 미술 관련 계획한 곳 가는거랑 D에게 잘해주자, 좋은 추억 남기자는 것이다. D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먼저 묻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에게 말하는 것만 묵묵히 들어주었다. 모르면서도 우기는 것은 짜증내지 않고 잘 타이르려고 애썼다. 니체는 사람은 자기 체험만큼만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백날 잔소리해봐야 경험 없이 깨달을 수 없다. 다행히도 타국에서 의지할 사람은 나뿐이라서 그런가, 생각외로 우린 갈등이 없었다. 그곳에선 사이가 좋았다.

되도록 팁을 꼬박꼬박 많이 주려고 애쓰기도 했다.학창 시절, 돈이 없어 팁 안주고 도망갔다가, 가방을 두고 나와 쪽팔림을 무릎쓰고, 다시 되돌아 가서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었다. 같은 아티스트 처지로, 거리 공연도 보는족족 관람후 팁은 빠지지 않고 줬다.

이게 가난한 학생과 사회인의 차이다. 정녕 미국은 같은장솔 돈 없을때랑 돈 벌고 난 후, 적어도 두번은 와봐야 한다. 경험과 생각의 갭이 훨씬 큼을 알 수 있다.

몸이 좋지 않아, 보스턴에서 Wally’s 재즈클럽 잼세션을 못간거랑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멘델스죤 오케스트라 연주를 예약해 놓고 못 갔는데, 그래도 무리를 해서라도 갈껄 그랬나, 후회가 남는다.

그나마 뿌듯한 것은 버클리 적, 피아노 스승, 닐 옴스테드(Neil Olmstead)랑 라즐로 가드니(Laszlo Gardony)두분을 만난 것이다.

닐은 직접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했다.

차도 없고, 대중교통로도 없고 도시에서 거리가 멀어, 살짝 고민했는데, 레슨받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택시를 잡아 탔다. 처음으로 사모님도 만나고, 선생님의 사는 모습들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학창시절에는 약간 깐깐하고 엄하신 모습이었는데 요즘 듣는 음악이랑 책들도 이것저것 소개하고, 아들내외랑 요트를 사서 주말이면 바다에 나간다며, 최근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고민중이라고 쉴새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저 오랫동안 못 본 친구같았다.

라즐로는 여전히 이런저런 공연들로 바빠서, 학교에서 리허설 마치고 나온 틈을 타, 딸이랑 잠시 봤다. 2주전에는 코로나에 걸려 아팠는데 지금은 회복되어 연주를 계속 다닐 수 있게 되었다며 그간 안부를 물었다. 라즐로 역시 닐과 비슷한 연배로 버클리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계속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둘을 보며, 나의 노년은 어떠할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도시에서 계속 일하는 모습이 나을까, 교외에서 그간 가지지 못한 여유를 즐기며 가끔씩 오는 제자들과 가족과 함께 하는 게 나을까?

정답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 된다는 점이었다.

대화 중에, 닐은 늦은 밤까지 매일 재즈클럽에서 연주하는 모습에 대한 회의를 보인 반면, 라즐로는 라이브 연주 자체에 대해 여전히 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과 의지를 보였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으면 그런 선택을 하게되고 결국 그런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역시나 중.용이다. 둘을 섞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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