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가 잘해준다.
싸울 일이 없다. 미국 여행동안 떨어져 있어서 일까? 한달에 한번정도 꼴로 크고 작은 언쟁이 있을법 한 우린데, 최근에 A는 잔소리를 하다가도, 한 템포 삼키며, 일절로 그치는 모습을 보인다. 2절, 3절 더 나아가는 법이 없다.
왜지?
A는 내가 변했다고 한다. 내가 박사학위를 시작하고 또다시 재미있고 몰두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이 생기고 부터 짜증이 줄었단다.
난 A가 변한 것 같다. 뭔가 나에 대해 내려놓았거나, 포기 했거나, 아님 A의 심경에 변화를 줄 사건이나 깨달음이 있는 게 분명하다.
동생에게 이야기 했더니, ‘공공의 적’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사춘기 D의 반항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둘만의 투쟁은 줄어들고 대신, 제3의 적인 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연맹을 맺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딸이 초딩에서 중딩으로 자리를 바꾸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우리 부부와의 주말 나들이를 거부하면서부터 부부 둘만의 시간이 많아지고 싸우고 미룰 일들도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둘만의 시간도 D가 친구들과 나가고,A마져 일이 생겨 빠져나간 공간에는 오롯이 나만 남는다. 나만 집을 지키는 주말이면 ‘결국 혼자인가!’ 쓸쓸해 진다.
이번 주말에는 A혼자, 친정에 가 있다.
우리 엄마, 아빠 보러 혼자 부산에 내려갔다. 연차가 남아서 월요일까지 휴가인데, D는 학교가야 하고, 나도 강의가 있어 못 내려간다고 하니, 자기 혼자 뵙고 오겠단다.
D 어학연수로 여름에 한달 동안 호주, 브리즈번에, 딸이랑 둘이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주말에 혼자, 딱히 할 일이 없다며 나한테 말도 안하고 A는 부산집에 다녀갔다.
셋이 뭉텅이로 움직여야 했던 시기도 이제 작별을 고하고, 사정에따라 유닛으로 움직이는 시기가 도래했다. 그래도 내 부모를 대신 지키는 남편이라니, 고맙다.
A는 항상 뒤에서 했다. 자랑하는 법이 없었다. 지나고 보면, 뒤를 쓸고 있었다. 그게 답답하기도 했는데, 가끔은 그게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문득 학창시절, 내가 좋아했던 선배가 자신에게 있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면, 몰래 그 쓰레기를 뒤에서 버려주는 게 사랑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불평해도 난 원래 그런 류의 남성을 좋아했던 사람인 것이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_ 이사야 45:15 KRV
나에게 있어, 신도 그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