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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마 May 04. 2020

만년필로 답안을 썼다가 답안지가 수해를 입으면 어떡하죠

그보다는 프릭션이 더 위험합니다

한줄요약: 세일러 극흑이 물에 안 씻겨서 막히면 끝장이라고들 하지만 물에 안 번지므로 이걸 쓰면 된다


트위터에서 만년필로 답안을 쓰고 싶은데 혹시나 답안지가 물에 번지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어떡하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글씨를 가장 빠르고 가독성 있게 쓸 수 있는 펜이 라미 만년필이라서 계속 만년필로 답안을 작성해 왔는데, 나도 저 걱정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별 일 없이 3년을 보내긴 했는데, 변호사시험이 치러진 후에 우리가 작성한 답안지가 바로 채점하는 교수님들께 가는 것은 아니긴 한데(복사해서 복사본을 보냄) 무섭긴 무섭잖아! 그래서 시험해봤다. 만년필로 답안을 작성한 후 물을 슬쩍 흘린 후 호다닥 닦아내면 글씨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환경

1) 사용된 종이: 고시서점에서 파는 답안지용 노트('제ㅇㅇ회 변호사 시험답안지'라고 되어 있는 바로 그거)와 변호사시험 모의시험 답안지(아마 학교에서 모의고사 치고 남은 거 가져왔던 종이 같음).

2) 물: 집에서 마시는 물... 수돗물 브리타 정수기로 정수한 거...

3) 답안지를 적신 시간: 답안지용 노트는 물 흘린 후 변호사시험 때 책상 위에 초콜릿 까놓고 힘들 때 집어먹는 거리에 즈음에 휴지 두고 손 뻗어서 두드려 닦아내는 정도. 변시 모의 답안지에는 물을 너무 많이 부어서 그보다 더 오래 걸렸음.


사용된 잉크 (주력으로 사용하던 건 파카 큉크 블랙이랑 오로라 블랙)

1) 라미 페트롤: 답안지용으로 쓰는 건 라미 블랙이긴 한데 시험 끝나고 이 색을 넣어서 그냥 이걸로 썼다. 블랙이랑 아주 큰 색 차이가 있는 건 아니라서 상관 없음. (이하 블랙 기준) 개인적으로는 답안지에 줄 생기는 정도가 좀 심한 것 같아서 잘 쓰지는 않았는데, 친구는 잘 쓰는 걸 보니 그냥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카트리지도 있고 병잉크도 있어서 시험 답안 작성 중에 갑자기 잉크가 끊길까봐 불안한 경우 제일 쓰기 편하다는 것 같았다.

2) 파카 큉크 블랙: 싸고 편해서 가장 많이 썼었다. 인터넷 기준 한 병에 만 원 수준. 근데 내가 써본 잉크 중에서는 진하지 않은 편이고 닳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긴 했다. 써본 잉크 중에서는 가장 편한 잉크였고 로스쿨 다니면서 두 병 정도 비웠다.

3) 세일러 극흑: 친구가 준 건데, 정말 아주 진하고 답안지에 줄도 안 생기며 예전부터 고시생들이 많이들 썼다는 잉크. 그런데 물에 안 씻겨서 한 번 막히면 끝장이라는 말을 듣고 무서워서 라미 만년필에 넣진 않았다. 그냥 다이소 만년필에 넣어서 가끔 써보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4) 오로라 블랙: 큉크보다 진하고 답안지 줄 생기는 정도가 가장 적은 것 같았다. (큉크에 비해) 좀 비싸서 그렇지 답안지용으로 가장 좋아하던 잉크.


...솔직히 저렇게 써놓긴 했는데 라미나 큉크나 오로라나 뭐 얼마나 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이렇게 몇 줄씩 써보자.

참고로 이정도면 글씨 못 쓰는 편 아닙니다(진짜). 우리 엄마 나 글씨 못 써서 교수들이 못 알아봐서 변시 떨어지면 어떡하지 고민했다고 함; 글고 저것보다 훨씬 못써도 교수님들은 악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서 어느 정도 알아본다고 합니다.


아이고 물을 흘렸네!!! 답안지 바꿔주세요 하기엔 시간이 없는데!!!!



결론: 살아남은 건 세일러 극흑 하나. 

오로라 블랙이 약간 덜 번진 것처럼 보이는데 아래쪽에 있어서 물이 좀 덜 묻었고, 워낙 가는 펜으로 썼더니 그렇게 보일 뿐. 큉크보다 진하고 예쁘긴 한데 손씻고 와서 답안지 쓰다가 으아악 하고 번지는 수준 등에 있어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근데 답안지 쓰다 물 흘리는 같은 게 흔한 건 아니다보니 심각하게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도 프릭션(지워지는 펜)이 더 문제지. 변시 때 실제로 프릭션으로 답안을 작성하는 사람을 봤는데(?!) 다른사람 시험보는데 저기요 그거 쓰시면 안돼요...; 라고 해서 갑자기 컨디션 깨부술 일은 아니다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거야말로 정말 위험하지 싶다. 가다가 뜨거운 거 하나 만나면(뭐 이럴 일도 얼마나 있겠냐 싶지만) 글씨가 호로록 사라지잖아. 누가 학부 때 프릭션으로 답안 써냈다가 동그랗게 사라져서 교수가 ? 써놨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겨울이니까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있지만(?) 지운 것도 같이 살아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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