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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14. 2023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대하는 브런치 6년 차 작가의 자세

떨어질 걸 알지만, 같이 내보는 겁니다?

2018년에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 올해로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글을 100편도 발행하지 않을 만큼 게으르고 불규칙적으로 썼지만, 연차로 따지면 나름 브런치계의 고인물이다. 그래서일까.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이상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게 브런치북 프로젝트는 안될 걸 알면서도 사는 복권과 비슷하다. 평생 내 손으로 복권을 사본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만, 경험한 바로는 5천 원짜리 복권일지라도 무시못할 마력을 지니고 있다. 복권의 힘은 실로 강력해서, 비현실적이면서 상당히 구체적인 상상(망상)의 세계로 나를 끌고 가 잠을 설치게 만든다.


당첨만 되 봐! 전세살이 끝내고 아파트부터 사고 말 거야. 학자금 대출 싹 갚고. 평생 못 가본 해외여행도 한 달 정도 갔다 오고. 참, 남편 자동차 할부금도 갚아야지. 시어머니가 가고 싶어 하셨던 북유럽 여행도 보내드리고. 아이들 독립할 때 쓸 보증금은 적금으로 묶어놔야겠지?


에이, 그만 생각하고 자야겠다.


잠깐만, 언니랑 오빠들하고도 좀 나눠야 하는데. 한 천만 원, 아니 3천만 정도? 자주 용돈도 주지 못한 조카들한테는 백만 원씩. 형제 5명에 조카 6명이니까, 그것만 해도 1억 5천6백만 원이네. 뭐 그 정도쯤이야.


이제 진짜 자자.


아니, 복권 당첨된 거 지역에 소문나면 그냥 넘어가기 그런데. 함께 책모임 하던 엄마들 불러서 맛있는 식사라도 대접하고. 지역아동센터에 기부도 하고. 10년 넘게 그곳에서 고생하시는 N선생님께 휴가비라도 지원해 드려야지. 거래처랑 지인들한테 과일이라도 한 상자씩 보내고..

(최근에 추석이라 몇 곳에 과일을 보냈는데,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복권 당첨된 걸로 오해 마시길.)


당첨번호가 발표되는 토요일은 카페인을 쏟아부은 것처럼 아침부터 심장이 벌렁거린다. 쓸데없이 거실과 주방을 분주히 오가고,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아서도 다리를 달달거리며 떤다. 그러다 번호가 발표되는 저녁 8시 반,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붙잡고 '로또 당첨 번호'를 검색한다.  그리고 번호를 하나, 하나씩 대조해...


에라이.


그 순간 나는 황홀하던 상상의 세계로부터 패대기 쳐진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로또 구입이 쓸데없는 헛짓거리였다는 걸.


3개나 맞혔지만 당첨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복권. 며칠간 즐거웠다, 잘 가라~
남편이 선물 받았다며 준 복권. 이천 원에 당첨됐으나 돈 받으러 왔다 갔다 하는데 드는 차비가 3천 원이라 수령 포기.


브런치북 프로젝트는 로또만큼 물질적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첫 번째 출간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로또 당첨만큼이나 커다란 사건일 것이다. 나는 지난 2년간 두 권의 브런치북을 프로젝트에 응모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과는 당연히 낙방.


브런치 6년 차에 낙방 2회 경험자로서 올 해는 마음이 조금 다르다. 브런치에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 브런치북이 선정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겠지만, 브런치팀의 입장은 어떨까 생각해 본 것이다.


업무와 관련되어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사업 심의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주최 측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응모해서 프로젝트가 흥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그 사업을 유지할 명분이 생기니까. 예산이 투입되는 프로젝트에 참여율이 저조하다? 그러면 그 사업은 길게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렇잖아도 일반 유저들의 숫자가 많지 않은 브런치에서, 글을 생산하는 작가들마저 참여가 시들하면 어찌 될까. 브런치팀으로서는 기운이 빠지는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플랫폼의 혜택을 입은 사람으로서 이 프로젝트가 흥행할 수 있도록 나름 제 몫은 해야 하지 않을까. 브런치 입장에서는 1년의 성과를 가늠하는 축제나 다름없는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어차피 떨어질 걸 뭐 하러 응모해?' 하며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건, 브런치 6년 차로서의 마음가짐이 아닌 것 같다.


하나의 브런치북이라도 더 응모해서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브런치팀이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명분에 조금은 보탬이 될 테니. 낙방이 예상되더라도 써둔 글이 있다면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응모하는 것이 마땅한 자세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작년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한 작품의 수는 8,150편. 브런치팀 공식 계정을 구독하는 유저가 238만 명이니 그중에 0.34%만이 응모했다. 응모한 8,150편 중 대상 10 작품과 특별상 40 작품을 더하면 모두 50편으로, 상을 받는 비율은 고작 0.6%에 불과하다. 대상만으로 좁히면 선정작은 겨우 0.1%밖에 되지 않는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에 의하면 다수를 위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그러니 1%도 되지 않는 선정작을 바라보는 나머지 99%의 작가들은 씁쓸할 수밖에.


하지만 괜한 기대로 김칫국만 마셨다는 자괴감이 두려워 응모하지 않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많이 모이고 판이 커져야 기회도 그만큼 느는 법. 인기가 많은 사업은 함부로 축소하거나 없애기 어렵지만, 참여율이 고만고만한 사업들은 예산에서부터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러니 매거진에 열 편의 글이 있는 브런치 작가라면 올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해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중요한 건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 우르르 응모하고 우르르 탈락하자(같이 해요!ㅎㅎ). 그러면 부끄러움도 덜하다(미래의 나에게 세뇌하기...). 내가 아는 모든 작가님들에게 브런치북 프로젝트 참여를 독려해보아야겠다. 개인의 성취와 더불어 우리가 사용하는 플랫폼의 미래를 위해.


어차피 결과가 발표되는 연말 즈음이면 이런저런 일을 마감하느라 바쁘고, 사람들과 모임도 많아지니 괜한 허탈감에 씁쓸해할 시간도 많지 않을 터. 오히려 프로젝트에 응모도 하고 한 해를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면 그만이다.


또 아는가. 나는 아니더라도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들 중에 낭보를 전해줄 분이 계실지. 아님 0.6%의 확률로 자신의 브런치북이 선정될지도...(아, 이런 생각하면 오늘 잠 못 자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 그 떨림도 나쁘지 않잖아요?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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