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Apr 22. 2022

6개월 만에 브런치로 돌아온 이유

180일간 내 글을 기다린 사람이 있을까?


브런치에 손을 놓은 지 6개월. 그간 다른 이들의 글을 읽지도, 앱에 잘 접속하지도 않았다. 핑계는 분명했다. 건강 문제로 1년이나 미루어진 논문을 어떻게든 완성해야 한! 지난 한 해 동안 내 글쓰기의 1순위는 언제나 논문이었다.      


세상 재미없는 논문 쓰기와 자유로운 글쓰기의 기쁨을 앗아가버린 발간물과 보고서용 글쓰기ㅠㅠ


2순위는 8년 넘게 운영해오던 공간을 잘 정리하는 것. 이것은 논문과도 연결된 일이었다. 논문의 주제가 주민들과 운영해온 공간의 역사를 통해 커뮤니티 공간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1년 내내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쓰고, 수정하기를 거듭하며 지난 시간들에 대한 뭉클함과 논문 쓰기라는 스트레스 사이를 진자처럼 오갔다.


인건비는 받지 않지만 로컬매거진 편집장으로 잡지도 만들어야 했고, 돈을 벌기 위해 보고서나 발간물들의 원고를 쓰고 편집해야 했다.      


드디어 완성한 논문과 문을 닫는 공간의 아카이브 중 하나인 물건사전.
논문 쓰는 와중에 정신없이 발행한 로컬매거진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불안감은 크지 않았다. '논문 쓰기'라는 우선순위가 분명했던 탓일까. 현실에서 해야 할 일들, 책임지는 일들을 먼저 처리해야 글도 편안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기다렸던 거 같다. 더 많이 부딪히고, 더 많이 실패하고, 더 많이 성공하며 삶의 결이 층층이 쌓이기를. 그래야 그 겹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으니까.


내게는 몸으로 체득되지 않은 것들을 글로 풀어낼 재주가 없다. 매우 주관적이며 짧은 경험일지라도 글감으로 농익었다고 판단되지 않으면 잘 쓰지 못한다. 변명 같지만 글쓰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글로 보여 줄만큼 내 삶은 치열했나?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그 질문에 확답을 내릴 수 없어 쓰지 못할 때도 많다. 삶과 글이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토닥이기 위해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많이도 썼지만, 타인과 공유하는 글은 늘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좋은 글이 얼마나 많은가?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재밌는 글, 지친 삶에 희망과 위로를 건네는 따스한 글.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깨우침을 주는 사유로 가득한 글. 유익한 정보로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글까지. 출판되는 책을 제외하고 온라인 상에만도 이런 글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흘러넘친다. 글만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과 대중적인 콘텐츠까지 포함하면 어마어마한 양일 것이다. 그러니 이중 아무것도 담지 못한 글이라면 굳이 나까지 보탤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정보와 데이터수집하가다듬는 글쓰기에는 자신이 없다. 철학자나 종교인도 아니면서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고 대단한 재미나 감동을 전해줄만큼 상상력이나 필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미시적인 감각으로 삶을 들여다보고 아름다운 언어로 감수성을 보듬어주는 글도 내가 쓸 수 없는 종류의 글이다. 그저 사진을 찍어 장면을 포착하듯, 평소와 다른 낯선 경험 속에서 새로운 감정이나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던 순간에 대해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응원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그런 작은 바람을 품곤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욕심이라는 걸 브런치에 글을 쓰며 알았다. 출판의 경험도 없고 글로 먹고사는 전업작가도 아닌 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어떻게 매번 써낼 수 있겠는가.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려면, 좋은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욕심과 그런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내려놓아야 했다.

 

브런치는 작가 등록이라는 과정을 거치지만, 사소하고 개인적인 주제라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다. 때로는 별거 없는 하소연이나 넋두리도, 어제와 비슷한 오늘의 일상도 글감이 된다. 그런 평범한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공감대를 느끼고 위로를 얻는다. 나 역시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공감의 라이킷을 수도 없이 많이 눌렀다. 그렇게 내 글에 겨누던 검열의 날이 조금씩 무뎌지던 즈음, 브런치에서의 글쓰기가 한결 편안해졌다.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가장 열심히 글을 썼던 2020년은 이전에 브런치에서 느끼지 못했던 기쁨을 경험한 해였다. 다른 브런치 이용자들과의 소통 덕분이었다. 글을 읽고 사람들이 남겨준 응원과 지지를 읽노라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관계임에도 온전히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블로거로 글을 쓸 때도, 시민기자로 기사를 쓸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런 기쁨에 취해, 글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피드백을 남겨주는 들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쓴다는 느낌이  때도 있었다. 지난 몇 달간 어쩌다 앱에 접속한 것도 글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브런치가 작가들의 글을 임의로 포탈에 노출시킴으로써 콘텐츠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무료로 소비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브런치 북 기능이나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출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글쓰기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브런치가 단순히 글쓰기를 위한 도구이자 글의 공유라는 기능을 넘어 많은 이용자들을 붙잡아둘 수 있는 매력은 작가와 작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힘이 아닐까 싶다. 블로그도 소통의 기능은 존재하지만 정보 공유를 위한 목적이나 상업적인 요소가 갈수록 짙어지는 탓에 글 자체를 매개로 하는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은 브런치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브런치 팀은 라이킷을 누르거나 덧글을 달 의무 같은 건 주지 않았다. 브런치 이용자 사이의 소통은 글로 자신의 삶을 공유해주는 수많은 이들의 열정과 용기에 대한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행위다. 브런치에서 글을 읽다보면 고단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즐거움과 위로를 얻기도 하고, 잠시 멈추고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갖기도 하니까. 


소통이 활발한 브런치 작가라면 모두 알 것이다. 자신의 글에 남겨준 사람들의 몇 마디가 얼마나 큰 응원이 되는지. 100번의 일요일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쓴 나묭 작가님은 댓글을 남겨준 이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냥 지나쳐도 아무렇지 않을 글에 굳이 다정함을 묻혀주고 간 사람들"이라고. 나 역시 그 다정함이 그리워 다시 돌아온 셈이고.


요렇게 귀여운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준 브런치팀의 정성(전략)도 한몫했지 싶다.



쓰고 보니 그간 글을 안 쓴 변명을 길게도 썼다 싶네요. 그냥 제가 성실하지 못한 게으름뱅이 브런치 작가라 그렇습니다, 하면 될 것을ㅎㅎ


한동안 재미없고 딱딱한 글만 잔뜩 쓰느라 브런치에서는 멀어졌지만, 가끔 브런치 작가님이나 댓글을 남겨주시던 구독자분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안부를 궁금해 한 건 사실이었어요^-^; 너무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감이 떨어진 것도 같고, 지난 수개월간 쓰던 딱딱한 글쓰기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6개월 만에 한 편이라도 쓰고 나니 아주 조~오~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조금 더 자주 브런치에도 들어오고, 작가님들의 브런치에도 기웃거리며 글감을 매만져보겠습니다. (이제 브런치팀은 그리움을 가장한 재촉 메시지 그만 보내길ㅎ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