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주년에 어디 갈 계획이세요?

혹은 어디를 다녀오셨나요?

by 안녕

70만원 내고 난생처음 5성급 호텔에 묵어보니

스물둘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4년 간의 연애를 거쳐 결혼했고, 올 해로 마흔여섯이니 사귄 기간까지 더하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남편과 함께 했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놀라곤 한다. 반복되는 일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잘 그만두는 내가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일이 바로 결혼생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여러 번의 헤어질 위기가 있었다. 사회를 변혁시키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남편 때문에 눈물 콧물 쏟으며 잠 못 이룬 날이 숱했으니까. 아이 둘을 기르는 내내 양육과 살림에 동참하기는커녕 들쑥날쑥하는 생활비며, 툭하면 외박에 늦은 귀가에 연락 두절까지.


"왜 이렇게 전화통화가 안 돼?

"회의 중이어서 못 받았어. 나중에 전화하려고 했는데 배터리가 다 나가서."

"그럼 어제는 왜 집에 안 들어왔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책상 앞에서 그냥 잠이 들어버렸어."


이런 일들이 우리에겐 흔한 일상이었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는 미군부대 앞에서 한 시위 때문에 체포영장이 떨어졌다며 한 달 가까이 집을 비웠고, 결혼 후 처음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기로 한 여행도 갑작스러운 남편의 천막농성으로 숙박비를 날리고 취소하고 말았다. 이런저런 일정 때문에 처가 모임에 빠지는 일이 많았던 남편은 두 아이의 초등학교 공개수업에도 참여한 적이 없고, 졸업식에도 오지 못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학생운동을 하다 만난 사이이니 그의 신념과 가치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함께 가정을 일구고 아이들을 낳았으니 아이들 아빠로서 책임져야 할 일들이 분명 있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남편은 한국사회의 구조상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느라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피력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겠노라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의 안위와 가족의 안녕만을 위해 살기에도 버거운 세상이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불공정한 일들이 곳곳에서 우리 사회를 곪게 만든다. 이런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이상을 그러안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종종 자신의 평안함을 포기해야 하고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도 자꾸만 뒤로 밀려난다. 소중한 가치를 지닌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이고 편향적인 언론 보도나 대중들의 무관심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를 바꿔 온 수많은 사람들의 신념과 노력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앞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남편의 신념을 존중하는 것과 부모로서 아이들을 함께 돌보길 바라는 마음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했다.




남편은 잠이 많고 게으른 사람이다. 물건 정리도 서투르고 음식도 잘할 줄 모른다. 피곤하다며 티브이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보다가 잠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면 혼자 집에서 술을 먹기도 한다. 한 영역에서 오랫동안 무던히 일했고 운동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어 아무 거나 잘 먹는 편이고 대화를 할 때 까탈스럽거나 쉽게 상처받지 않는 편이다.


나도 잠이 많고 게으르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남편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편이다. 잠잘 때 소음이나 불빛에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잘 깨고, 음식 맛에도 예민하다. 호기심을 잘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서 다양한 영역의 취미를 가졌었지만 꾸준히 오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화를 할 때는 상대의 의중을 고민하거나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조차 혼자 해석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결혼 20주년을 맞았다. 어렵고 힘들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관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무탈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 덕분이기도 하고. 우리의 결혼생활을 노심초사 응원해준 친정과 시댁 어른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노고가 컸다. 이건 남편도 인정했다. 올해 성인이 되어 대학에 간 큰 딸과 자퇴 후 자신의 진로를 개척 중인 둘째 딸도 이 부분에 대해 별다른 이견은 없다.


그간의 수고에 대한 자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부족함에 대한 성찰이든, 앞으로의 계획이든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축하라는 이름의 보상심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제일 처음 든 생각이 여행이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기념 행위니까. 어디로 가든 신혼여행지와는 다른 (더 먼)곳으로 가고 싶었다.




20년 전,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제주였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여행이라고는 떠나 본 적 없는 가난한 운동권 출신 커플이 갈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러운 여행이었다. 난생처음 제주행 비행기를 타보았고, 렌터카를 빌려보았으며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서 자고 일어났다.


하지만 당시 팔순을 맞이한 시 할머님의 생각은 달랐다. 애지중지 키운 맏손자의 신혼여행이 2박짜리 국내여행이라는 걸 못마땅해하셨다.


"평생 한 번 가는 신혼여행인데, 외국으로 갔다 와. 지금 안 가면 언제 갈지 몰러!"


남편은 6살 때 아버님을 여의고, 여러 어른들의 걱정과 사랑 속에 자란 사람이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고, 그 후에도 진보정당이며 노조 활동을 한다고 사서 고생하는 시댁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러니 인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통해서라도 호사를 누려보라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린 결국 제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점심에 식을 치르고 오후 4시 비행기로 내려갔으니 1박은 정말 잠만 자는 여행이었다. 다음 날은 여미지 식물원과 천제연 폭포를 다녀왔던 걸로 기억한다. 관광지에서 멍게 한 접시를 사 먹었고, 밥은 싸들고 간 식재료로 숙소에서 해 먹었다. 제대로 된 외식이라고는 올라오는 날, 리조트 식당에서 고등어구이를 사 먹은 게 다다.




10년 전,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태어난 두 아이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여전히 곤궁했고, 남편은 늘 바빴다. 그러니 결혼 10주년이라는 핑계라도 대지 않으면 함께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 10주년에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남편이 시간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2년을 더 기다려서야 가족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신혼여행보다 길어진 4박 5일간의 제주행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로만 다녔고, 캠핑카와 게스트하우스, 민박집 등 숙소를 매일 바꾸어가며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맞이한 결혼 20주년.


"결혼 20주년에는 무조건 해외로 가자!"


작년 즈음부터 이런 말을 꺼내면 남편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일정이 안 돼서 어렵다고 할까 봐 자주 세뇌를 시켰건만. 이렇다 저렇다 아무 말 없는 남편이 답답했다.


'이렇게 20주년이라는 명분이라도 없으면 우리가 언제 같이 해외를 나가볼 수 있겠어? 할아버지, 할머니 돼서 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가는 거랑은 다르지. 지금은 트레킹을 가거나 패키지로도 갈 수 있겠지만, 나이 들면 시간이 돼도 못 갈 텐데. 바쁜 일정 빼기 힘들고, 동료들 보기 미안한 것도 알겠는데, 그래도 20주년이니까 해외로 가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속으로 이런 말을 수없이 했지만 정작 내뱉지는 못했다. 지금 아니면 우리가 언제 해외여행을 가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때 시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 거 같았다. 처음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인생에 몇 번 없고, 기회라는 건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니까. 이젠 해외로 나가보라고 등을 떠밀어줄 시 할머님도 돌아가시고 안 계시다.


어쩌겠는가. 어차피 결혼 20주년 기념 여행을 원하는 사람은 나고,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 파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우리 20주년 여행 가려면 돈 필요하잖아. 같이 적금 붓자. 매달 한 사람당 10만 원씩. 1년 붓고 나중에 좀 더 보태면 되지 않을까?"


다분히 해외여행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남편은 반대하지 않았다. 당장 여행을 가자는 것도 아니고, 여행 갈 경비를 모으자는 거니까. 그렇게 올 2월부터 적금을 부었다.


적금을 부은 째 5개월이 되던 올여름. 만기일까지는 아직 7개월이 남은 상황이었지만 20주년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말겠다는 내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일이 벌어졌다.


"여보, 그냥 여름휴가 기간에 기념 여행 갔다 와야 될 거 같은데. 주말 끼고 한 4일 정도."

"뭐? 여름휴가 기간?"

"응. 그때 아니면 올해 안에 시간이 안나."

"여름휴가 기간이면 덥고, 극성수기라 어딜 가도 사람 많고... 예약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숙박비도 비싸고... 코로나도 아직 완전히 안끝났고... 언제라고?"

"아직 정확하지는 않아. 아마도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그래?... 어... 그럼 정해지면 알려 줘."


나는 살짝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렇게 짧은 기간 안에 해외여행을 가기 어렵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3박 4일이면 동남아를 다녀오기도 빠듯한 일정이었다. 그리고 애초 내 머릿속에 동남아는 순위 밖이었다. 우리가 자주 해외여행을 다니던 사람들이라면 이번엔 그냥 가까운 곳에 다녀와도 괜찮겠지만, 평생 해외여행을 해볼 경험 자체가 적은 우리에겐 이번 기회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주 못 갈 거라면 한 번 갈 때 길게 다녀오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머무는 기간이 길수록 경비도 높아지겠지만,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항공료의 가성비를 생각하면 며칠이라도 더 머무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나라는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제주 갈 돈이면 동남아 간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에게 해외여행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어쨌든 비용은 발생하게 마련이니 동남아 갈 돈을 아껴서 나중에 긴 해외여행에 보태쓰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남편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미 여러 사람들과 조율된 일정일 테니까. 그리고 남편은 그 일정에 자신이 참여하지 않는 상황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았을 터. 나는 고만 맥이 풀렸다. 3주 안에 어떻게 해외여행을 준비해서 간단 말인가.


다급하게 여행상품을 땡처리하는 사이트를 살피기 시작했다. 4일 안에 갈 수 있는 해외여행 상품은 (적국)일본 뿐이었다. 방콕이나 베트남, 푸껫 등 3박 5일로 갈 수 있는 상품들이 눈에 띄었지만 말했다시피 애초부터 동남아는 갈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남편이 가능하다고 한 날짜에 맞추어 출발하는 패키지 상품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인천 국제공항 한 번 가본 적이 없는 우리가 갑자기 4일짜리 자유여행 일정을 준비하는 건 무리였다. 남편과 여권 사진을 찍고 시청에 가서 여권을 만드는 일부터가 난관이었다. 항공권과 숙소, 여행지 정보를 알아보는 일도 모두 내 일이 될 테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결혼 20주년으로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든 나라들을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이탈리아, 스위스, 뉴질랜드, 캐나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결혼 20주년으로 어디를 다녀오는 걸까? 포털 사이트에서 '결혼 20주년 여행'을 검색해보았다.



결혼 20주년 기념 하와이 여행

20주년 결혼 기념 여행, 루브르, 몽마르트르 언덕, 개선문, 에펠탑

결혼 20주년 여행 체코, 이탈리아 17일

.....


게 중엔 코로나로 인해 국내 여행으로 다녀온 글들도 있었지만 내 눈엔 해외여행만 보였다. 브런치에도 '결혼 20주년 여행'을 검색해보았는데 글의 숫자는 적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터키와 그리스를 향하여 출발 - 결혼 20주년 기념 가족 여행

결혼 20주년 - 못다 한 이탈리아 순례

스페인 마르요카 섬 여행 시작 - 결혼 20주년....

결혼 20년이 되던 작년에는 하와이로 여행을 다녀왔다...


학수고대하던 20주년 결혼 기념 해외여행은 그렇게 (나 대신)물 건너갔다.


그래도 가긴 가야지. 그렇게 추진된 우리의 20주년 결혼 기념 여행 이야기는 다음에.




다음 이야기 : 결혼 20주년 기념 여행 첫날밤에 사라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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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떻게 연애하다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nolda/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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