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기 아까워 출장 간 남편을 불렀다.

수원의 명물은 이곳이더군요

by 안녕


한 달 전. 수원에서 회의가 잡혔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오고 가는 데만 5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게다가 금요일 오후 5시라는 애매한 회의 시간. 회의가 끝나고 저녁까지 먹으면 8시가 넘을 테고. 집에 돌아오면 11시쯤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피곤이 몰려왔다. 안 되겠다. 숙소를 잡자. 몇 년 전 수원에서 교육받느라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혼자 공포의 1박 2일을 보낸 기억이 났지만. 이번엔 다를 거라 믿고 화성행궁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숙소는 2층 가정집을 개조한 아담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안내를 해주는 50대의 사장님은 오늘 2층에 예약자가 나뿐이라며 편하게 쓰라고 했다. 침대가 없는 작은 방에는 이불 두 채가 가지런히 개어져 있다. 바닥 한 구석에 노트북과 갈아입을 옷가지, 세면도구들을 빼놓고 가벼워진 가방을 메고 서둘러 나왔다.


2시간에 걸친 회의가 끝나고, 참석자들과 같이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해가 어스름하다. 몇몇은 돌아가고, 몇몇은 식당 앞의 성벽길 산책을 가자며 나섰다.


수원에서 도시재생 활동을 하는 활동가 한 분이 앞장을 섰다. 커다란 사각형의 돌로 축조한 성벽을 따라 잠시 오르막길을 걸었더니 왼편으로 정자 하나가 나타났다. 정자로 오르는 사람들을 따라 신발을 벗고 올라섰다.


정자 위에는 여름답지 않은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람이 불어오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틀간 내린 비로 습기를 가득 머금은 잿빛 구름이 하늘에 가득했다. 마침 저물어가던 태양이 구름 끝에 걸렸다.


이 정자의 이름은 방화수류정. 이 곳에 오르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성벽과 휘날리는 깃발이 보인다.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묘한 풍경이다.

정자에서 바람을 쐬고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왼쪽 성벽으로 난 작은 문을 통과하니 연못으로 향하는 길이 나왔다. 가운데 동그란 섬이 있고 커다란 연잎이 자라는 연못이었다. 이름은 용연(龍淵, 龍池)이라 했다.


조선 시대 건축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안동 하회마을이나 청송 송소고택의 고즈넉함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용연은 방화수류정 밖 용머리바위 아래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살려 만든 연못이다. (설명 출처_NAVER 지식백과)

연못까지 모두 둘러보고 헤어지려는 순간. 수원에 사시는 분이 수원 통닭거리를 추천한다.


“후라이드는 00 통닭. 통째로 튀기는 건 00 통닭이 맛있고.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아요. 꼭 가보세요.”

수원에 내려오기 전. 그렇잖아도 통닭거리에서 치킨을 먹어보고 싶었지만, 무슨 수로 혼자 한 마리를 먹겠냐 싶어 포기했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포장해와서 숙소에서 먹고, 남는 건 집까지 들고 오면 되니까. 하지만 불편한 손목으로 통닭 봉지를 들고 치킨 냄새를 풍기며 낯선 도시를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 가서 한 마리를 시킨 다음 몇 조각만 맛보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남기고 오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건 치킨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명백한 돈 낭비였다. 그럼 남은 방법은 같이 먹을 사람을 부르는 것뿐.

출장 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 오늘 수원 회의 가야 되는데 끝나면 저녁이라. 자고 갈까 해서. 숙소 예약하려는데 당신 올라오는 길에 이쪽으로 올래? 당신이 오면 2인실로 예약하고.”


치킨 얘기는 뺐다. 마치 치킨 때문에 부르는 것으로 오해할지도 모르니까. 통닭을 나눠 먹을 사람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혼자서 숙소를 쓰는 것보다는 둘이 쓰면 가성비도 높아지고, 낯선 도시의 적막함도 덜 수 있으니 일석삼조 아닌가.


일단 알았다던 남편은 오후가 지나서야 수원으로 가겠다며 문자를 보냈다. 음, 치킨을 먹을 수 있겠군.


그날 저녁. 남편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수원에 도착했다. 나는 숙소 앞에 도착한 남편에게 달려가 남편을 2층 방으로 데려왔다. 빨리 가방을 내려놓고 영업시간이 얼마 안 남은 통닭거리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뛰다시피 도착한 통닭거리는 어두웠고 인적도 드물었다. 딱 한 곳만 환하게 불을 밝힌 채 영업 중이었다. 인터넷 후기로도 보았던 곳이고, 낮에 지인이 추천했던 식당들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급한 마음에 집에서 배달을 시키던 습관대로 치킨을 주문했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요.”


십분 쯤 지나자 후라이드가 먼저 나왔다. 포크로 한 조각을 찍어 먹어 보았다. 평소 배달로 시켜먹던 크리스피 반죽과는 달랐지만 바삭하고 닭 냄새가 나지 않았다.


“깨끗한 기름으로 튀겼나 봐.”


남편과 나는 치킨 맛에 대한 품평을 하며 생맥주 한 잔을 번갈아가며 홀짝였다. 좋았다. 맛있는 치킨을 함께 먹어주는 이가 옆에 있어서든. 누군가와 함께 치킨을 먹을 수 있어서든. 그냥 좋았다.


후라이드를 반쯤 먹었을 때 양념 치킨이 나왔다. 이미 슬슬 배가 부르기 시작한 터였지만, 맛을 안 볼 수는 없었다. 한 입을 베어 문 순간, 낮에 통닭거리를 추천해주던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후라이드는 00 통닭. 통째로 튀기는 건 00 통닭이 맛있고.” 그렇다면 양념이 맛있는 곳은 따로 있다는 말 아닌가.


방금 먹은 치킨은 양념에 한방 맛이 나고, 달콤한 맛이 없었다. 원하던 양념 맛이 아니었다. 결국 양념 통닭은 절반쯤 남긴 채로 가게를 나섰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남편과 수원천을 걸었다. 남편에게 내가 보았던 정자와 연못을 보여주고 싶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조명이 군데군데 꺼지고 어두워서 초저녁에 보았던 풍경을 감상하기는 어려웠지만 정자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은 여전했다. 남편은 잠시 정자에 누워 눈을 감았다. 모기가 물어뜯지만 않았다면 그대로 잠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연못까지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1시가 가까워 온 시간. 서둘러 씻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남편은 5시쯤 일어나 출근을 했다.



남편은 일정이 있어 일찌감치 숙소를 나서고 혼자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비가 내린 후 미세먼지가 없는 하늘은 청명했다. 너른 마당과 지붕 밑의 단청, 행궁 뒤편의 나무와 산. 모든 것들이 선명한 색으로 빛났다.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 행궁은 천천히 둘러보기 좋았다. 재현해놓은 궁중의 복식과 수라간, 군인들의 모습,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를 위한 연회에서 올려졌던 음식들. 이 문에서 저 문을 옮겨 다니며 내부를 살펴보다가 어느 마당 한쪽에 놓인 네모난 나무상자 여러 개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뒤주였다.



뒤주는 사람이 들어가면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못 할 정도로 비좁았다. 이렇게 작은 뒤주에 갇혀 죽은 거였구나, 사도세자는.


가슴이 찌르르했다. 평생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는 정조의 고통이 어땠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당쟁의 희생양으로 8일간 뒤주에 갇혀 고통 속에 죽어간 스물일곱의 아버지와 그것을 지켜본 어린 아들 정조. 그는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 않았을까. 한 나라의 왕세자였던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말했던 건 그 때문이었겠지. 당대 최고의 명당이라는 수원 화산으로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고, 왕위에 오르지 못한 아버지에게 장조라는 임금의 칭호를 준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였을 테고. 아버지의 무덤을 옮기고, 노론을 견제함과 동시에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려 했던 정조의 마음이 뒤주를 보는 순간 이해되었다.


사적 제478호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0년에서 1795년(정조 14∼19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 행궁, 사근참 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다. 그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성행궁 [華城行宮]



행궁을 나와 지난밤 남편과 함께 걸었던 수원천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밤에 문이 굳게 닫혀 있던 화홍문이 활짝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았다. 돌계단 위에 운동화를 벗고 올라가 보았다. 열린 창문 밖으로 수원천 주변의 마구 웃자란 풀과 잎이 무성한 나무들, 조금은 가벼워진 흰 구름이 한 눈 가득 들어왔다.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는데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좋구나. 혼자 보기 아깝다.


수원천의 수문 중 하나인 북수문(화홍문)에서 바라본 수원천 전경.



아이들에게 전날부터 찍은 사진 몇 장을 보냈다. 다음에 같이 오자는 말도 덧붙였다. 행궁을 나올 때쯤 초등학생들 여럿이 입장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교육열이라고는 1도 없는 탓에 수원화성에 한 번도 데려오지 않은 게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지휘관들이 가장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서장대로 올라가는 길에서도 그랬다. 시원찮은 발목으로 천천히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누군가 함께 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늘 "혼자 있을 자유와 혼자 하는 여행"에 목말라하던 나답지 않은 생각이었다. 조금 변했네 싶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오후 3시. 예정대로라면 집으로 올라가야 할 시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하루 더 수원에 있으려고. 이대로 올라가기가 아쉽네.”


그리곤 곧장 숙소를 예약하고, 얼마 전 경기도로 이사 온 언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언니, 수원으로 올래? 여기 멋진 곳들이 많은데 언니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그날 밤 남편은 또다시 수원으로 내려왔고, 언니는 다음 날 아침 둘째 오빠와 함께 수원을 방문했다. 이번엔 네 명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에 올랐다. 혼자 왔을 때와 달리 조용히 풍경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대신 조금 요란하게 사진을 찍었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작 수원화성을 건설한 정조의 마음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보지 못했고, 오빠의 재촉으로 빠르게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산만함과 시끌벅적함에는 묘한 안도감이 존재한다.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내포된 동질감과 소속감 같은 것들 말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음식, 같은 풍경을 공유하는 일은 내가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이자 경험이니까.


예전에는 가족이 제도와 관습으로 이루어진 구속과 억압의 울타리라고 생각했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그랬던 것 같다. 딸, 아내, 엄마, 며느리. 이런 역할들이 한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내 정체성을 희석시키고 있다고 믿었다. 자신에게 자주 물었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가족 안에서의 역할을 뺀 나는 누구인가하고. 그 답을 찾으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에 늘 목말랐고, 혼자 가는 여행이 좋았다.


지금도 고독의 필요를 느끼고, 가족 간에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래도 멋진 곳을 발견하게 된다면 또 중얼거리게 되겠지. '혼자 보기는 아까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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