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소설 다음으로 많이 읽은 책이 여행 에세이였다. 그중에서도 <여행의 기술> 은 여행에 대한 주옥같은 문장들로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었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 이라니. 마치 내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말 같았다. 더구나 집에서 육아와 살림에 지쳐 있던 나에게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와 같은 문장은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전한 보들레르의 말처럼 우리의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고, '떠나기 위해 떠나는 것' 자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떠날 수 없었다. '일단 떠나라'거나 빚을 내서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이가 없거나 아이까지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을 만큼 경제력이 있거나, 20대 이거나,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금을 받았거나, 돌아와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극소수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나는 직장이 없는 순수 육아맘이었고, 아이들은 어리고 수중에 가진 돈도 없었으며, 설사 누군가 아이들을 맡아준다 해도 워킹홀리데이를 가기엔 나이가 많았고,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만한 무언가도 없었으며, 빚을 낼 신용조차 안 되었다. 물론 극히 드물게 정말 가진 것 없이 벌어가며 아이와 함께 세계를 여행하는 외국인 부부의 기사를 보긴 했지만, 바쁜 남편을 두고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벌어가며 여행한다는 건 여행이 아니라 고생길이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내가 여행을 찬양하는 온갖 여행서적들을 탐독한 건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던 셈이다.
지역의 후원행사 자리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던 후배 P를 만났다. 대학 졸업 후 학원 강사로 일하며 여행자금을 모은 뒤 한국을 떠났던 후배는 워킹홀리데이와 여행으로 여러 나라를 유랑하듯 떠돌다 30대가 되어 돌아왔다. 근황을 물으니 한국에 들어와 취업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다고 한다. 경력도 없고 나이가 많아서인지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그래도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덕에 얼마 전 작은 출판사에 취업했다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결혼 후 임신과 출산, 육아, 살림에 매여 살아온 나에게 혈혈단신 세계를 누빈 후배 P는, 자유로운 영혼의 대명사이자 해방의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그 날 후배는 자신의 오랜 여행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여행이 아니라... 그냥 오랫동안 방황한 것 같아요"
후배의 고백 아닌 고백은 여행에 대한 나의 동경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상이 불안했던 나는 방황하지 않기 위해 여행을 꿈꾸었는데, 여행이 방황이었던 후배는 그 방황을 끝내기 위해 정착했다고 말했다.
세계의 어느 풍경 속에 있는가가 아니라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삶을 규정한다면, 중요한 것은 여행지가 아닌 여행자로서의 태도임이 분명하다는 걸 깨달은 그 날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 후 나는 떠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기보다 먼 나라의 풍경을 그리는 쪽을 택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시기였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이제 그림은 안그립니다. ) 창작이 욕망의 투사라면 마음껏 투사해주리라 다짐한 것이다.
내가 처음 그린 곳은 산토리니였다. 광고에서 여러 번 본 탓에 익숙하기도 했지만, 하얀 건물과 파란 지붕 너머로 보이는 에게해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두꺼운 종이에 연필로 스케치 후 채색, 바니쉬로 마감하여 아코디언북의 표지로 활용했다.
언젠가는 꼭 가리라는 결심을 담아 펜으로 스케치 없이 바로 드로잉. 여러 컷의 사진들을 연결하듯 그렸다.
하지만 풍경을 대상화해서 그린 그림은 어쩐지 내가 그곳을 절대로 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을 극대화시켰고, 인터넷에서 지중해 여행비용을 검색한 후에는 반감만 더욱 커졌다.
그래서 든 생각. 내가 갈 수 없다면 풍경의 일부를 나의 일상 속으로 가져올 수는 없을까.
자주 가던 카페에서 바라보던 풍경 속으로 데려 온 기린.
왜 하필 기린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기린을 생각하면 아프리카가 떠올랐고, 아프리카는 내게 가장 멀고도 원시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나는 내가 머무는 풍경 속에 기린을 그리기도 하고, 오려 붙이기도 하면서 멀리 떠나고 싶은 욕망을 심리적으로 승화(ㅜㅜ)시켰다.
그 뒤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걸 보면 조금 효과가 있었던 것도 같다.
아프리카에는 여러 동물들이 살지만 어쩐지 코끼리보다는 기린의 기다란 몸과 얼룩무늬, 커다란 눈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 장치 앞에서 아프고 싶어 하며, 또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19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24평에 살면 삶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24평에 사는 사람은 33평에 살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 것과 비슷하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라면 인생이 좀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이 것은 착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끔 자리를 바꾸는 환자가 되길 원한다. 산토리니의 새파란 지붕과 유유히 초원을 가로지르는 기린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
후배가 자신의 여행이 방황이었노라 말할 수 있었던 건 그 시간을 직접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역시 가보면 알게 되겠지. 그것이 착각이었는지 아닌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