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호기심 많은 겁쟁이 생쥐 같은 아이이다. 호기심 어린 생각을 나눌 상대가 필요해서 누군가 다가와 주길 바라면서도 막상 다가오면 겁이나 도망을 간다.
그런 성격 탓에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변변한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던 딸에게 올해 단짝 친구가 생겼다. 같은 반에서 만난 아이이다. 서로 문자 연락도 자주 했다. 밤늦게까지 영상통화도 했다. 주말에는 종종 약속을 잡아 놀기도 했다. 친구에게 줄 선물을 만들며 행복해 했다. 드디어 딸에게 친구가 생겨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다.
며칠 전 딸이 다니는 수학학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딸이 친구의 전화를 한참 받고 복도에서 울고 있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여러 번 지켜본 바로는 정상적인 친구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딸의 사소한 실수를 전화로 한참 나무라고 사과를 요구했다고 했다. 학원에서는 일방적으로 장난을 치고 공부를 방해한다고 했다. 공교롭게 같은 날 영어 학원 선생님에게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전화가 왔다. 친구에게 혼이 나고 다른 친구들이 와서 달래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알아보니 그 친구는 그런 일방적이고 모난 성격 때문에 친구가 없었다. 서로 친구가 없는 아이들 둘이 단짝이 된 것이었다.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 건강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딸은 내성적이지만 만만한 아이는 아니다. 나름의 생각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에도 딸은 친구와 연락하고, 주말에는 친구와 만나서 놀고 왔다. 친구와 놀고 온 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친구랑 재밌게 잘 놀고 왔어?”
“응, 같이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다이소에 갔다 왔어.” 딸은 다이소 마니아이다.
딸과 그 친구에 대해 조심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딸은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좀 더 거리가 있으면좋겠다고 했다. 딸은 표정은 평온했다.
다음날 등교하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친구랑 잘 지내는 것은
친구의 말을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존중하고 나도 존중받는거야
우리는 각자의 세상에서 주인공이고
서로 각자 세상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존중해 주는 게 친구야
봄봄이 삶에서는 우리 봄봄이가 주인공인 것을 잊지 말고
멋진 주인공이 되길 우리 봄봄이 홧팅!'
딸에게 답이 왔다.
'♡♡'
가끔 아이들에게 일장 훈계를 하고 나면 듣는 말이 있다. 딸의 문자를 받고 그 말이 떠올랐다.
'아빠나 좀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