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구를 좋아해서 저녁 시간에 종종 농구를 하러 나간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 작은 농구장이 하나 있는데, 만들어진 지 오래되지 않아서 시설이 깔끔한 편이다. 그 공원은 대학교에 가까이 있어서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들이 많은 편이다.
외국인이 많은 그 농구장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농구장에 한국 사람들이 많으면 한국말을 쓰고, 외국인이 많으면 영어를 쓴다. 룰이라기보다는 기세에 밀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날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많은 날이었다. 혼자 빈 골대에서 슛 연습을 하고 있는데 한국인 학생 둘이 내게로 와 농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농구장에서는 흔한 일이다. 농구장에 외국인이 많았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했다.
"Do you wanna play 3on3?" 발음이 아주 찰졌다.
"예.."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우물거렸다. 사실 난 영어를 잘 못한다.
그 학생들은 농구장에서 몇 번 봤는데 외국에서 살다가 온 것 같았다. 평소에도 반은 영어 반은 한국어를 섞어 썼다. 그 한국인 학생들과 나는 같은 편이 되었고, 상대는 중국 학생들이었다. 농구를 하는 동안 점수를 매기는 것과 간단한 소통은 영어로 했는데 뭐라고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해서 적당히 어물거렸다.
그렇게 한 게임을 끝낸 후 쉬고 있는데, 그 학생들이 다시 찾아왔다. 다시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Do you wanna play again?" 옥구슬이 버터 위에서 굴러가는구나.
"예. 그럴까요?" 게임이 좀 일찍 끝이나 아쉬웠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와! 뭐야!? 한국인이잖아?" 한 학생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와! 깜놀!!" 그 옆의 친구도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나도 깜짝 놀랐다. 여태 날외국인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피부가 좀 검고 말라서 과거 몇 번 외국인으로 오해를 받은 이력이 있다. 오해가 풀렸으니 됐다 싶었다. 그렇게 두 번째 게임을 했다. 두 번째 게임은 상대편도 한국인이었다. 마음이 편했다. 게임을 하는 중에도 한국말을 썼다.
그렇게 재미있게 운동을 마쳤다. 주섬주섬 농구공과 옷가지들은 챙겨 나오면서 같이 했던 우리 팀 학생들과 상대 사람들에게"수고했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사람들도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했다.
"Good Bye!"
"Bye ~"
"Good game!"
난 아직 외국인이었다. 오해가 풀리지 않은 것이었다.얼른 뒤돌아서서 농구장을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그 '뭐야 한국인이잖아?'는 '뭐야 완전 한국인이잖아?'였던 것 같다. 외국인 치고 한국말을 잘해서 놀랐던 것이었다.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농구장에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별 반응이 없었다.
우리 집은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침대 두 개를 붙여놓고 네 식구가 같이 붙어 잔다. 엄마 옆에서 잠이 들었나 싶었던 아들이 데굴 굴러오더니 졸린 눈으로 말을 걸었다.
"아빠?"
"응?"
"아빠는 외국인이니까.. 영어 연습 좀 해" 외국인인 아빠가 영어를 못하는 게 마음에 쓰였는가 보다. 이렇게 아이들은 가끔 자기 전에 마음에 담아둔 얘기를 한다.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