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테이블에서 돼지고기 수육 삶는 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레시피들 마다 강불, 중불, 약불로 불의 세기를 변경하여 삶는 법을 알려줬다. 강불은 팔팔 끓이는 것이고, 중불은 보글보글 끓이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물의 끓는 온도는 100℃이니, 강불 중불 둘 다 같은 100℃아닌가?'
기압이 일정하면, 열을 더 가해도 결국 물은 100℃에서 끓게 되고, 나머지 열은 물을 수증기로 변화시키는 데 쓰인다. 즉 물의 온도는 열을 더 가해도 100℃인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다.
궁금증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 가끔 이렇게 답을 찾아 헤매다가 '이걸 지금 왜 보고 있지?'라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대부분 사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을 하고 있었다. 딸이 해리포터 책과 조그만 수첩을 들고 와 옆에 앉았다. 딸은 지금 10살이다. 해리포터에 흠뻑 빠져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따라 써보겠다고 했다. 제목부터 쓰기 시작했다. 잠깐 쓰는가 싶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빠 놀아줘."
"잠깐, 아빠 바빠. 이것만 좀 끝내고..."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언제 놀아줄 거야?" 딸은 노트에 글씨를 옮겨 적으며 말했다.
"음... 이거 한 시간 정도면 끝날 것 같은데?"
"그거 끝나면 놀아줄 거야?"
"당연하지, 완전! 그러니까 말 좀 시키지 말아 봐. 지금 집중 중이야."
"어."
잠시 후 딸이 다시 말을 걸었다.
"아빠?"
"잠깐만.. 뭐?"
"아빠, 나랑 안 놀아 준지 엄청 오래됐어~ '이것만 하고 놀아줄게, 담에 놀아줄게' 해서 기다리다 보니까 벌써 몇 년이나 지났어~" 딸은 책을 옮겨 적으며 무심하게 얘기했다.
순간 가슴이 턱 내려앉았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나...' 돌이켜 보니 둘째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둘째와 놀아 주느라 딸과 놀아준 기억이 거의 없었다. 놀아달라고 할 때마다 '잠깐만'이라고 했던 것 같았다. 조용하게 노는 딸이 바라는 것이라고는 같이 이야기하는 것과 슬라임 같이 해주는 것 정도인데 몇 년 동안이나 못해줬다. '아빠가 우리 딸을 몇 년이나 기다리게 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끓는 물의 온도 따위가 궁금해서 바쁜 시늉을 했던 것이 부끄럽고 후회가 되었다. 노트북을 덮고 딸에게 말했다.
"지금 놀자, 아빠 할 거 다 했어."
"아니. 지금은 말고 나중에 놀자. 나 이것 좀 해야 해." 하면서 목차 위아래 여백에 자그마한 별을 옮겨 그리고 있었다.
"언제 놀아 줄 거야?" 내가 말했다.
"잠깐만... 이것만 좀 끝내고 놀아줄게..."
딸은 이미 혼자 노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날 아이는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서 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보니 오늘따라 많이 커 보였다. 같이 놀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것들이 풍족할 때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부족해지고 나면 간절해진다. 흘려보낸 시간은 돌이킬 수가 없어 더욱 간절하다.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할 때, 아니 놀아줄 때 같이 열심히 놀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