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세상에서도 행운을 붙잡는 사람
슬픔은 당신으로부터 사라진 것만을 보는 것이다. 반면에 삶의 축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끼는 것이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중에서
근면 성실이 미덕이라고 배운 시절, 내가 가진 한 가지 확신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사실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전문가가 되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내가 나고 자란 시대에서는 종교와도 같은 신념이었다.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할 때면 나의 부족함을 탓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노력과 끈기를 부러워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상의 규칙 말이다. 왜 똑같이 노력해도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는가?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은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든 상으로, 기발하고 엉뚱한 업적에 수여된다.
2022년 이탈리아 카타니아대 연구진은 '운(Luck)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한 연구로 제32회 이그노벨 수학상을 수상하여 주목을 받았다.
TvL(Talent versus Luck) 모델 설계 구조
- 인구(N): 1,000명
- 시뮬레이션 기간: 40년 (20~60세)
- 시간 단위(Δt): 6개월 (총 80 iteration)
- 초기 자본(C(0)): 10 units (전원 동일)
- 이벤트 수(NE): 500개 - 행운/불운 비율(pL): 50%
연구진이 에이전트 기반 시뮬레이션 모델(TvL 모델)을 통해 재능, 운 등의 조건을 설정하여 성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성공과 운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지만 성공과 재능 간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재능이 평균에 가까운 사람이 운이 좋아 보상을 독차지할 확률이 더 높았다. 재능은 정규 분포(normal distribution)를 따르지만, 성공은 *파레토(Pareto distribution) 분포를 따르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공이 전적으로 재능과 노력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기존 능력주의의 허구를 과학은 입증한다. 평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운 좋게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기회를 만났을 때, 최상위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 사회적 성공이 ‘공정’이나 ‘능력’이라는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현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재능이 성공의 근간이라고 믿지만, 이는 ‘실력의 역설’ 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뛰어날수록 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중요해진다.
*파레토 법칙: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발견한, 전체 결과의 80%가 20%의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불균형 법칙.
능력주의가 추앙받는 시대, 성공한 자들은 성공의 상당 부분이 운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노력 때문이라고 믿으며 실패한 이들을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반면에 능력주의의 논리에서 실패는 노력의 부족을 의미한다. 여기서 더욱 불합리한 것은 능력주의의 세습이다. 이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도 우리가 학습한 능력주의 시스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성공에 대한 수많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열패감은 얼마나 쉽게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는가? 우리는 내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을 통제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사회는 이런 자기 비난을 부추긴다. 만약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실패가 운이나 구조의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커질 것이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일의 성패가 운이 70%이고 재주나 노력이 30%를 차지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우리는 운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성공이 오로지 노력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실패 역시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현실도피를 위해 떠도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 증명된 정량적 사실이다. 이런 불합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먼저 운과 행운의 차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운(運)’이라는 한자는 원래 ‘옮기다, 움직이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운은 불합리하고 무작위적이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다. 운은 갑자기 우리를 찾아오고 떠나간다. 영원한 운은 없다. 반면에 행운은 ‘행(幸)’이라는 한자가 붙는다. ‘행’은 ‘다행’이라는 의미로, 어떤 작용을 통해 얻어진 결과를 말한다. 행운은 단순히 무작위적인 운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인식하고 붙잡는 운이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차리고, 잡을 때 ‘운’은 ‘행운’이 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카타니아대 연구진이 시뮬레이션하지 못 한 변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시뮬레이션은 오로지 금전적 보상을 성과로 측정한다. 우리의 삶에서 금전적 보상은 너무도 중요한 요소지만, 그 외에도 명예와 사랑, 성취 등 우리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의미 있는 보상들이 있다. 욕망의 자유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어떤 자유를 선택할지 우리는 결정할 수 있다. 이는 수학적으로 증명해 낼 수 없는 사실이며, 인간의 삶을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우리는 성공 혹은 실패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 타인에게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규정한 ‘성공한 삶’이라는 단일한 기준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원하는 삶의 목표를 따라 행운을 발견해 가며 능동적인 삶을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운을 행운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행운을 정의하고, 인식하고, 붙잡을 수 있으며 우리 인생에서 이러한 성과는 결코 수학이 측정할 수 없는 요소이다. 경험의 순간들, 마주치는 사람들을 어떤 행운으로 받아들일지,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고 붙잡을 수 있다. 운은 오고 가지만 행운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
https://www.iris.unict.it/retrieve/dfe4d229-179e-bb0a-e053-d805fe0a78d9/TvL paper published ACS2018.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