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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Oct 09. 2020

에디슨이 말한 1%에 주목하라

뚱딴지같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살아오면서 느낀 점을 얘기하자면, 아주 어렸을 적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이 말했다는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선생님께 들었는데 핵심 내용은 사람은 노력하면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도 천재가 될 수가 있겠구나!’ 어린이다운 순박하고도 착한 꿈을 품고 열심으로 공부한 결과 노력훈장에 최고훈장까지 받으면서 참으로 용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천재는커녕 그냥 일등은 일등일 뿐이었다. 문제는 어른이 되도록 항상 노력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하고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어느 책 제목처럼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물론 에디슨은 백열등 하나를 발명하기 위해 2천여 회의 실패를 거듭하였고 그가 발명을 위해 작성하였던 노트는 3천 권이 넘는다고 하니 에디슨은 천재이기 이전에 위대한 노력가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에디슨이 말한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천재란 1%의 영감을 찾느냐 못 찾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에디슨의 명언이 된 이 말이 기사화되고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99%의 노력’이라는 말에 꽂히면서 다른 사람들도 필자처럼 오로지 노력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의심을 해본다.      



무릇 천재(天才)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다. 말뜻 그대로 타고나는 것이다. 다만 필자 같은 범인도 노력하면 수재 또는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영재가 될 수는 있겠다. 공부 잘해서 서울대 가고 하버드대에 간다고 천재는 아니다. 천재는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서 노는 사람을 말한다. 천재는 결코 노력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멋모르고 것 낫 없이 용쓰다가는 자칫 천재(天災)를 당할 수도 있으니 차라리 필자처럼 그냥 놀든가, ‘나는 그래도 남다른 뭔가가 있어’라는 섭섭한 생각이 든다면 노력하되 발명과 창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1%의 영감을 찾기 위해 99%의 노력을 재능 찾기에 종속시키는 게 지름길이라는 생각이다.      


아주 오래전 국민교육헌장에 있는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는 게 현명하다는 얘기다. 특히 지식기반의 4차 산업혁명 시기에 필요한 건 획일적인 노력이 아니라 각자 타고난 보물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최소한 1%의 빛나는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게 필자의 오래된 소신이다. 그걸 찾아주는 게 교육자나 학부모 등 어른들의 역할이자 의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술술 잘 풀리면 인생은 어쩜 훨씬 재밌고 행복해질 것이다.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이렇게 인간의 지적 역량이나 재능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며 ‘다중지능이론’을 정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에디슨이 그러했듯 999번의 노력과 실패 끝에 발명 하나 할까 말까 한 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는 이에 근거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실사구시 해야 할 것이다. 소위 창조경제나 혁신경제를 많이 얘기하는데 이것은 우선 돈 버는 경제가 아니라 당장은 돈을 엄청나게 쏟아부어야 한다. 그건 명령과 지시에 신속 정확하게 정답이 출력되는 군대식 머리를 포맷하고 엉뚱하고 생뚱하고 갸우뚱한 창의적인 머리로 리셋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에 대해 지불해야 할 댓가이기 때문이다. 999번의 실패를 떠안을 생각이 없다면 창조나 혁신을 얘기해선 안 된다. 초기 투자도 하지 않고 당장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낯설게도 생각해보고 거꾸로도 시도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억지로 연결(강제결합법)도 해보면서  오만가지 실패 끝에 영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실패의 자유를 부여하지 않으면 타고난 천재도 노력으로 달성한 영재도 모두 잃게 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는 기초과학 등에 쏟아붓는 돈이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영국의 리차드 린(Richard Lynn), 핀란드의 타투 바하넨(Tatu Vahanen), 스위스의 토머스 폴켄(Thomas Volken)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지능은 세계 최정상 수준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머리(IQ) 좋은 거와 창의성은 다른 차원이다. 노벨 과학상이 없는 이유다. 창의성이 없는 건 어렸을 때부터 정답 찾기에 길들여지고 다른 사람과 다르거나 틀리는 걸 두렵게 만든 교육환경 탓이 크다 할 것이다. 창의성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놀이정신으로부터 나온다. 평생 노력해봐야 90점 받기가 힘들다면 거기에 99%의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거꾸로 자신의 특기와 재능이 무엇인지를 찾는 1%에 노력을 기울일 일이다.      


개인이 가진 수행력을 능력이라고 하는데 노력한 만큼 능력은 어느 정도 오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50의 노력으로 90점을 받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100의 노력으로 90점을 받을 수 있다면 이건 능력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다른 얘기가 된다. ‘형질’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우리의 몸과 뇌는 수만 년간 이어진 선택이 누적되어 만들어졌는데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일생동안 불변하는 요소를 말한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양궁과 육상 종목을 보면 한국인에게 맞는 게 분명 있어 보인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형질 적합성이 맞는 거고 여간 노력해도 안 되는 건 형질 적합성이 안 맞는 것이다. 그래서 에디슨이 말한 1%에 주목하여 타고난 저마다의 재능을 찾는데 주력하는 게 자신의 행복은 물론 국가 경쟁력도 높이는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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