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10년 전 놀이인문학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놀이는 자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베짱이가 굶어죽지 않고 있다는 걸 보고 배짱을 갖게 되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놀이를 연구한다는 걸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왜냐면,
21세기는 놀이의 시대, 호모루덴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어쩜,
디지털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아날로그적이고 원시적인 놀이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한국 사람의 손기술이나 손맛은 이미 세계에 정평이 나 있다. 신궁이라 불리는 양궁의 세계 제패도 그렇고 세계 골프대회나 국제기능올림픽에서도 한국인이 휩쓸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손안에 쏙 들어가는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하는 감별사라는 직업이 있는데 보이지도 않는 수컷의 그것(?)을 손끝 감각으로 가려내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 최고라 한다. 도대체 신의 경지라 할 만한 손의 뛰어난 감각은 어디서 왔을까?
“전 세계 나라 중에서도 한국은 귀한 손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며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알렉산드르 멘디니는 극찬하였다. 서울대 손욱 교수는 말한다. “손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나라 민족의 DNA 속에 이어져 오는 것이다.”라고. 세계 최초의 정교한 측우기,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등 등 우리 선조들의 손길로 이루어진 보물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문화인류학적이고 유전과학적인 측면에서 깊이 있게 우리들의 손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이 동물과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은 두 발로 우뚝 서서 손을 사용하면부터다. 그 뒤 인간은 진화를 거듭하여 급기야는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고 오늘의 첨단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는데 이걸 담당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손’이었다. 손 중에서도 손끝은 가장 예민하고 가장 섬세하며 그래서 가장 감각적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감각은 공기놀이나 구슬치기 같은 손끝놀이를 통해 발달시킨다. 감각이 발달되어야 두뇌가 발달된다. 기억장치든 복잡한 연산이든 어지간한 건 대부분 컴퓨터로 가능한 시대이지만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되어도 넘볼 수 없는 불가능의 세계는 인간의 감정과 감각이다.
1,300여 년 전에 제작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현대 기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할 정도도 섬세하고 창의적이며 예술성이 뛰어나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 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는 걸작이다. 이걸 만든 건 신이 아닌 신의 경지에 달한 우리 선조들의 손이었다. 이 손을 발달시킨 건 어렸을 적부터 놀았던 구슬치기나 공기놀이 등 손끝놀이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은 직경 10미터짜리 천체망원경이다. 정밀도는 40만 분의 1센티미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럼 이건 컴퓨터 기계로 깎을까? 물론 대부분의 공정은 자동화된 기계로 깎지만 최종 작업은 예민한 인간의 손길이 스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다. 정밀한 기계공작도 NC선반으로 깎는데 역시나 최종 작업은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정밀도를 보장받을 수 있다. 집도의를 보면 적재적소에 예리한 매스를 대고 수술 뒤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꿰매기를 잘하는 가에 따라 위태로운 생명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 그래서 명의들은 수천수만 번 바느질 연습을 하며 손끝 감각을 발달시킨다.
2014년 서울국제여성협회가 마련한 주한 외교관 부인들을 위한 외교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필자는 놀잇감을 가지고 참가하였다. 바로 그 자리에서도 한국인의 위대한 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양인들이 공기놀이를 해보려 시도해보지만 우리나라 어린이만도 못하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도 외국인을 위한 전통체험을 하면서 왜 서양의 어른들은 한국의 어린이만도 못할까 궁금했었다. 혹시 타고난 뭔가가 있는 거 아닐까?
필자는 한국인의 ‘손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외국인이 보면 거의 묘기라고 경탄하는 젓가락질이 있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도 젓가락질을 하지만 그들은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며 한국인은 가느다란 쇠젓가락으로 콩은 물론 좁쌀도 집을 수 있는 민족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근래에 들어 감각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군대에서는 젓가락질 못하는 군인들을 위해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포크숟가락을 사용한다는 소식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바로 놀이가 없어지고 대신에 학습 만능과 전자게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놀이가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까닭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판 두들겨 게임하는 것이나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건 발달되어 있지만 예민하고 섬세하고 정확성과 집중을 요하는 감각은 전혀 발달되어 있지 않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우뇌가 최고로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의 두뇌를 발달시키는 방법은 감각이나 신체 자극을 통해 우뇌를 발달시켜줘야 좌뇌도 발달된다. 외우기나 계산 등 좌뇌는 우뇌 발달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뛰어난 두뇌를 타고났다 하더라도 제대로 쓰지 않으면 퇴화하기 마련이다. 영어 수학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뇌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며 더 중요하게는 한 사람의 평생 행복과 직결된 감정과 정서를 풍부하게 해 준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정책과 교육정책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손끝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한데도 ‘장인’들이나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오로지 대학입시를 목표로 자기 하고 싶은 건 유보한 채 죽으나 사나 공부만 해야 한다. 여기서 국어나 영어 수학은 공부에 해당되지만 음악이나 체육을 잘하면 공부 잘한다는 개념에서 빠져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왜 똑같은 과목인데 수학은 공부에 해당되고 음악은 공부에 해당되지 않는단 말인가. 남녀차별을 없애고 인종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듯이 학교에서 교과 차별을 과감하게 철폐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의 특성과 적성에 맞게 교육정책이 바뀌면 지금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해질 것이다.
현재 학교교육은 국 영 수 등 일반 교과와 소위 특기적성 교육이라 하여 예체능은 그 방면에 재주가 있는 아이들에게 해당되고 기술 등 실업계는 아예 찬밥신세다. 그런데 따져보면 실상은 정 반대다. 예체능이나 기술, 공예 등은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잘하고 즐거워한다. 따라서 교육이 거꾸로 바뀌는 게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생각이 든다. 즉, 유전학적으로 우뇌가 발달된 한국인의 뇌구조에 맞게 예체능과 기술, 공예를 수학이나 과학, 영어와 마찬가지로 주요하게 편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거꾸로 수학, 과학 잘하는 아이들을 특기적성 학생으로 분류하여 특별히 교육을 시켜야 한다. 특정 과목에 뛰어난 학생들을 일반학생들과 함께 묶어둘 게 아니라 잘하는 걸 더 잘할 수 있게 한다면 노벨상도 나올 것이다. 현재의 과학고나 외고는 소위 SKY대 입시를 위한 학원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의 특기적성과 행복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도록 혁신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나라가 수학 과학을 우선시한다고 우리도 똑 같이 따라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다. 생뚱맞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타고난 문화민족으로 우리 식대로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장땡' 아닐까? 그것이 오히려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