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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Oct 17. 2020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놀이였다


시시콜콜(視視callcall)
: 저 좀 봐주세요. 한번 더 봐주세요.
  저 좀 불러주세요. 한번 더 불러주세요.


어떤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하였는데 필자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놀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서정주, 자화상 중에서)          


<스물세 해를 넘어 평생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놀이였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질없어만 보이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비웃음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철없음을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안을란다.>(놀자선생, 자화상 패러디)



필자는 어렸을 때 겨울이면 연을 날려보고자 동네 형들이 연 만드는 걸 어깨너머로 유심히 보며 배웠다.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그리고 만드는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빠짐없이 알아야 멋진 연을 만들어 하늘에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연살은 뒤뜰에 자라고 있는 시누대를 낫으로 베어서 쓰면 된다. 그런데 구하기 힘든 건 창호지였다. 다행히 겨울을 대비하여 문창살을 바르고 남은 창호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마저 어른들은 잎담배를 말아 피우는 데 사용하는 귀한 것이다. 친구를 시렁 아래 엎드리게 하고 등 위로 올라서서 몰래 한 장 슬쩍 하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들만의 공간인 사랑방에 둘러앉아 사뭇 진지하게 작업을 시작한다. 연살을 바를 풀은 밥 먹을 때 한볼테기 떼어놓은 걸 으깨서 사용한다. 살 하나하나를 정성을 다해 쪼개고 다듬느라 손은 엉망이 되지만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린다는 희망이 있기에 그저 즐거울 뿐이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연 하나를 만드는데 한나절을 다 보낸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연에 목줄을 매면 이제 바람만 기다리면 된다. 연실을 아주 어렸을 적엔 무명실에 풀 먹여 사용했던 거 같다. 연싸움을 위해서 형들이 사금파리를 잘게 으깨어 풀 먹이는 것도 목격하였다.  필자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쯤 산골짜기까지 일명 고래심줄이라 불리는 나일론 실이 들어왔는데 말 그대로 신천지의 경지였다. 그런데 질긴 실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만든 연은 곧바로 하늘로 날지 못하고 연방 빙빙 돌다가 땅에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연을 바람을 타게 하여 공중에 띄워보지만 생각대로 오르지 못하고 자꾸 한쪽으로 뒤뚱거리다가 땅바닥에 꼬라박고 만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속상하고 초조했던지. 왜 내 연은 땅을 박차고 하늘 높이 못 오를까. 한쪽 목줄을 좀 감아주고 꼬리를 붙여 균형을 잡아준다. 드디어 순풍을 타고 연은 하얀 실을 빨랫줄처럼 끌며 저 멀리까지 날아오르고 얼레는 빙글빙글 신나게 돌아간다. 연을 더 높이 띄우기 위해서는 팽팽한 실을 잡고 위로 낚아채듯이 당겨야 한다. 바람 타고 드디어 하늘로 치솟는 연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은 벅차게 방망이질을 한다. 마치 내가 하늘을 나는 듯 무한 상상에 빠진다. 산 너머 동네 아이들은 어떻게 노는지, 불빛 찬란한 도시 아이들은 옷 차림새가 어떤지 여행을 하기도 하고 하늘 높은 곳에 있을 것 같은 천지신명께 소원을 빌어보기도 한다. 얼레의 실이 거의 풀릴 때쯤이면 연은 거의 수직의 머리 위에 떠 있다. 이때의 기분은 어렸을 적 짧은 인생이지만 내 인생 최고조에 달했다. 지상층의 바람을 타고 넘어 상층 바람을 타게 되면 이제 경지에 오른 것이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연은 유유자적 혼자서도 잘 논다. 나무에 얼레를 묶어놓고 고구마를 깎아먹는 여유까지 부리며 나는 드디어 연날리기의 달인이 된다.          



낚시꾼들은 그 ‘손맛’을 못 잊어 낚시 중독이 된다고 한다. 연 날릴 때 짜릿하고 팽팽하게 긴장된 손맛을 요즘 아이들은 과연 몇이나 알까. 연은 바람 타고 자꾸 달아나려 하는데 꼭 붙들고만 있으면 연은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거나 살이 부러지고 만다. 마치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닮았다. 지상층 바람이 아무리 사나워도 잘 조절하여 상층까지 올라간 연은 보란 듯이 빙글빙글 재주도 부리면서 추락하지 않고 잘 논다. 자식 키우는 것도 팽팽한 연줄을 잘 붙잡되 풀어주고 댕기기 즉, 밀당을 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혈육으로 맺어진 연줄이라고 어거지를 부리거나 맘대로 다루서는 절대 좋은 (인)연이 될 수 없다. 또한 정월 대보름 땐 그동안 잘 놀았노라 연줄을 끊어주듯 회자정리(會者定離)하는 게 인생사 같기도 하다.        


   


연은 기원전 400년 경 플라톤의 친구인 알투스가 만들었다는 서양의 기록이 있고 동양에서는 기원전 200년 경 한신이 군사용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고서에 의하면 삼국시대부터 통신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고려 최영 장군에 이어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형형색색 개량된 연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아이들은 마치  멈춰 선 탱크나 고장 난 총으로 병정놀이를 하듯 어른들이 실전용으로 사용하던 연을 놀잇감으로 전환시켜 놀았을 것이다. 영조가 어렸을 때 궁궐 안으로 날아든 연을 갖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야단맞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는 걸 보면 연은 예나 지금이나 재밌는 놀이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노는 데 쓰이는 것을 장난감이라고 하는데 장난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건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놀이가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고려시대까지 전국 규모의 축제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지배하면서 노는 것을 천대시 하였고 일제시대에는 놀이문화가 탄압을 받았으며 해방 뒤에는 서양문물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가치관도 서양식으로 급격하게 바뀌게 되었다. 광대나 날라리는 항상 손가락질이나 아랫것 취급을 받아야 하였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장난감도 상품화되어 시간 들여 직접 만들던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팽이도 제기도 바느질하여 만들던 콩주머니도 이젠 돈만 주면 곧바로 사다가 결과물을 즐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젠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화면 속에 들어가 전쟁을 즐기고 식물을 키우기도 한다.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참 좋은 세상 같다.      

    

아이들은 한 가지 특정 장난감을 가지고 시간을 보낼 때 스스로 이야기를 상상하여 꾸미고 엮어낼 수 있다. 옛날 달팽이집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그 놀이판을 응용하여 ‘떡장수놀이’를 만들었다. 심심해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한가하게 그럴 시간이 없다. 어른들보다 훨씬 바쁜 요즘 아이들은 무엇이 키우는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를 키운 건 대부분 놀이였다.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연 줄을 당기던 긴장으로 팽팽한 손맛과 함께 유년기 적 누나가 태워준 나무에 매단 그네의 호습고 오금 저리던 재미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어렸을 적 굴렁쇠를 처음 굴릴 때의 그 아슬아슬한 짜릿함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나는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실팽이를 돌릴 때 손끝을 타고 내려와 대퇴부를 강타하던 전율과 자전거를 처음 탈 때의 조마조마한 두근거림과 설레임이 나에게 남아있지 않았다면 나는 실의에 빠져 절망했을 때 못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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