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가끔 수학 문제로 끙끙대는 꿈을 꾼다.” “수학은 나에게 골치 아프게 하는 존재일 뿐이었죠.” “그놈의 수학만 없었더라면 서울대가 아니라 하바드대라도 갔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수학은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트라우마가 되어 괴롭힌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산수라 하였는데 나한테 수학의 공포는 구구단 시험으로 다가왔다. 학교가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어 학교가기를 포기한 나는 퇴학당한다는 전갈이 오면 엄마 손에 끌려 학교에 가곤 하였는데 억지춘향이 오래가겠는가. 이삼일 다니다가 또다시 집에서 빈둥거리는데 아랫동네 여학생이 집으로 찾아왔다. 이번에 또 학교 안 오면 정말 퇴학시킨다고 담임선생님이 전해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마지못해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구구법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구구단을 외우는 학년이니 아마 2~3학년쯤 되는 시기였나 보다. 그런데 나는 어거지로 책받침 보고 외운 게 기껏 2단과 3단 정도일 뿐이었다.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 아뿔싸 눈앞이 아찔해왔다. 2단이나 3단 문제는 몇 개 안 되고 내가 외우지 못한 문제투성이였다. 아는 문제만 풀고 나니 시간은 철철 남아돌고 걱정은 태산같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8X7이라든가 9X8에 답을 써넣어야 할 빈칸들이 너무나 많았다. 고통의 시간이 흘러가길 바라고 있었으나 시간은 왜 그리 느리게 흐르는지. 아찔하고 끔찍한 시간은 아득한 공포로 휩싸이고 있었다.
문득 이 일은 2, 이 이 4, 이 삼은 6, 이 사 8 ... 이게 뭘까? 가만히 따져보니 2단은 2를 계속 보태고 있었다. 더하기는 자신 있지 하면서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8X7를 풀려면 8을 일곱 번 더하면 되는 거 아닌가? 누가 볼까 봐 양 손을 책상 밑에 숨긴 채 손가락으로 왼손은 더하기 오른손은 횟수를 곱아가며 풀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주먹구구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많이 걸리고 몇 문제 못 풀고는 끝종 소리가 났다. 속으로는 그래도 몇 문제라도 풀었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해하고 있는데 채점을 하던 선생님이 나를 앞으로 불러냈다. 그러더니 8단을 한 번 외워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눅이 든 체 얼음땡이 되고 말았다. 아마 온몸을 떨고 있었을 것이다. 우두커니 서 있으니 선생님 하시는 말씀. “누구 거 보고 컨닝했어?”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누구 거 보고 썼다는 의심에는 억울하였지만 차마 그 많은 숫자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더해가면서 풀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왠지 더 창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먹구구식으로 푸는 내 방식은 전적으로 틀렸고 매우 미련스러운 방식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나는 다른 과목은 거의 외우다시피 공부를 하였는데 수학은 왠지 두렵고 가까이할 수 없었다. 맘먹고 수학의 원리라든가 문제풀이를 해보면 재미있어 보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학은 시험공부에서도 항상 뒷전이었고 너무 먼 거리에서 가까워질 수 없었다. 이른바 수학 트라우마에 걸린 나는 일찌감치 ‘소포자’의 인생을 시작한 셈이다.
수학은 동양이나 서양에서 수천 년 전부터 세상을 수로 이해하고 보다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 수로 표시하기 시작하였을 텐데 필자는 끝내 수의 세계를 이해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왜 수학을 그렇게 중요한 과목으로 치고 수학을 잘해야 좋은 대학 가는 걸로 되었을까?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극심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위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대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암스트롱의 달 착륙(1969.아폴로11호)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소련은 1957년에 세계 최초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는데 항상 소련보다 앞선다고 생각하였던 미국과 서방세계는 순간 맨붕이 되어 버린 사건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데, 일례로 소련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통신망 개발 덕분에 오늘날의 인터넷의 어머니라 할 알파넷도 그때 나왔다.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창의성과 흥미 위주의 기존의 진보적인 교육체계를 확 바꿔버린다. 즉 소련과 경쟁하여 이기기 위해서는 기초학문인 수학과 과학을 초등과정부터 고등학교까지 주입시키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이전의 호기심 어린 관심이나 개인적인 흥미는 유보시킨 채 국가를 위해 전제주의적인 교육의 틀을 전 세계에 뿌리내리게 한 게 냉전시대의 스푸트니크 쇼크였다. 이제 수포자들은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구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탓하며 위안을 삼으라.
2014년 우리나라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렸는데 사상 처음으로 여성 수학자가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노벨상이나 필즈상은 하늘의 별따기 이상으로 나오기가 힘들다. 아래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이들의 호기심을 죽이는 문제풀이 중심의 수학교육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필즈상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카니(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의 얘기다. 고등학교 때 수학의 정석을 아예 외워버리는 지독한 놈을 봤는데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주기는커녕 오히려 죽이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수학 문제를 외웠던 그 친구는 분명 수학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창의성은 질문의 힘에서 나오며 느닷없이 나한테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겁먹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임기응변이자 창의력이다.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우리나라 학생들이 시험은 세계에서 제일 잘 보는데 학습에 대한 호기심은 세계 꼴찌인 교육시스템과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노벨상이든 필즈상이든 나오기 힘들 거 같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이 2014년 예일대 설립 이후 312년간 유지된 '금녀의 벽'을 뚫고 수학과 종신직 교수로 임용된 오희 같은 석좌교수도 있긴 하다. 오희 교수한테 물어봐도 분명 똑같이 얘기할 것이다. 노벨상이나 필주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교육시스템 아래서는 누구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