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마전과 닭싸움
<만국기 날리는 푸른 하늘에 마음도 푸르구나 우리들의 날
노령의 힘찬 산맥 정기 받아서 달려라 이겨라 우리청군아>
가사가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국민학교 다닐 때 우리학교 응원가였다. 해년마다 봄가을로 목이 터져라 불렀기 때문에 아직도 입에 붙어있다. 그런데 대학 다닐 때 똑같은 곡조로 된 데모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녹두장군 말달리던 호남벌에서 황톳길 달리며 우리 자랐다
노령의 힘찬 산맥 정기 받아서 바위같이 굳세게 힘을 길렀다>
‘호남농민가’ 중 1절이다. 호남농민가를 갖다가 소위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한 게 우리가 부르던 응원가였던 거다. 호남지역의 학교에서는 교가나 응원가에 대부분 '노령산맥'이나 '노령의 정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 거 같다. 이은상 작사의 우리 학교 교가에도 노령이 감초처럼 등장한다.
노령산맥 삼산봉의 정기 받으며 / 불갑산 삼학천을 바라보는 곳
들려오는 종소리 즐거운 동산 / 여기가 우리고장 묘량국민학교
옛날 같으면 지금쯤 운동장의 흙먼지 속에서 교가와 응원가를 목청 컷 부르며 우리는 기마전과 깃대 빼앗기, 닭싸움을 하며 자라나고 있었다. 기마전은 덩치 큰 친구가 앞에서 말이 되고 뒤에 두 사람은 양 팔로 앞사람 어깨에 걸어 기수가 두 팔 위에 올라타 상대방의 머리띠나 모자를 뺏어오는 아주 격렬하기 그지없는 싸움이었다. 얼마나 격렬했던지 가끔 부상을 입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운동회에서 어느 날 기마전이 없어지고 말았다. 군사독재정권은 이런 놀이마저 허용하지 않는 독단을 부리지 않았나 싶다. 아마 문교부를 통해 학생 지도사항으로 지침이 하달되었을 것이다.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전투성을 배우면 안 된다며 ‘학생 순화’ 차원에서 닭싸움이나 기마전은 없어지더니 운동회는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물론 부상자가 많이 생겨 학생 보호 차원에서 그랬을 거라고 이해하고 싶다.
최근 재미교포인 진천규 기자가 북한을 수십 차례 들어가 취재를 해왔는데 거기엔 여전히 전투적이어서 재밌는 기마전과 닭싸움을 많이 하더라고 전한다. 여하튼 격렬하고 재미났던 우리의 운동회는 남학생들은 곤봉체조나 인간탑 쌓기 텀블링을 하기 시작하였고(이거 일본에서 많이 하던데?) 여학생들은 소고춤이나 강강술래 연습하는 운동회로 변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마을별 이어달리기는 딱! 화약총 소리(화약냄새도)와 함께 불꽃 튕기는 응원전이 펼쳐졌으며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자미로 대박 터뜨리기 시합은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이런 종목들도 지금은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코로나로 가장 놀기 좋은 계절에 운동회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2020년의 가을은 더욱더 쓸쓸해진다. 올해는 모든 것들을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할 거 같아 내 마음의 색깔이 블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