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태평소, 즉 날라리를 배우던 깍두기 출신 회원이 동국대 평생교육원에 명상학인지 명리학인지를 배우러 댕긴다는디 알고 보니 고게 다름 아닌 사주팔자였드라. 어느 날 나님한테 사주팔자를 달래서 대충 년 월 일 시를 적어주고는 잊어먹고 있었는데 어느 야심한 밤 12시도 훨씬 넘었는데 느닷없는 전화가 와서 ‘뭔 급한 일이다냐’ 받았는데,
깍두기 : 대장님! 혼자 살지요?
나 님 : ???
깍두기 : 솔직히 말해 봐요! 혼자 살지요?
나 님 : 자다가 웬 봉창 뚫는 소리래요?
깍두기 : 큰스님이 그라시는데 혼자 산다는데요?
나 님 : 무슨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함부로 한답디까?
깍두기 : 지난번 준 사주팔자 드렸드만,
나 님 : 그게 뭐 잘못됐나요?
깍두기 : 그게 아니라 큰스님 말씀이 스님팔자라고...
나 님 : 전화벨소리에 가족들 다 깼거든요?
사주팔자를 믿어본 적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큰스님께서 ‘중팔자’라니까 스님이나 신부님처럼 살 순 없겠지만 나님은 이웃을 위해 살 팔자려니 하고, 그러나 솔직히 인류공영에 이바지까진 도무지 아닌 것이고 좋게 얘기하면 성직자 팔자려니 자위하고 있다. 8자가 평범하지는 않다는 얘기일 텐데 그래서 전도사가 된 모양이다. 이름하야 놀이 전도사 아닌가.
더 오래전 학창 시절이었던가 보더라. 이른바 이념서클(운동권 조직)에는 사회과학이라는 게 유행하였다. 학습 토론했던 책 중 하나인 <<철학 에세이>>라는 것이 있었다. 거기서 제목 하나가 꽂혔는데 <팔자는 고칠 수 없는가?>였던 걸로 기억된다. 내용은 운명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사는 삶은 노예적인 삶이고 내 운명의 주인이 되어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사는 삶이 주인 된 삶이라는 것으로 '주체성'을 강조한 것으로 요약된다. 매우 상식적인 삶의 철학이지만 백번 천 번 맞는 천가당만가당한 얘기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중 8자 놀이라는 게 있다. 통로가 있는 8자를 그리는데 영어의 S자처럼 한 발 정도 떼서 건너갈 수 있도록 놀이판을 그린다. 그래서 일명 S자 놀이라고도 한다. 가위바위보로 술래가 정해지면 술래는 한쪽 건널목 안쪽에 서고 놀이자들은 반대편에 서서 시작하는데 술래가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외친 뒤 잡으러 다닌다. 단순한 놀이라서 규칙이 한두 가지밖에 없는데 놀이자들은 도망가다가 금을 밟으면 안 되고(금 긋고 노는 놀이에서는 기본 중의 기본) 잡힐 거 같으면 건널목을 건너서 도망갈 수 있다. 그러나 술래는 건널목을 건널 수 없고 건널목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말 그대로 8자만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 팔자다. 놀이 참여자가 많으면 술래가 바로바로 바뀌지만 인원수가 적으면 여간 잡기가 힘들고 지치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8자를 뜯어고친다. 한쪽 건널목을 터서 술래도 다닐 수 있게 통로화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설사 대여섯 명이 8자 놀이를 하더라도 재밌게 놀 수 있다. 재미를 위해 기존 놀이판을 깨서 바꾼 것이다. 반대로 놀이 참여자가 20명이 넘는다면 이번에는 술래가 너무 빨리 잡혀 재미가 없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8자를 하나 더 만들어 놀면 한 학급 아이들이 모두 함께 놀 수 있다. 일명 쌍8자놀이가 되는 것이다. 8자는 바꿀 수 없는 게 아니라 아이들은 재미를 위해 너무도 쉽게 바꾸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중요한 건 8자를 바꿀 수 있으려면 놀이판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시멘트 바닥에 페인트로 그려져 있는 기성 8자 놀이판으로는 불가능하다. 기성품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땅바닥에 내가 스스로 그렸을 때 8자는 바꿀 수 있다. 놀이의 기준, 즉 세상의 기준을 바꾸는 것은 재미를 추구하는 놀이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기성품을 외부에서 들여와 적용만 해본 사람들이나 기성품을 수입하여 사용만 해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것을 생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면 자신이 한 번도 기준의 생산자나 창조자가 되어보지 못하고 항상 외부의 것을 기준 삼아 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성품은 분명코 어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내가 그 걸 만드는 어느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을 것이고 그 생뚱한 질문에 심혈을 기울인 어느 누군가가 새로운 기준을 생산하였을 것이다.
놀이판에서 아이들이 놀이의 주인공이 되어 8자를 바꾸듯이 삶에서 내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팔자를 바꿀 수 있다는 걸 하찮아 보이는 놀이가 가르쳐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