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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Oct 28. 2020

치맛바람 속에서 탄생한 엿먹어라

노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나라엔 소위 치기 놀이가 많은데 손치기, 발치기, 팽이치기, 딱지치기, 자치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장치기, 앵두치기, 오랑꽃치기, 풀치기, 나무치기, 꽃단치기, 주먹치기, 낫치기, 호미치기, 못치기, 삔치기, 돈치기, 쌈치기 등 등 주변의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놀이화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엿치기라는 게 있다. 먹는 음식 가지고도 놀 정도이니 역시 한국 사람은 놀이의 끝판왕이란 생각이 든다. 엿치기는 가락엿으로 서로 내기를 하는데 가락엿을 하나씩 잡고 동시에 부러뜨린다. 그리고 누구의 구멍이 큰지를 겨뤄 따먹는 놀이로 예전 동네 어른들을 보면 엿을 부러뜨리면서 입으로 훅~ 하고 부는데 정말 구멍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기계로 대충 뽑아낸 엿에는 구멍이 없고 수타면 뽑을 때처럼 수십 번을 왔다 갔다 반죽되면서 속에 기포가 생겨야 바삭바삭 엿 맛이 좋고 엿치기가 가능하다.           



'엿장수 맘대로'라는 말은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옛 시절 고무신이나 빈병을 갖고 가서 엿 바꿔 먹을라치면 엿장수가 넓적한 엿끌을 엿판에 대고 엿가위로 자기 맘대로 떼어줬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이놈의 엿을 먹고 싶어서 필자가 어렸을 적 부뚜막 입구 쇳덩어리까지 빼다가 엿장수한테 갖다 바쳤는데 아마 그 엿장수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엿장수 맘대로가 그렇듯이 엿과 관련된 말은 대부분 놀이만큼이나 부정적이거나 조롱으로 사용되고 있다. '엿같이 생겼다'거나 '엿먹고 조총쏴', '엿먹어라' 등은 놀고 자빠졌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상대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심하다. 도대체 엿이 어떻게 생겼길래 그럴까? 아마 가락엿이 아닌 뭉텅뭉텅 만든 엿의 못난 모양새를 빗대어 말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엿이 가진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어르신께 “엿 드세요.”라며 영양가 좋은 엿 드리기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엿먹어라'라고 하면 보통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이에 대한 유래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어떤 사람은 예전 광대들에게서 나온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엿을 여성의 성기에 빗댄 것이라는데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엿먹어라'에 대한 근대사의 씁쓸한 사연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타임머신인가 하는 티비프로그램에서도 방영된 것이라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인데, 때는 바야흐로 철수가 두어 살쯤 되어 아장 자장 걸을 쯤인 1964년 12월이었던가 보더라. 전기 중학 시험(옛날엔 중학교도 시험, 특히 경기중학교가 유명. 주로 여기를 졸업하여 경기고와 서울대 출신들이 우리나라의 최상층 기득권이 되었다)에 공동 출제된 자연과목 18번 선다형 문제 가운데 예문은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놓은 것이다. 1. 찹쌀 1kg을 물에 담갔다가 2. 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3. 이 밥에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는 다음에 잘 섞어 60도의 온도에 5~6시간 둔다.’ 문제 Q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디아스타제 2. 무즙 .... 다른 예문은 모르겠고 두 개 중 하나를 고른다면 뭘까? 답은 디아스타제였는데 무즙을 골라 낙방한 학부모들이 항의를 한 것이었다. 항의를 하게 된 원인은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법원에 제소를 하였고 항의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급기야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관계기관(문교부, 교육청, 대학...)에 솥단지째 들고 가서 시위를 하게 되었다. “이게 무즙으로 만든 엿이다!” “책임자는 나와서 엿먹어라!!” “엿먹어라! 엿먹어라!!!”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세상이 시끄러워지자 당시 김규원 서울시교육감, 한상봉 문교부 차관 등이 옷을 벗고 6개월 뒤 ‘무즙 학생 38명’은 정원에 관계없이 경기중학교 등에 합격시킨 사건이라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들의 파워(일명 치맛바람이라고도 함)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즙 학생이 누군지 신상털이를 당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었다. 웃픈 ‘엿먹어라’의 유래다.           



입시철이 되면 ‘합격엿’이 빠지지 않는데 왜 하필 엿일까? 우리나라에서 엿의 역사는 꽤나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1241년 쓴 『동국이상국집』에 「당(餳)은 단단한 엿이고 낙(酪)은 감주의 일종」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엿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엿이 대중화된 시대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과거시험 때 '합격엿'으로 쓰인 시기가 고려시대 또는 최소한 조선시대부터이지 않을까 추측이 된다. 엿의 잘 붙는 성질을 상징의식으로 사용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지신밟기 할 때 상쇠가 복 받으라고 하는 사설인 “물 묻은 바가지에 깨 달라붙듯~ 화로에 엿 달라붙듯~”에서 알 수 있듯이 엿의 성질을 모의하여 합격엿이 나왔을 것이라 추정된다. 지금이야 인터넷을 통해 합격여부를 알 수 있지만 과거에는 합격자 명단을 학교나 기관의 담벼락에 붙였으니 '엿처럼' 합격자 명단에 딱 붙으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전국의 축제장에 가면 약방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게 엿장수인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요새는 엿장수 보기가 힘들다. 이들은 공식 행사장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낮밤 가리지 않고 갖은 연기와 재주를 부려가며 엿을 판다. 엿장수들이 하는 말 중 빠지지 않는 게 ‘애들은 가라’다. 19금과 음담패설은 아마 이들로부터 생산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풍부하고 청산유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엿먹어라'가 엿장수의 음담패설에서 유래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엿에는 두뇌활동에 필요한 포도당을 공급하기에 예로부터 왕세자가 공부하기 전에 조청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다. 또한 『동의보감』에 「엿은 허한 것을 보하고 갈증을 멈추며, 비위를 든든하게 한다. 엿은 기력을 돕고, 담을 삭이며, 기침을 멈추고, 오장을 눅여준다. 엿은 피 토하는 것을 치료하고, 다쳐서 어혈이 진 데는 좀 타지게 졸여 술에 타 먹으면 궂은 피가 내린다」고 소개할 정도로 건강에 좋은 식품이니 수험생뿐만 아니라 코로나와 독감에 면역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들 

엿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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