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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Oct 22. 2020

머리 대신 손을 써라

놀자선생의 놀이의 역설(Nory Paradox)  ⓷

무슨 일을 하다가 효율적으로 해결되길 바랄 때 “머리 좀 써봐”라고 말한다. 머리가 나쁘면 한 번에 끝낼 걸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하거나 손을 여러 번 쓰고서야 해결하기 때문에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어려운 일도 능률적이고 요령껏 처리할 수 있게 된 건 인류가 지능을 고도로 발달시켜 온 덕분이다. 신화나 공상 속에서나 가능하던 달나라를 가고 우주여행을 하는 건 지구 상에 인간밖에 없다. 이렇게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은 없다. 무엇이 이런 지능을 가능하게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손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손과 두뇌발달은 매우 밀접하며 손을 사용하는 만큼 비례하여 두뇌가 발달된다. ‘손은 바깥으로 드러난 또 하나의 두뇌’라는 칸트의 표현대로라면 손을 쓰는 건 머리를 쓴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손을 쓰면 정말 머리가 발달될까? 인류는 약 450만 년 전부터 현재와 같은 곧은 다리로 직립보행을 하였다. 그 뒤 인간은 네 발 달린 동물과 전혀 다르게 진화하였다. 왜냐면 동물과 달리 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손재주 있는 사람'을 뜻하는 호모 하빌리스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직립보행이 생존에 더 불리할 수 있었다는데 손을 이용하여 얻은 이득은 도대체 뭐였을까? 두뇌를 하나 더 가짐으로써 직립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화는 손해 보는 방향이 아닌 이익 보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네 발보다 또 하나의 두뇌인 손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환경 적응에 유리했기에 그 방향으로 진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신경외과 의사인 펜필드의 뇌지도 <호문쿨루스>


사람은 일생동안 약 2500만 번 뭔가를 만진다고 한다. 우리의 신체 기관 중 이토록 쉴 틈 없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건 없다. 많이 움직이고 많이 사용하면 사용한 만큼 발달된다.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說)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사람의 뼈는 200개가 조금 넘는데 뼈마디 중 무려 25%가 손에 몰려 있다. 매우 섬세한 감각기관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은 중요한 감각 수용체로 뇌에서 손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나 된다. 뇌가 차지하는 영역의 크기를 사람의 형태에 비례하여 재구성한 것을 '호문쿨루스'라 하는데 손이 가장 크게 나타난다. 뇌 발달에서 손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손을 사용하는 것은 놀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영아 때 뭐든 손에 잡히는 대로 입으로 감각하던 아이가 앉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하는 놀이가 바로 손놀이다. 왜 손놀이부터일까? 그건 바로 우리의 신체기관 중 가장 발달된 것이 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단동십훈이라는 독창적인 전통육아법이 있는데 신체를 골고루 발달시켜주는 10가지 방법이다. 그중 손에 해당되는 게 30%로 일명 단동치기 박수라고 한다. 자신의 두 손바닥을 협응하여 마주치는 짝짜꿍,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잼잼, 손가락으로 맞은편 손바닥을 찍는 곤지곤지 등 손놀이는 손 감각을 섬세하게 발달시킨다. 감각이 발달된다는 것은 두뇌가 발달되었다고 하는 다른 표현이다. 손놀이가 실재 두뇌를 발달시키는지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실험해보면 발을 움직일 때와 손을 움직일 때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이를 확인한 가천대학교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는 「오래된 미래, 전통육아의 비밀」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우리 선조들이야말로 대단한 뇌과학자였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손은 뇌의 계획과 프로그램에 따라 단순히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만져보고 집어 들고 찔러보고 쥐어짜고 밀치면서 터득한 손의 감각이 뇌의 정교한 신경망(시냅스)을 연결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손놀이는 작은 근육을 사용하는 소근육 놀이로 눈과 손, 입 주변 근육들을 이용한 놀이이다. 손놀이는 단순히 뇌 발달을 도울 뿐 아니라 지각 능력과 모방 기능 더 나아가 신변처리 기술과 읽기, 쓰기 등 학습능력과도 관련이 깊다. 3~6세 아이들은 눈과 손의 협력을 이용한 조작 운동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손놀이가 많이 필요하다. 미국 뉴욕대 리처드 세넷 교수는 손은 만지고 잡으면서 감각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한다. 생각과 손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손과 뇌는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해왔는데 손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져 뇌의 용량을 키웠다는 구보타 기소우의 주장(『손과 뇌_손은 외주의 뇌다』)도 같은 맥락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아이들의 월령별 손발달 과정을 보면 아이는 태어난 지 4개월부터 물체를 손 전체로 잡는 동작을 할 수 있고 9개월부터는 집게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고 잼잼 곤지곤지가 가능하다. 생후 1년 정도 되면 손가락 끝으로 물건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만 2세부터는 크레용을 잡을 수 있어서 온 방바닥과 벽이 낙서로 뒤덮인다. 드디어 3세가 되면 동그라미나 X자 형 그림을 그리며 초보적이나마 손가락팽이를 돌릴 수 있다. 이는 엄지 사용이 원활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다른 손가락과 맞붙일 수 있는 엄지의 발달은 어떤 동물도 흉내 낼 수 없는 ‘신의 축복’이라고 『손의 신비』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존 네이피어는 말하고 있다. 이때부터 동물과 전혀 다르게 비약적인 두뇌발달이 이뤄진다. 구슬치기, 공기놀이, 실뜨기 등 손끝놀이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우리나라 실뜨기는 서양 실뜨기와는 달리 주로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예전에 배구를 하는데 지능플레이 좀 하자면서 머리를 쓰라고 하니까 공을 손 대신 머리로 받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두뇌를 발달시키려면 머리 자체를 쓸 수는 없다. 아이들의 두뇌를 발달시키고 싶거든 머리 대신 손을 자주 쓰라고 하면 된다. 손을 많이 쓰는 것은 어른들한테도 필요하다. 이미 수십 년 동안의 익숙한 행동이 아닌  새로운 손동작을 많이 하면 뇌 건강에 좋다. 뇌는 반복되는 동작이나 행동은 에너지 소모를 막기 위해 ‘자동화’시키는데 일상적인 걷기 또는 칫솔질하기를 신경(뇌) 안 쓰고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낯설게 하기’를 통해 잠자던 뇌에 자극을 주고 깨어나게 하는 게 필요하다. 왼손으로 밥을 먹어본다든가 왼손으로 칫솔질을 해보면 아이가 처음 배우는 것처럼 낯설고 서툴다. 일상 활동에서 치매 증상은 감각이 둔해지고 무뎌지는 걸로 나타난다. 현대인들이 암보다 더 두려워하는 치매예방을 위해서는 손을 한시도 내버려 두지 말고 부지런히 놀리는 게 필요하다. 손을 주로 사용하는 공예가나 화가에게 치매가 거의 없는 이유는 끊임없이 머리 대신 손(뇌)을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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