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선생의 놀이의 역설(Nory Paradox) ⓸
1. 물
2. 잠
3. 움직임
4. 배설
5. 섹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음식, 물, 산소, 휴식, 움직임, 잠, 배설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 질문에서 정답은 5번 섹스다. 인간은 섹스 없이도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나 물을 마시지 못하거나 잠을 자지 못하면 그만 죽고 만다. 섹스 없이도 생존이 가능하다고 하여 모든 인류가 섹스를 중단한다면 인류는 조만간 소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번식욕은 타고난 본성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 통에서도 아이는 태어난다.
위 예문에서 빠진 것이 하나 있는데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피부자극(skin stimulation)>이다. 『스킨십의 심리학』을 쓴 필리스 데이비스 박사는 “인간은 섹스 없이 생존 가능하지만 피부자극이 없으면 죽는다.”고 주장한다.
피부자극이 섹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그 실마리를 우리는 고아원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 초 불황기에 세계 각국의 많은 고아원은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1차 세계대전까지 겹치면서 각국에서는 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독일의 한 지역 고아원에 유아 사망률이 현저하게 낮은 곳이 있었다. 생존율이 50%가 안 되는 일반 고아원에 비해 무려 70%에 가까운 생존율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학자들이 독일로 날아가 탐방을 하게 된다. 환경시설이나 영양 등에서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하던 그들은 보모가 아이들에게 우유 먹이는 모습을 보고 해답을 찾게 된다. 미국의 다른 고아원과 달리 그 고아원은 보모가 아기를 한 명씩 껴안고 우유를 먹이고, 하루에 세 차례씩 아기를 가슴에 안고 말을 걸면서 엄마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아이와의 피부 접촉이 사망률의 현저한 차이를 낳았던 것이다. 그 후 이처럼 가슴에 안고 우유를 먹이는 방법을 ‘머더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피부 접촉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줄뿐만 아니라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밝혀졌다.
심리학자들은 이후 원숭이나 쥐를 대상으로 많은 실험을 하여 피부 접촉의 중요성을 입증하였다. 원숭이 새끼를 낳자마자 떼어놓으면 이삼일이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1950년대에 미 위스콘신대학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헝겊 엄마, 철사 엄마' 실험을 하였는데, 각각 철사와 헝겊으로 만들어진 가짜 원숭이 모형을 만들어 놓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원숭이를 넣었다. 이때, 철사 엄마에게는 우유가 있고, 헝겊 엄마는 따뜻한 담요로 쌓여져서, 새끼 원숭이가 어느 엄마에게 가는가를 관찰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은 새끼 원숭이는 ‘생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당연히 철사 엄마 쪽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실험이 시작되자 새끼 원숭이는 따뜻한 헝겊 엄마에게로 가서 헝겊 엄마를 꼭 안고 있었다. 이렇게 생물학적 욕구보다, 엄마의 따뜻한 품을 더 많이 찾는 것을 ‘접촉위안'(Contact Comfort)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생쥐 새끼도 어미쥐와 떼어놓으면 성장에 장애가 생기고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부드러운 붓으로 스킨십해줬더니 뇌가 활성화되는 게 밝혀졌다. 피부 접촉이 생명을 살리는 사례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쌍둥이 중 미숙아로 태어난 동생을 인큐베이터에 형과 같이 넣어두었더니 형이 동생을 꼭 껴안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을 것이다.
손을 제2의 뇌라고 하였는데 피부를 제2의 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생명체가 만들어질 때 엄마의 자궁 안에 태아의 배엽이 형성되는데 3중 구조로 되어있다. 내배엽은 내장을 만들고 중배엽은 뼈를 만들며 외배엽은 피부를 만든다. 그러면 뇌는 어디에서 만들까? 언뜻 내배엽에서 만들질 거 같은데 뇌를 만드는 것은 피부를 만드는 외배엽이다. 태생학적으로 피부와 뇌는 조상이 같은 형제인 셈이다. 우리 온몸을 감싸고 있는 피부는 외부정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에돌거나 어디를 경유하지 않고 즉각 뇌로 전달한다. 그래서 피부를 제2의 뇌 또는 바깥 뇌라고 부른다. 피부자극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아이의 생존에 필수적이고 뇌 발달과 신체 발육에 꼭 필요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거의 아이를 끼고 산다. 이런 접촉 육아가 과학적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우리나라 전통 포대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최고의 육아용품으로 각광을 받으며 한국에서 사라진 포대기가 뉴욕에서 유명해졌다.
그럼 머리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뇌 발달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뇌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자극을 줘야 그에 반응하여 움직이면서 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뇌를 자극하기 위한 방법으로 머리통을 두드리거나 찌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와 있는 제2의 뇌인 손이나 피부를 자극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아이의 뇌는 피부에 있다』의 저자인 야마구치 하지메는 “뇌를 키우기 위해서는 피부를 직접 자극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의 두뇌를 발달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피부자극으로 뇌를 자극하면 머리가 좋아진다. 어릴 때 책을 통한 지식 습득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놀이는 피부 접촉, 즉 스킨십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쩜 스킨십을 위해 놀이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왜냐면 인류는 손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손을 잡거나 상대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면서 진화해왔으니까.
피부에 햇볕이나 바람 등의 자극을 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쾌감뇌가 된다. 그래서 기분이 울적하면 기분전환을 위해 ‘바람 쐬러’ 나가는 것이다. 독신보다 싸우면서도 떨어지지 않고 사는 부부가 평균 수명이 긴 이유나 관절염으로 바깥출입을 못하게 된 노인들에게 치매가 급속하게 오는 이유도 바로 피부와 뇌의 관계가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스킨십이 많은 아이는 포용력이 넓고 이해심이 많으며 긍정적이고 사회성이 풍부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7년 미국의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5학년 교사 베리 화이트가 아이들과 '악수놀이(handshake)'를 한 게 화제가 되어 ABC, NBC방송을 탔었다. 더욱더 심각해지는 미국 사회의 폭력적인 공격성을 수업 전 이런 접촉놀이를 통해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했으리라고 본다. 행복도가 세계 최상위인 덴마크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첫 번째 덕목은 신뢰다. 이 나라에서는 말로 ‘신뢰’를 가르치지 않는다. 신뢰는 몸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덴마크에서는 ‘접촉수업(contact class)’을 10분 정도씩 모든 학교에서는 진행한다. “쓰다듬으며 때리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없다.”는 게 덴마크 사람들의 믿음이다. 이를 입증하듯 미국의 클레어몬트 대학 폴 잭 교수는 신뢰감은 이성이 아니라 옥시토신 호르몬이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옥시토신은 ‘도덕적 분자’라고 칭한다. 피부는 단순한 신체 기관의 하나가 아니라 ‘사회적 기관(social organ)’이다. 피부 접촉(놀이=스킨십)이 많은 사회일수록 신뢰가 두텁고 즐거움과 행복감도 높아질 것이다.
스킨십인 촉각은 인간에게 형성되는 첫 번째 감각이자 죽음이 임박했을 때 미약하게나마 존재하는 마지막 감각이기도 하다. 접촉은 서로를 연결하고 서로를 가깝게 하며 서로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게 만든다. 코로나 돌림병으로 가장 큰 위협을 받는 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스킨십 결핍이다. 스킨십 결핍은 질병에 대한 면역성과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게 만든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도 아이들은 철없이 뛰어 놀 듯 코로나가 창궐하더라도 아이들을 놀게 해야 할 이유다. 인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사회적 거리 좁히기를 통해 진화해왔다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