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고향, 에펠탑으로 본 진화심리학과 치유방법
최근 들어 아동학대나 폭력을 넘어 살해까지 한 끔찍한 사건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세상 말세’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참담한 심정으로 놀이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위 기사처럼 비단 계부뿐만 아니라 신데렐라에 나오는 계모도 마찬가지다.
사건 개요
- 2003년 당시 10살 A군은 부모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게 됨
-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인 구타·학대
- 성인이 된 A씨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B씨를 알게 됨
- B씨가 남편과 갈라선 2016년 12월부터 A씨와 B씨 동거
- 2017년 3월 B씨는 첫째 아들(당시 3세)을 폭행한 혐의로 A씨를 아동학대로 신고
-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아이들과 1년 접근금지 명령)
-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A씨가 지속해서 부모교육을 받고 사후 관리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아이들을 돌려보냄.
- A씨는 첫째 아이가 자신의 잘못된 어린 시절을 닮았다고 생각
- 9월 A씨는 첫째 아이에게 하루 한 끼만 제공, 수백 차례 목검 폭행, 개와 같이 화장실 감금
- 지속적으로 첫째 아이를 케이블 타이와 털실로 묶은 뒤 방치, 학대
- 9월 25일 오후 10시쯤 탈진한 아이 복부 손상으로 사망
- 재판부는 A씨가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학대와 이혼으로 상처 받은 것이 범행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 22년 징역형 선고
폭력(학대)은 왜 대물림되는 것일까?
2019년 6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생애 주기별 학대 경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 1,515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아동기 부정적 생애 경험과 현재 아동학대 경험을 조사·분석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부모의 아동기 부정적 생애 경험 점수는 0점부터 13점까지인데, 점수가 높을수록 학대나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본 경험이 많다는 뜻이다. 부정적 생애 경험이 전혀 없는 양육자는 20.7%였으며 전체 응답자의 79.3%는 1개 이상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아동에게 최근 1년간 학대를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본 결과 점수가 높을수록 비율이 높았다. 3점 집단은 64.5%, 5점 77.5%로 높아졌고, 7점 이상은 80.3%에 달했다.
부모를 대상으로 아동에게 폭력을 쓴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도 0점 집단은 27%인 데 비해 7점 이상 집단은 78.8%로 높았다. 부모의 폭력은 아동과 배우자를 가리지 않았다. 보고서는 “부모의 신체적·정서적 폭력은 아동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생하며, 아동은 이를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라며 “이는 아동 발달에 영향을 줘 폭력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물림을 끊기 위한 연구와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력이 대물림되는 이유
오리의 각인(刻印, imprinting) 효과
소위 ‘각인(刻印, imprinting) 효과’라는 말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콘라드 로렌츠가 인공부화로 갓 태어난 새끼 오리들이 처음 본 대상을 어미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발견하여 노벨 과학상까지 받았는데 갓 태어난 새끼 오리는 사람이든 청소기든 상관없이 태어난 순간에 처음 본 대상을 어미 오리처럼 따라다니고 애착을 갖는다는 이론이다. 달걀과 함께 오리 알을 부화시키면 새끼 오리가 닭을 어미로 생각하여 쫓아다니는 이유다.
이건 아마 생명체가 자신을 낳아준 가장 가까운 어미를 따라다녀야 생존할 수 있다는 진화의 결과로 보인다. 실험에 의하면 태어나자마자 진공청소기를 본 오리들은 죽을 때까지 진공청소기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오리가 서로 모자관계임을 각인시키는 결정적 시간대는 부화 후 36시간 정도이다. 새끼 오리는 본능에 따라 어미 오리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모방하고 생존 방법을 습득한다. 오리뿐만 아니라 포유류도 마찬가지라는 연구가 이어졌는데 고양이는 4~8주, 원숭이는 1년이 걸리고 사람은 1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신생아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는 신생아에게 엄마 모유가 묻은 손수건을 코에 가까이 가져가면 울음을 그치고, 다른 엄마의 모유와 자신의 엄마 모유를 양쪽으로 가져가면 거의 대부분의 아기들이 자신의 엄마 모유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오랜 시간 동안 엄마의 뱃속에 있던 태아는 익숙한 냄새를 알아내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엄마야말로 생존을 담보해 줄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도 바치는 모성애가 발동되어 왔기에 인류의 생존과 번식이 지금까지 이어진 오래된 진화의 결과다.
새끼 오리가 생존하기 위해 어미 오리를 따라다니며 모방하듯 사람도 마찬가지로 성장기의 아동들에게 부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말투나 아빠의 행동을 모방하여 그대로 흉내 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건 모방이야말로 최고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가 말하듯 폭력에 노출된 시간이 많으면 그 아이에게는 폭력적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이라고 각인되기에 폭력적인 성향을 가질 확률이 많아진다. 거꾸로 온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원만한 성향을 가질 확률이 많아질 것이다. 아이와 함께 놀이친구가 되어 소꿉장난을 하며 의사 선생님이 된 아이에게 진찰받는 환자 역할을 엄마 아빠가 해본 경험이 있는 가정환경과 그렇지 않은 가장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뻔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가 체계화한 욕구 5단계로도 설명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욕구인 생리적 욕구와 두 번째 욕구인 안전의 욕구는 기본적인 욕구다. 그런데 계부 A씨는 아이에게 하루 한 끼밖에 주지 않았다. 더구나 수백 차례 목검으로 폭행하고 화장실에 감금하였다. 불안정한 환경에 처하게 되면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졸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아이는 정서가 불안해지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왕성한 두뇌발달을 이루야 할 시기에 자신을 지키고자 공포와 관련된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면 뇌 발달이 더딜 수밖에 없다. 안전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안정된 가정환경과 더불어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애착 육아) 마시지 등을 통해 스킨십을 많이 해주어야 아이의 정서가 편안해져 신체발달과 두뇌발달이 촉진된다. 이런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건 다름 아닌 놀이 활동이다.
고 향(뇌의 최적화)
폭력의 대물림에 왜 ‘고향’이 나오는가에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시골 고향마을에서 성장하여 도시로 나온 사람들은 타향살이 수십 년 만에 찾는 고향인데도 마치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고 편안하다는 걸 느낀다. 왜 그럴까? 단지 고향이라서 일까? 인간의 뇌는 포유동물 중 가장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는데 앞서 각인효과에서 언급하였듯이 인간에게 환경이 각인되는 시간은 10년이 걸린다고 말하였다.
이 10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주변 환경에 뇌가 ‘최적화’되는 기간을 말한다. 약 1,000억 개의 뇌세포로 구성된 인간의 뇌는 필요한 뇌세포끼리 연결(시냅스)을 하는데 대략 10살 때까지 왕성하게 시냅스가 형성되고 사춘기가 되면 필요 없는 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왜냐면 평생 두메산골에 살아갈 사람에게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갈 일은 없기에 산골짜기라는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뇌가 최적화된다. 폭력에 늘 노출되어 있는 환경에 처한 아이는 교육을 통해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배우지만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 보았던 행동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얘기를 하는 필자에게도 유년기 때 보았던 폭력적인 언사나 행동이 살아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들어 아동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아동 관련법도 강화하고자 하는 이유는 보호가 필요한 힘없는 아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동폭력에 노출되었던 아동은 성인이 되어 그걸 ‘대물림’ 하기 때문이다. 즉, 아동에게는 10살까지의 성장과정이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이다. 이건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닌 국가에서 책임 있게 관리하고 아동이 그런 환경에 노출되었다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긴급 비상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에펠탑 효과
또 느닷없이 에펠탑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프랑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인가? 바로 에펠탑일 것이다. 에펠탑은 이미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에펠탑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흉물스러운 철골구조가 뭐냐며 에밀 졸라 등 유명한 작가, 예술인들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 태어났다. 서양 속담에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는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로 자주 봐야 정이 든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자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가는 걸 '에펠탑 효과'라고 하는데 단순히 노출만 자주 시켜도 어느새 우리 심리는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에펠탑 효과다. 왜냐면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무엇에든 적응하고자 하는 심리가 강하다. 주로 광고에 많이 이용하는데 노이즈 마케팅도 이걸 노린 것이다. 앞서 노출(폭력에)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특히 결정적인 시기에 있는 아동기엔 무엇이 노출되었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4살 때부터 골프를 쳤다고 한다. 설마 4살 때 골프채를 휘두르며 쳤겠는가. 우즈 아버지가 골프 칠 때마다 아들 우즈를 의자에 앉혀서 보게 한 것이다. 특히 어렸을 때의 노출은 지능이나 정서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폭력적인 장면이나 자극적인 광고가 많은 영화나 티비 시청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동들에게 너무 많은 폭력물이 노출되어 있고 초등학교 3학년이면 야동을 대부분 접한다는데 무분별한 스마트폰 사용은 어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걱정스럽다.
반대로 애착도 대물림될까
유아기에 맺은 애착관계는 일생에 걸쳐 대인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애착의 대물림’ 또는 ‘애착의 세대 전달’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부모와 맺은 애착 유형이 아이와의 애착 유형과 일치할 비율은 60~80%에 이른다는 것이다. 폭력만 대물림되는 게 아니라 애착도 대물림된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폭력(학대)의 치유방법은?
특히 유아기 때 경험한 가정폭력은 오리의 각인효과처럼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설사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폭력적인 언동이나 행동이 나올 수 있다.
인간의 뇌는 10살 때까지 고향(처한 환경)에 맞게 ‘최적화’된다. 아직 말랑말랑한 찰흙을 어떻게 주물러 무얼 만들 것인가는 어른들의 몫이자 책임이다. 만들어진 찰흙은 굳으면 바꿔지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활동이 신체발달이나 뇌 발달에 필수적이고 긍정적인 정서 형성에 필요한 놀이 활동이다. 특히 아빠와의 신체 놀이는 공격성을 조절,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마엽이 활성화되어 창의성이 풍부해진다는 연구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에펠탑이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게 아니다. 불행하게도 어떤 아이가 어린 시절에 폭력에 노출된 적이 있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말자. 무언가를 꾸준하고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주면 인간의 뇌는 거기에 적응하여 익숙해진다. 아이에게 필요한 걸 일삼아서 노출시켜야 한다. 음악가 집안에서 음악가 나오고 미술가 집안에서 미술가가 나올 확률이 많다. 엄마 아빠가 나의 안전을 지켜주는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스킨십과 포옹을 많이 해주고 놀이친구가 되어 소통과 공감능력을 서로 높여가는 게 좋겠다. 놀이는 백 마디의 훈육이나 교육보다 탁월하다. 아이들은 놀이 본성을 타고난다. 놀이의 힘은 생각보다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