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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Jun 11. 2022

그 시절 그 주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2002년 추웠던 2월 급하게 파마를 해서 뽀글거리는 머리와 고무다라이 색 코트를 여며입고 과방에서 도착했다. 수더분하고 모범생같이 생긴 동기들이 쭈볏거리며 책상 근처에 앉았고 그 앞에 연하게 화장을 하고 검정색,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 선배들이 일렬로 앉았다. 볼캡 모자를 눌러쓴 몇 안되는 남자 선배들은 허름한 소파에 모여 앉아 기타줄을 퉁퉁 튕기고 있었다. 시덥잖은 OT가 끝나고 나자 2학년 과대표 언니가 ‘밥 먹으러 가자!’ 고 외쳤고 우리는 삼삼오오 정문을 나섰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큰 방이 있는 낙지볶음 식당이었고 밥을 한 술 뜨려고 하니 갑자기 소주병이 돌기 시작했다. ‘야, 빼기 없기다~’ 오십명 즘 모인 그 곳에서 소주가 각 테이블당 하나씩 배분 됐다. 아직 손에 익지 않아 어색한 소주잔에 소주를 한잔씩 따르고 회장언니의 구령에 맞춰 ‘반갑습니다’ 하고 ‘짠’을 했다. 소주는 달큰하고 화한 맛이 났다. 동기 중에는 난생 처음 술을 마신 친구도 있었고, 한잔 만에 옷 밖으로 나온 피부가 모두 빨개진 친구도 있었다. ‘첨잔 금지!’라고 외치는 얼큰해진 선배들 앞에서 나는 약간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나처럼 술을 ‘기꺼이’ 마시려고 하는 친구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3월 개강이 시작되자 술자리는 더 많아졌다. 쿨해 보이는 것 같아서 들어갔던 음악감상 동아리, 스펙때문에 들어간 영어토론 동아리, 같은 지역 고등학교 출신끼리 만나는 연합동아리, 그리고 제일 중요한 모임은 과 모임이었다. 빼지 않고 술자리에 모두 참석한 덕에 나는 부과대표로 고속승진 했다. 과 안에 있는 이름만 있는 부서들을 관리하며 부서장 모임, 직속 선후배 모임, 과내 봉사동아리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시덥잖은 토의와 봉사활동 뒤엔 어김없이 술판이 벌어졌다. 주당마을에서 소주와 찌개를, 천탁에서 막걸리와 파전을, 아침까지 여는 준코에서 다시 맥주와 과일 화채를 먹는 식이었다. 월요일에는 마지막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 끼리, 화요일엔 동아리 모임, 수요일엔 과모임, 목요일엔 연합모임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4회이상은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면 중도에 탈락되는 일없이 막차를 탈때까지, 주말엔 새벽까지 마셨다. 매일 술을 마시고 엄마를 괴롭혔던 아빠에게도 한가지 고마운 점이 이정도로 버티게 해줄 간을 물려줬다는 점이다. 남자 선배들과 술 대결이라도 할 때 나는 더 지기 싫어서 악으로 먹기도 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는 친구를 할 수 없고 애인은 더더욱 할 수 없다고 천명하고 다니며 주변을 술마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었다.




그 시절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술에 빠져 있었을까. 알코올 중독 증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술에 의존해 있었다. 처음엔 술이 멋져 보였다. 사범대의 공부 벌레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도 나처럼 공부에 애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보였다. 낮에는 흐리멍덩하다가 밤에 정신이 말짱해지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길바닥에 토를 하고 그렇게 휘청거려야만 청춘이고 멋인 것 같았다.




겉멋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술자리에 있었다. 술을 마시고 울면서 자신의 아픔을 토하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꼈다. 사람이 모였을 때 술이 빠져 있으면 왠지 마음이 섭섭했고, 밥만 먹고 헤어지는 사람들은 차갑다고 생각했다. 술에 취해서 사람이 뭉개지고 엉겨붙고 눅진해졌을 때만 마음이 놓였다. 그래야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맨정신에는 도저히 진심이라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진심이라는 것이 뭔가.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또 내가 누굴 좋아한다는 이야기, 누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그 넘어 무슨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은 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미치도록 외로웠다는 것이다. 부모가 지긋지긋하게 싫고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당하는지 소리치고 싶었다. 또 나와 같은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구원받고 싶었다. 그 말을 더 효율적이고 더 세련되게 하는 방법을 지금도 찾고 있다. 하지만 그 때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할 용기를 찾기 위해 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술을 먹고 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뒤죽박죽이 되었고 그렇게 곤죽이 된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그렇게 남매, 자매처럼 지내고 유사시에 장기이식이라도 해줄 것 같았던 친구들은 지금 내 곁에 거의 없다. 남자 선배, 남자 동기 순으로 사라졌고 몇 여자 선배들에겐 아직 못 갚은 술값 때문인지 부채감만 남아있다. 술에 절여져 형체가 없이 흐물거리는 진심을 주고받았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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