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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Dec 26. 2023

챗지피티로 생활기록부를 작성한다고요?

2023년 12월 26일자 조간신문 1면



대한민국의 공립 학교 교사들은 학기 말인 12월이 되면 무척 바빠진다. 업무량이 평소의 2배에서 5배까지는 많아진다. 업무들을 대충 읊어보면 다음과 같다.



1) 학기말 성적 처리 : 정기고사와 수행평가 점수를 모두 나이스(NEIS)에 올리고 등급을 매기고 학기말 분할점수를 낸다. 기말고사 분석을 하고 시험을 못 친 학생들에게 인정 점수를 주고 모든 성적을 확인시킨다.


2) 각종 보고서 제출: 보통 교육청에서 했던 사업의 결과를 11월 말부터 12월 초에 보고서로 작성하여 제출해야 한다. 교사들은 학교 업무 뿐만 아니라 연구 동아리 등 개인 적으로 관심있는 연구 분야를 교육청사업에 지원하여 예산을 지원받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최소 문서 형식의 보고서에서 발표까지 준비해야 한다.



3) 결과 집계: 각종 행정 업무의 결과를 교육청에서 요구한다. 예를 들면 나는 통일교육, 안보교육, 다문화교육 등 인문사회 교육 업무를 맡고 있는데, 학교에서 학생을 얼마나 교육했는지 시수를 묻거나, 교사들이 해당 분야의 연수를 얼마나 들었는지에 대한 결과 보고를 해야한다.



4) 예산 집행: 한 학년도의 예산을 보통 12월까지 다 써야 한다. 그래서 예산에 잡힌 돈을 쓰는 역할도 교사가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영자신문부 동아리 담당 교사이기 때문에, 영자신문 인쇄 발간비를 사용하고, 학생들 간식비도 써야한다.



5) 생활기록부 작성: 대학 입시가 수시전형 위주로 바뀌면서 고등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가 매우 중요해졌다. 과목 교사라면 1년 혹은 1 학기동안 가르쳤던 과목의 수강생을 최대한 개별화하여 1500바이트(750자, 공백포함)으로 작성해야 한다. 만약 가르친 학생이 한 학년에 180명이면 180개의 다른 '과목세부능력 특기사항'을 적어야 한다. '조국'사태 이후로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 기록에 엄정성이 더 강조되어져서,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인 과목세부능력 특기사항(이하 세특) 쓰기가 더 까다로워 지고, 매번 쓸때마다 은행OTP같은 비밀번호를 생성해서 들어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내가 쓰는 생활기록부 과목세부능력 특기사항 예시



담임은 여기에 학급반 학생의 학교 생활에 대한 기록도 해야한다. 창의적 체험활동 부분에서 먼저, 학교 행사에 참여한 기록인 '자율'활동 기록(한 학생당 1500바이트, 750자)이 있고, 학생의 '진로' 활동에 관한 기록(한 학생당 2100바이트, 1050자), 마지막으로 인성에 관한 종합 기록인 '행동발달상황'(이하 '행발', 한 학생당 1500바이트,750자)가 있다.



동아리를 담당하고 있다면 1년간 동아리 부원에 대한 기록도 한 학생당 1500바이트(750자)를 적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개별화하는 것이 원칙이고 한 구절이라도 반복되면 결국 대학교에서 중요하게 보지 않는 부분이 된다.



이런 와중에 2022년 부터 챗지피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교사들도 또한 챗지피티를 사용하여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모았다. 그 결과 선진 IT기술을 잘 활용하는 몇몇 선구자적인 선생님들이 생기부용 생성형 AI를 만들었다. (https://getgpt.app/play/WeGSqxhYMP)


행발도우미 라는 앱에 '성격이 좋다'는 프롬프트를 넣으면 다양한 행발 작성 예시를 내어 놓는다.


나는 올해 1학년 영어교사로서 93개의 영어 '세특'을 작성해야하고 담임교사로서 18개의 자율, 18개의 진로, 18개의 행발, 또 동아리교사로서 24개의 동아리 특기사항, 도합 171개의 각기 다른 작은 토막 글을 써야한다. 특히 특수목적 고등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는 더더욱 중요하므로 밤낮을 고민해서 단어를 고민하고 선별해서 쓴다. 어떤 해에는 생활기록부를 쓰느라 겨울방학이 통째로 날라간 적이 있다.  



내가 위의 생활기록부 생성형 AI를 써보고 느낀 것은 학생의 개별화 내용을 쓰기에는 너무 뭉특하다는 것이다. 특히 고교 선택과목 처럼 상세한 내용은 AI로 적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프롬프트(지시어)를 쓰고 결과를 수정하는 에너지가 더 들어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교사는 그냥 '내뇌피티'를 쓰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생활기록부를 쓰는 교사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느냐에 관한 것이다. 학기 중에 일을 끝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해서 일을 집에 싸들고 가서 방학에 근무하는 것에 대한 보상은 주어지는가?



더 중요한 문제는 정당한 권한이 주어지는 지이다. 교사는 생활기록부를 써야하는 의무가 있지만, 진솔한 교사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지 여부는 의문이다. 처음 생활기록부의 형태가 정해졌을 때 '행발'은 담임교사의 신성불가침 영역이라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학생이 진급하고 나서 다음 년도부터 학부모와 학생은 나이스(NEIS)를 열람할 수 있으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전임교의 경우, 학생이 생기부 행발때문에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정정을 요구하여 해당 학년도 담임이 위원회를 거쳐 정정을 해준적이 있다.



과목세부능력 특기사항 같은 경우 거의 그 학년도에 학생들에게 열람시켜 내용을 확인 시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은 거의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의 경우, 생활기록부를 쓰면서 괴로운 것은 두 가지 이다.



먼저, 보통 교사들은 과목 '세특'을 쓸 때 학생들이 활동한 내용을 스스로 적게 한 보고서와 교사 자신이 작성한 평가 내용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쓴 보고서란 그야 말로 '괴발개발'의 형식파괴의 글이 대다수 이다. 이것을 해독해서 교사가 '생기부체'로 다시 재작성하는 것이 거의 하나의 장르적 글쓰기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작문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과도하고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



두번째는 이것이다. 특히 학생의 인성에 관한 글을 써야할 때면 내 안의 없는 '긍정성'을 쥐어 짜내야한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교사들은 진정성이 담긴 통렬한 평가는 적을 수 없으므로, 최대한 그 학생을 핑크빛 안경을 쓰고 요리보고 조리봐서 예쁘게 포장해서 써올려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나는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글을 쓰니까)으로서 자괴감은 덤이다. 진실한 글을 쓰지 못할 때 나는 특히 괴로운데, 생활기록부는 진실과 가장 거리가 먼 글들이다. 이 글을 쓸 때의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써봐야만 그 고통을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전략은 일년 간 학생과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다. 그 학생을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다. 3년전 나는 학급반 몇몇 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생기부를 쓰는 것이 너무 지옥이어서 그 해 겨울방학 내내 컴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교사들이 생활기록부를 이렇게 자세히 적는 전통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어느 교육부 인사가 들어와서 불시에 제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이 고역의 웃기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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