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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Feb 18. 2024

소녀는 ( )로 자란다

나를 곁에 두길 즐겼던 여자애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길 좋아하고, 업신여기는 표정이 기본인 애들. 그런 얼굴을 하도 많이 하다가 코도 조금 들창코가 된 것 처럼 보이는 애들. 눈치도 안보고 분홍이나 주홍인 물건을 고르는 애들. (5쪽)
학생들은 서로 양팔 거리의 간격을 두고 서 있어야 했지만, 노련한 여자애들은 어른의 규율을 피해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씩 기울여서 서로의 손끝을 닿게하는 방식으로 친근감을 표현할 줄 알았다.(7쪽)
여름방학의 어느 날 저들은 모두 한 번씩 혼자서 나를 찾아왔었따. 서로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말하기 위해서. 나는 뒷문으로만 내어놓는 비밀들이 고여드는 우물이다. 마음속에서 그 비밀들이 서로 닿지 않도록 분류하면서, 나는 누군가에게는 짜릿하고 누군가에게는 잔인할 그 작은 접촉이 내게 간접적으로 미칠 영향을 가늠해 본다. (7~8쪽)
너 같은 남자친구 있으면 좋겠다. 나는 대접받는 게 익숙한 여자애의 뒤에 서서 그네를 밀어주었다. 그저 가끔 그 예쁜 머리칼이 그네 사슬에 콱 끼어버리기를 바랐다. 얼른 그 애의 남자 역할을 끝내고 내 집의 서가 앞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12쪽) 
물론 다음 날이면 언제 그런 협정이 있었냔 듯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을 괴롭히고, 여자애들은 쪼그리고 앉아 복숭아색 무릎을 감싸고 울었다. 여자애들은 여자가 아닌 애들을 괴롭히고, 여자가 아닌 애들은 가능한 한 느리게 가방을 쌌다. (20쪽)
아이들은 상담시간에 자주 운다. 차라리 여자랑 사귀고 싶다고 말하면서 운다. 여자를 좋아하고 싶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안다. 그건 호강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고통받을 체력이 회복되고 나면 곧 너 같은 남자를 좋아하고 싶다는 식으로 조건을 붙여 깜찍하게 말을 바꾼다. 그러면 나는 굵은 빗으로 그들의 머리를 윤기가 날 때까지 빗어주면서 겉으로도 속으로도 웃는다. 진심으로? 남자가 이렇게 할 수 있을것 같애?(42쪽)
저 남자애는 알까? 팔짱을 끼는 여자애들은 잔망 떠는 연습을 내게 다 한 뒤에 진짜로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선보이러 떠난다는 걸. 나하고 연습했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55쪽)

(YES24 홍보페이지 발췌)




안담작가의 '소녀는 따로 자란다'는 초등학교 여학생 그룹에서 일어나는 권력 관계를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유치하고 하찮은 것이라고 불렀던 그 감정을 마치 어제 일어난 것 처럼 세밀하게 그린다. 다시 그 무서웠던 남녀공학 초등학교 5학년 교실로 빨려 들어간다. 여학생들은 인기있는 그룹이 되기 위해 암투를 벌인다. 5학년 부터는 남학생을 주변으로 일어나는 암투이다. 서열 1위 남학생이 좋아하는 여학생은 서열 1위가 된다. 그렇게 자신을 하대하는 남학생들에게 은근하게 잘보이고 싶고, 또 여학생 그룹에서 우위를 다지려고 뒷담화를 하고, 또 왕따를 시킨다. 




2024년 1월에 1주일 동안 싱가포르 국제교류 팀이 드디어 싱가포르 자매학교에 갔다. 우리 팀은 2023년 7월에 자매학교에서 방문한 팀을 한국에서 맞이했었는데 이때 주말 2박 3일 동안 홈스테이 프로그램은 운영했었다. 6개월 간격으로 또 만나서 이번엔 싱가폴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다. 한국의 자신의 집에서 2박 3일을 재운 싱가폴 학생을 다시 만나 그의 집에 2박 3일을 기거하는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그 친구들과 애틋하게 정이 쌓이겠는가. 우리팀 여학생 4명, 남학생 4명 모두 영어를 잘하고, 또 외국 문화에 호기심이 출중한 학생들이어서 7월과 1월 모두 아주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그중 여학생 리더였던 E 과 남학생 리더였던 N은 언어능력과 리더십 모두 출중한 학생들로, 전체를 아우르며 또 통솔하고 또 프로그램을 원할하게 진행한 일등공신이었다. 

문제는 마지막 돌아가는 날인 2024년 1월 14일 일요일이었다. 정오즘에 홈스테이 가정과 작별인사를 나눈뒤, 1년간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함께한 친구들과도 인사를 했다.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고 사진 찍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자정에 비행기가 있어 한국 학생들과 교사들만 간단한 투어를 했다. 그때 여학생 리더 였던 E가 급격하게 무기력하고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학생 리더 였던 E의 이런 기분 변화는 전체 팀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저녁을 먹을 즈음에는 왜 그런지 연거푸 물어봐야 했다. 말을 계속 안하고 밥을 먹던 E는 급기야 체하기 까지 했다. 저녁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도착했을 때 즘, E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헤어지면 버디와 영영 못보는 거잖아요!' 

아이들도, 교사들도 어리둥절 했다. 특히 항상 쾌할하고 밝은 남학생 리더 N은 E를 못본 척했다. 사실 E는 학교에 있을 때 여학생과 싸움을 하거나 언행이 가끔 사나울 때가 있어서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담임은 젊은 여자 교사인데, 이런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E를 못마땅해 했다. 

같은 능력치에 비슷한 가정환경에 성적도 비슷한 E와 N 중에, 남학생인 N은 대체적으로 더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사랑받는 위치였다. 그는 해사한 웃음과 예의바른 말투로 주변 사람들을 챙겨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E 는 소수지만 적이 있었고, 담임선생님도 그녀를 싫어했다. 

왜 여자애들은 자랄수록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의뭉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 걸까. 실제로도 그런 행동을 보이는 걸까. 그리고 그들은 뒷담화로 세력을 형성하고, 그 세력 다툼을 늘 한명을 왕따시키는 방식으로 하는 걸까. (남학생의 경우 오히려 3월 학년 초에 서열이 쫙 정해지면 그냥 그대로 견고하게 운영된다.) 왜 '기분이 나쁘고 이런 일을 하지 말아달라'고 직설적으로 말 할 수가 없을까.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다가 나중에 삐지고, 토라지고, 서러워하고, 질투하고, 왕따시킬까. 

그것은 어려서부터 부정적인 의견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억압하는 가정과 사회 분위기와 남자를 통해서 권력을 얻는 구조에서 기인한다.

여초 직장에 오래 근무한 나는 직장 환경 또한 이 여학생 생태계(여자호모소셜)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무실 맥락은 나이 서열이라는 것이 더해진다. 2030 어린 여교사는 생태계 밑바닥에 있으며 입이 없다. 입으로 무언가를 말하게 되면 도처에서 날아드는 공격에 당혹스러울 것이다. 아니면 그 발언들은 철저히 무시당하거나 중간에 잘릴 위험이 크다. 



교무실에 있으면서 늘 은은하게 위의 글쓴이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내 여자 선배들은 젊은 남자 선생님들을 확실히 더 사랑했다. 그들이 아들맘이든 아니든 상관 없었다. 젊은 남자샘들은 씩씩하고 해맑고 뒤끝이 없었다. 기혼 여자 선배들은 젊은 남자 샘들의 안위를 늘 어미새처럼 걱정했다. 그들이 상처받을까 보호하고 다녔다. 또 결혼을 못할까봐 걱정, 밥을 굶을까봐 걱정, 김치를 못 먹을까봐 걱정, 별 걱정을 다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표정이 뚱하고 옷을 칠칠치 못하게 입은 나는 늘 뒷담화의 대상이었고 천덕꾸러기거나 철없는 후배였다. 옷을 그렇게 입지 말라고 방송실에 불려가서 혼이 난적도 있었고, 성희롱을 주선한 50대 여자 교사도 있었다. (주선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노래방에서 부르스 추자고 다가오는 50대 남교사를 내게 주선해 주며 '괜찮아, 아빠야~' 라고 했다.) 내가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 했다. 그것이 맞는 말이면 더 불편해 했다. 그 말은 잘리기 일쑤였다. 나는 그것이 억압된 자들의 질투심이라는 것을 2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40살이 된 지금도 49세 여자선배는 내 말을 자른다. 

2030 여교사는 그러한 교무실 생태계에서 눈치를 살피고, 분위기를 읽고, 공기의 흐름을 읽고, 뒷담화를 하면서 세력을 형성하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 긍정적인 감정이 지나쳐도 문제고, 부정적인 감정이 지나쳐도 문제다. 그렇게 실무능력까지 갖춘 40대가 지나면 50대에 비로소 여교사는 교무실의 안방마님이 된다. 그래도 남교사, 특히 남자 관리자의 비위는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 50대가 되면 그들은 방언이 터진다. 이제서야 눈치안보고 필터링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수 있는 세상이 온다.

나는 공교롭게도 5060 여교사들이 사이에 나혼자 15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정기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 두 모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가 빨린다. 두 모임 다 대화를 주도하는 한 명의 빌런이 있는데, 이 분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앉은 자리에서 3시간씩 하실 수 있는 분들이다. (모두 내가 한때 깊이 존경했던 분들이어서 15년 넘게 모임을 유지해왔다.)

나는 올해 이 모임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내 주체성을 펼 수 없는 모임이 이제는 버겁다. 올해부터 나는 목소리를 키우는 것을 최대한 많이 해볼 생각이다. 글로, 유투브로, 또 대면 대화로 까지, 내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는 방법을 나이 40이 되어서야 신생아처럼 터득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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