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썅놈이 진화하면 생기는 일(1)
웃으며 때린다고 덜 아픈 게 아닙니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조용한 사무실에 볼펜 뚜껑 딸각거리는 소리가 1초에 한 번씩 울려 퍼졌다.
빛나리 머리에 빙그레 웃으며 사람 반감 사는 말을 잘하는 반부장은
뭔가 생각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꼭 저렇게 볼펜을 딸깍거렸다.
'즈어기... 매너 좀.. 너 혼자만 있냐고!'
몇 시간째 주기적으로 울려 퍼지는 딸깍 소리에 신경이 쓰여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골초인 그에게는 항상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런데 왜 하필 그의 자리는 에어컨 앞이었을까.
여름에 에어컨을 가동하면 온 사무실에 담배쩐내와 특유의 톡 쏘는 채취가 널리 널리 바람을 타고 퍼졌다.
저 사람은 채취까지도 참 배려라는 걸 몰랐다.
반부장은 사람 좋은 척 웃으면서 뼈 있는 이야기를 잘했다.
겉보기엔 농담이었지만 그 안엔 차가운 진심이 있었다.
그런 화법 때문에 '웃으며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일명 '빙그레썅놈'으로 불렸다.
그는 뼛속까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단지 대놓고 드러내기보다는 웃으며 때리는 스타일이었다.
하루는 휴가를 내야 해서 그에게 보고를 했다.
서류를 바라보던 반부장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책상 앞에 서있던 나를 안경너머로 쓱 한 번 쳐다보는 그의 눈엔 못마땅함이 스쳤다.
그가 직원들이 휴가 내는 것을 싫어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상을 당했던 한 직원이 경조휴가와 함께 추가로 개인휴가를 요청했을 때,
반부장의 반대로 개인휴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당시 타이트하게 운용되던 사무실 여건상,
개인사정에 의한 업무공백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한다.
"일 열심히 하고 가는 거 맞아? 일 제대로 안 하면 휴가도 가면 안 되지. 허허허."
그는 나를 쳐다보던 시선을 서류로 돌리며 공허한 웃음을 갈겼다.
누가 휴가 간다고 가면 꼭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언짢은 마음을 웃으면서 비꼬아 표현했다.
웃으며 이야기한다고 그 속뜻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꼬깃거리는 투명비닐 같은 웃음으로 둘둘 말아서 던져진 뼈 있는 농담은,
아무리 잘 싸매도 그 속이 훤히 다 보였다.
빠스락거리는 비닐 소리가 울려 퍼지듯 못마땅해하는 그의 마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한 번은 한 직원이 핸드폰 번호가 바뀌어서 명함을 새로 주문해야 했다.
반부장은 그 직원에게 쓸쩍가더니 말했다.
"이주임 명함 새로 만들려면 회사 비용이 추가로 나가게 생겼네? 허허허~ 일을 더 힘들게 시켜야겠어. 아니면 사비로 구매하던가. 그렇지? 허허허~"
그는 저런 식으로 듣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게 되다가 3초 뒤에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언중유골 화법을 구사했다.
그렇게 교묘하게 비꼬는 그의 말들은,
은은하게 젖어드는 가랑비처럼 두고두고 생각나며 찝찝한 기분을 들게 했다.
대화를 끝내고 나면,
비를 맞은 몸이 차갑게 변하듯이 입가에 짜게 식은 쓴웃음이 지어졌다.
반부장은 그 뒤로 승진을 해서 더 큰 그룹의 장이 되었다.
그때부터는 아예 대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대기 시작했다.
승진을 하면서 '빙그레썅놈'에서 '대놓고 썅놈'으로 진화를 했다.
그런 반부장에게 의한 첫 희생양은 한 여직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