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냈더니

나쁜 기억이 가치 있어지는 순간

by 놀마드놀





회사생활 11년 동안 만났던 빌런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에서였다.




브런치를 대나무숲 삼아 얘기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기도 했고, 다시 생각해도 이가 득득 갈리는 사건도 많았다.




이렇게 열받았던 일을 되새김질하며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하게 시원함보다는 찜찜한 기분이 커져간다.

유쾌하지 않은 기억의 계단을 더듬거리며 올라가는 건 생각보다 꽤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전 일을 차분히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은 객관적으로 나의 과거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지나 역사가 재조명되듯이, 개인의 삶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과거라는 인형의 집 안에서 그때의 상황이 인형극으로 펼쳐지는 걸 가만히 관람해 본다.





인형극의 배우일 때와 그걸 지켜보는 관객으로 있을 때의 차이는 꽤나 크다.






그 당시엔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의문뿐이었다면

지금은 '그럴 수 있었겠다', '그래, 너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저 사람 상황이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 것 같다'라는 마음도 든다.




그때의 내 행동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라진다.

'내가 이렇게 말해서 저 사람이 그렇게 반응한 것일 수도 있겠다'하며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겐 꼴도 보기 싫은 빌런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회사에서 만난 저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도 해본다.

그랬다면 '내가 만났던 괜찮은 사람 중 한 명'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나에게 나쁜 사람이었다고 모든 사람에게 나쁜 사람인건 아니니 말이다.















경험은 어떤 의미로든 내게 남아있으며,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이다.



유쾌하지 않았던 경험 덕분에 그런 비슷한 일이 다시 생겼을 때 알아차리고 피할 수 있는 눈이 생겼고 대처할 수 있는 노련함이 생겼다.



당시엔 나를 괴롭혔던 일들이 지나고 나니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며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모든 일에는 그 나름대로의 배울 점과 교훈이 있고, 그걸 현명하게 해석하는 힘은 다양한 경험이 주는 다각화된 시각이다.


이렇게 경험과 시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매일매일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하루만큼 다른 사람이다.

하루라는 시간이 주는 또 다른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 안에서 현명한 어른이 되는 것은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시간 속에서 내가 건져 올릴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한 오늘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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