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법을 잊었다

by 놀마드놀

새해라고 해서 특별히 바뀐 게 없는 하루가 또 돌아간다. 12시에 잠깐 새해구나 했다가, 12시 1초가 되면 다시 무덤덤해진다. 새해 효과는 작심삼일이 아니라 1초 만에 소멸하고, 나의 무표정 앞에 달력과 시계는 힘을 잃는다.






새해여도 똑같아


새롭지 않은 새해는 익숙한 헛헛함이 되고, 허전해서 자꾸 영상을 틀어놓고 뭔가를 먹는다. 기분이 안 좋아서 빵을 사는 건 단거 처돌이인 내가 상습적으로 하는 짓이다. 요새는 과자를 먹고 있다. 소나무같이 변함없는 까까 취향 탓에 먹는 건 거의 정해져 있어서, 꽂히면 한 놈만 패며 물릴 때까지 맨날 먹는다. 과자에 곁들일 영상은 재미와 자극 위주로 세팅한다. 요즘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생긴 고구마형 과자를 먹으며, 바람피운 전 남편 손에 죽을 뻔한 장서희가 눈 옆에 점 하나 찍고 살아 돌아와 복수한다는 옛날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본다. 대형기획사의 터치를 제대로 받은 꽃다운 K팝 아이돌 영상도 번갈아 보며 값싼 도파민을 다채롭게도 수거하고 다닌다.


매사가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는데, 이런 허들 없는 너그러운 쾌락을 만나면 웬 떡인가 싶어서 눈이 뒤집힌다. 안구와 고막에 때려 박는 자극적인 영상과 신명 나는 저작운동으로 쉽고 편하게 행복해질수록 점점 자극의 강도가 올라가니, 사람들은 이걸 중독이라 불렀다. 좀 건강하게 살아보자고 자신을 타일러도, 내가 네 입력대로 움직이는 내비게이션이냐며 징그럽게 말 안 듣는 금쪽같은 나 새끼로 변해, 아예 도파민의 광장에 자리 깔고 드러누워 버린다. 절제는 과자랑 같이 씹어 삼킨 지 오래고, 중독은 제 세상 만났다고 개 뛰듯 판을 친다.




바로 돈이 되는 일을 하며


연말부터 새해 첫날까지 행사 스텝 일용직 알바를 했다. 행사를 주최하는 조직에서 내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란 건 책임이 적다는 뜻이어서 큰 부담이 없다. 오랜 집콕과 단순 도파민에 뇌가 묵었는지,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퇴화한듯했는데, 알바를 몇 번 하고 나서 뇌 정지 상태에서 벗어났다. 무직인지가 오래됐다가 내 노동력이 바로 돈으로 바뀌는 걸 맛보자, 정기적인 소득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직장인 시절이 슬쩍 그리워져 괜히 공공기관 취업 사이트를 들락대다가 여지없이 착잡해졌다.


사직서 낼 때의 마음을 망각한 이 간사한 그리움을 잠재운 건, 행사 진행 때 마주친 회사의 임원 및 장급들이었다. 내게 된장, 고추장 외에 장으로 끝나는 사람들을 기피하는 ‘장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일용직인 나는 혹여나 누가 뭐라고 한 소리 해도, 네가 감히 오늘만 사는 하루 벌이에게 뭐라는 거냐고 배 째라를 시전하며 ‘직급이 깡패’라는 공식을 초월할 수 있다. 정규직에게 고용 보장이 안정이라면, 일용직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결이 다른 안정이 있다. 퇴근해도 퇴근한 게 아닌 정규직의 삶은 보장된 게 많은 만큼 보장된 괴로움도 함께 안아야 한다. 괴롭게 남의 인생을 따라서 사느니 부족하더라도 내 모습대로 살아보자던 다짐을 되새김질하며, 일이 끝나면 바로 내 세계에 빠져 더 의욕적으로 글을 쓰려한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즉시 얻는 만족에 홀려서, 도파민이 노예가 되고 다시 회사의 노예로 돌아가야 하나에 고민했다. ‘즉각적이고 끊임없는 자극 추구’는 극단의 한 형태였고, 극단이란 치우침이기에 나를 똑바로 설 수 없게 했다. 즉각적인 만족과 지연된 만족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게 균형을 맞춰가는 게 나의 전전두엽의 임무였다.


보장된 게 없는 미래, 그저 하루살이처럼 버티고 있는 오늘이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새해의 의미가 없어졌으니 언제든 새해가 될 수 있다. 내가 마음을 먹으면 365일 중 어느 날이든 1월 1일처럼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예전처럼 새해를 반갑게 맞는 법은 잊었지만, 언제든 새해처럼 만드는 법은 터득했다. 조화롭게 살아가는 매일은 새해만큼 빛날 것이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큰절)

ㅎㅎㅎ 새해라고 달라지는 건 크게 없지만

여전한 오늘이 행복이고 다행인 것 같습니다 ㅎ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라며, 모두모두 들숨에 건강 날숨에 재력 얻으시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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