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이런 크리스마스 어떤데

by 놀마드놀

혼자여도 크리스마스는 온다


몇 년째 크리스마스에 혼자 있었다. 작년엔 한 남자 때문에 꺽꺽 울며 보냈다.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의 소년 때문에 눈물 콧물을 짜며 냉동 피자를 먹었다. 재작년에는 혈당 스파이크와 고속 노화를 감수하며, 내 생일에도 안 사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예약했는데, 광고사진과는 다르게 딸기‘맛’ 케이크 같은 인색한 딸기양 때문에 분노했었다. 성스러운 날에 소비자를 우롱한 대기업의 횡포에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 말씀을 새기며 케이크를 짓씹었다.


크리스마스는 말라비틀어진 마음을 말랑하게 조물대는 희한한 날이다. 난 이스라엘 왕으로 불린 예수의 탄생과는 하등 상관없는 무교 동양인인데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누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일이 필요한데, 타이밍 좋게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모두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지는 듯하다. 그러니 이 두근거림은 부정맥이 아니라 한해의 소회이다. 공기 반 설렘 반을 느낄 시간이 얼마 없다. 신데렐라 마법처럼, 12월 25일이 지나면 나도 사람들도 내년에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다시 현실감각을 찾을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 연말 잔치에 부산하게 줄을 서본다. 올해의 수고를 풀고 일상의 덤덤함을 희석해야 할 당위성에 충실하기 위해.






이런 크리스마스 어떤데


올해 크리스마스도 역시 ‘나 홀로 집에’ 모드이다. 밖에 나가봤자 사람 많고, 커플은 더 많고, 속은 뒤집히고, 정신은 없고, 춥다. 지뢰처럼 포진한 악조건에서 벗어나고자 집에 붙박인 채로 나만의 파티를 열었다. 매년 재활용 중인 알전구로 벽 트리를 만들고 귀여운 산타 머리띠에 내 정수리를 내주었다. 케이크는 무인 빵집에서 산 천 원 빵 두 개에 그릭요거트를 바르고 딸기를 올려서 간단히 만들었다. 넘치는 딸기로 케이크가 무너져, 부실시공 논란이 생길 정도로 빵 사이에 딸기를 있는 대로 찔러 넣었다. 단돈 15,000원으로 생딸기 폭탄 케이크가 완성됐다.


크리스마스에 근사한 사람과 있고 싶은 건 당연한 거니까 내가 내게 근사한 사람이 되기 위해 움직였다. 집을 깨끗이 치우고 밖에 나가는 것처럼 옷도 갈아입고 향수를 뿌렸다. 카페 음악을 틀고 벽 트리 앞에서 산타 머리띠를 하고 케이크를 먹었다. 어릴 때 어른이 되면 케이크 하나를 혼자 숟가락으로 다 퍼먹자고 다짐했는데, 1인 1 케이크를 밥숟가락으로 해치우고 있으니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파티의 범위


장 봐와서 준비하고 만들고 치우는 시간은 한나절인데, 먹고 즐기는 시간은 단 20분이다. 나는 준비하고 치우는 순간은 파티로 쳐주지 않고, 파티가 한창인 시간만을 최고라고 추켜세우며 대접했다. 이렇게 시간을 차별하다 보니 20분을 위해 한나절을 희생한 꼴이 됐다.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은, 차별 대우를 받은 만큼 내게 귀찮음과 번거로움으로 되갚아왔다.


더 길게 즐겁고 싶어서, 준비와 마무리 시간도 파티의 범위에 포함했다. 기꺼이 준비하고 즐겁게 치웠다. 파티는 잠깐이고 준비와 마무리가 주일 테니, 준비와 마무리 시간까지 파티가 된다면, 인생의 대부분이 즐거워질 것이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고, 내 모든 시간은 손가락 모양처럼 다르게 생겼을지언정 모두 공평하게 귀중했다.


올해도 나는 여전히 백수이다. 백수인 시간도 파티의 일부로 대우해 주니, 여지없이 소중해졌다. 그래서 다가오는 미래가 조금은 기대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매 순간을 살아온 나에게 정말 수고했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메리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모두모두 : >

케이크 만드느라 글 업로드 늦었어요 우에엥ㅋㅋㅋ

저는 이렇게 나홀로 클쓰를 보내고 있네요 ㅎㅎ

여러분의 크리스마스는 어떠신지 궁금해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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