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 대고 “안녕, 나 왔어!”라고 괜히 말해보곤 한다. 혼자 산 지 5개월 차, 내 삶은 '나 혼자 산다'인데, '우리 결혼했어요'가 되는 날이 올까 생각해 본다.
나는 대인 민감성이 높아서 사람을 대할 때 신경을 많이 쓴다. 보통 강강약약인 사람은 의롭다했고, 강약약강엔 비굴하다했는데, 나는 강약약약인 최약체 개복치였다. 이 개복치 유리멘털은 다년간의 사회생활로 사람에게 시달리면서 바사삭 갈려 곱디고운 가루로 흩어졌다. 사람에 대한 실망의 작용으로, 인간관계의 씨를 말려버리는 극단적인 반작용이 일어났으니, 학교 다닐 때 맨날 틀렸던 작용·반작용의 원리가 이렇게 맞아 들어갔다.
재활용도 어려운 미움을 내다 버릴 곳을 찾지 못해서 의식 속에 묻어뒀다. 그런데 잊을만하면, 관 뚜껑을 박차고 일어나는 귀신처럼 튀어나와 내 머릿속을 쏘다녔다. 기억도 안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괜찮은척할수록 사회성은 0에 수렴하며, 스펙터클한 지옥보다는 더럽게 따분한 천국을 원하게 됐다. 누구와 함께 있는 게 외로움 해소를 뜻하지 않았다. 군중 속의 고독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지만, 혼자라서 고독한 건 너무 당연했기에 자연히 받아들였다. 나를 지키려는 정당방위였고, 작용·반작용의 결과라는 점에선 과학이기도 했다.
박살 난 인류애와 사람에 대한 믿음을 조각모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타인에게 기대가 없으니 남에게 기댈 줄을 몰랐다. 이 마음은 결혼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한 사람을 믿고 평생을 약속하는 게, 지구 반대편에 사는 다른 민족의 성역 같았다. 결혼은 호불호가 분명한 이민지였다. 현재 국적인 솔로가 나쁘지 않은데, 굳이 위험부담을 등에 이고 이민을 가야 하나 싶었다. 결혼을 열망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아서 언제나 빈칸이었다.
퇴사를 고민할 때마다 결혼해서 관두란 소리를 자주 들었다. 취집이란 말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취집도 능력이란 말엔 동의했지만, 내 능력 밖이었다. 나는 내 능력을 자신을 책임지는 일에 쓰고 싶었다. 도망친 곳이 낙원일 리도, 왕자님이 있을 리도 없었다. 우회로라며 회피하듯 도착한 결혼은 자충수일 확률이 높았다. 막다른 선택은 최악 아니면 차악일 테니까.
결혼과 아이는 세트처럼 함께 한다. 부모 자격시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나의 자격을 셀프로 테스트하는데 매번 낙제다. 후대 생산을 목숨처럼 여겼던 과거에도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했다. 여기서 상팔자를 맡고 있는 나는 시험에서 탈락한 게 후련하기도 하다. 많이 먹고 손이 많이 가는 내가 나도 감당이 안 되는 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오 갓, 이놈의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노노, 안돼 안돼.
탄생엔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한다. 태어나기 전에 아이에게 물어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세상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권선징악도 아니고 정의가 항상 승리하지도 않아. 즐비한 악과 뒤엉킨 이해관계 속에서 네가 아무리 잘해도 넌 상처를 입고 실망도 할 거야. 너처럼 귀한 존재가 이 험한 세상에 와도 되겠느냐고. 난 벌써 그런 네가 아픈데, 넌 정말 괜찮겠느냐고.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나의 무능과 거기서 오는 아픔을 감당해야 할 나는 또 과연 괜찮겠느냐고. 너와 내게 재차 확인하고 싶다.
생각만 해도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존재를 만드는 걸 생각만으로 끝낼만큼 나는 신중한 겁쟁이다. 지켜야 할 게 많을수록 불안했다. 조금 더 용감해진다면 내게도 다른 세상으로의 이민이라는 현실이 찾아올까. 찾아와도 좋고, 아니어도 괜찮다. 어떤 선택이든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
결혼과 아이에 대한 주제가 조금 민감할 수도 있어서
쓰는 내내 고심하게 되더라고요...!
혹시 불편한 내용이 있더라도
차은우 님 얼굴 보시면서 고정하시고 재밌게 봐주셨으면 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