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울만되면 달라진다

by 놀마드놀

나는 내가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둔탱이 미각 덕분에 웬만한 음식은 다 잘 먹고, 어느 선까지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기곤 한다. 하지만 이 둔탱이 DNA 속에 예민이가 살고 있었으니, 특히 계절 변화에는 심신이 조금도 엇나가지 않고 정확히 반응한다.






예민이는 겨울이 힘들어


찬바람이 불면 손가락 피부는 갈라지고, 수족냉증이 생기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습진은 약을 바르고, 수족냉증은 영의정이 되더라도 어그부츠를 신으면 되는데, 내려간 텐션은 영하의 기온처럼 차게 식어 도무지 오르지를 않는다. 겨울만 되면 내 꿈은 대통령도 과학자도 아닌 포켓몬스터 포켓볼 안에서 잠자는 잠만보가 된다. 기운이 없고 잠이 쏟아진다. 보통은 9시 전후로 기상을 하는데, 겨울엔 일어나는 시간이 자꾸 늦어진다. 후리스를 턱까지 올리고 수면양말을 신고 전기장판을 켠 이불속에 숨어, 추위를 피하고자 시간을 제물로 바친다. 털갈이를 하는지 수시로 빠지는 머리카락을 회수하기 위해, 전기장판에 누워 돌돌이만 설설 굴려대며 꼼짝을 안 한다.


거기에 겨울 대비용 피하지방을 축적하느라 돼지력이 뻗쳐 과하게 먹어대고 있다. 입을 채워 기력을 회복해 볼 심산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단 배부른 돼지가 낫고, 심지어 난 소크라테스도 아닌데 배까지 고프면 억울하니까, 돼지런(돼지+부지런: 먹는 것에 매우 부지런함)한 생활을 규칙적으로 살아내며 덜 움직이고 더 먹고 있다. 그러고 보면 관리하느라 절식하는 연예인들보다 내가 훨씬 잘 먹고 다닌다. 더하기가 아니라 제곱으로 붙는 지방을 보며 빈익빈 부익부를 목격했는데, 살에 있어서는 내가 부익부 쪽에 서 있었다. 부와 명예는 축적하지 못했을지언정 지방 축적엔 성공했다. 허리선을 내주고 지방 부자가 되다니… 에잇 짱나네, 꿀꿀.






나름의 겨울적응법


겨울에도 유독 따뜻한 날이 있다. 찬 공기를 달래는 햇살이 인심 좋게 내리는 날에는 돼지런하게 먹고선 게으름을 타일러 자전거를 탄다. 오르막에서 페달을 구르며 찬공기를 습습헥헥 마시고 뱉으면, 답답한 속이 정화되는 것 같아 좋다. 내리막에서 힘 안 들이고 이동하는 순간은 공것을 얻은듯해서 또 기분이 좋다. 있지도 않은 의지를 짜내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참 고역인데, 이건 운동 아니고 기분 전환이라며 나를 그럴듯하게 속일 수 있어서 더 좋다.


얼마 전엔 저녁에 첫눈이 내렸다. 나의 감성은 추위에 얼어 죽은 지 오래라, 밖에 나가지 않고 방에서 겨울 노래를 들으며 눈을 봤다. 첫눈의 로망이 내게 맞춰 홈서비스로 부활했다. 따뜻한 공간에서 밖을 바라보는 '실내형 겨울'이 마련되었다. 내일은 길 미끄러우니 밖에 나가지 말자는 생각과 함께.






겨울은 눈을 볼 수 있다는 고유함과, 한해의 끝과 시작을 모두 품고 있다. 그래서 감성인 척하는 우울과 허무를 긁어모아 핫팩처럼 쥐고 이불속으로 숨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벌써 3n번째 맞는 겨울인지라, 이젠 겨울의 내 모습이 대충 파악이 된다. 그래서 대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나만의 맞춤 겨울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겨울만 되면 달라지는 나를 보며 소망한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듯 자연스럽게 겨울을 맞이할 수 있기를, 그 안에서 내게 맞는 나다운 겨울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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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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