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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생일은 달라야 한다

by 놀마드놀


생일이 언제예요?


언젠가부터 생일이 언제냐는 물음에 대충 얼버무리거나 '여름이에요.' 정도로 하나 마나 한 대답을 했다. 애매한 대답처럼 애매한 날이었다. 생일에도 학생 때는 공부를 했고 회사에서는 일을 했다. 강남역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처럼 무표정으로 스쳐 가는 하루가 특별할 이유가 없었다.


세월이 '오다 주웠다'며 한 살 멕이고 가는 바람에, 공식적·신체적으로 한 살만큼 늙어야 하기에, 생일은 적이 부담스러운 날이다. 어릴 때야 빨리 어른이 되길 빌며 거실에 있는 가장 큰 달력에 내 생일이라고 빨간 동그라미를 그렸지만, 이제는 한 살이라도 더 어려 보이려고 마스크팩을 붙이고 있다.


이런 생일을 알려 남에게 괜한 부담을 지우기 싫었고, 상대의 생일에 답례해야 하는 의무감으로 돌려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쿨병 걸린 사람처럼 생일이 뭐 별거냐고, 생일과 자석처럼 붙어있는 축하해라는 인사가 빠져도 그냥 넘겼다. 그래도 생일인데 혹시 서운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네니오!(네+아니오)라고 대답하겠다. 유쾌하진 않지만, 그러려니 한다는 뜻이었다.




특별한 생일 선물


생일 버프를 잘 받으면 평소보다 몇 배는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훨씬 우울해진다는 부작용이 있다. 독거 백수 노처녀가 되어 혼자 보내는 첫 생일이 우울이 번식하기 딱 알맞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 유튜브였다.


뻔한 불행을 막기 위해 큰 마음먹고 셰익스피어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을 보기로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20대까지 이상형이던 신화의 김동완 님이 요정 퍽 역할로 나온다고 하여, 3층인데도 6만 원이나 하는 자리를 예약했다. 멀리서만 좋아했지, 직접 공연을 보러 간 건 처음이었다. 아이돌 쫓아다니기엔 영 체면이 서질 않는 나이가 되어서도,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빠순력이 나 스스로도 웃기지만, 원하지 않는 처치 곤란 기프티콘보다는 나를 확실히 설레게 해 줄 대상과의 만남이 훨씬 더 값진 선물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그를 밖에서 기다렸다가 얼굴 보고 대화도 하고 무려 악수까지 했다! 이런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일이 생겨버리다니, 정말 웬일이야, 꺜! 오빠 앞에선 침착했지만, 속으론 오두방정을 떨었다. 허구와 같아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는 내게 해리포터와 동급이었는데, 출판이라는 꿈이 잡히질 않아 답답한 때에, 환상 같던 꿈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된 신기한 경험이었다. 서울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붕붕 뜬 마음은 해리포터 속 런던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을 통과하고 있었다.


최애 연예인을 만난 것도, 서울 예술의 전당에 간 것도, 대사와 노래가 모두 영어인 오페라를 접한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인생 적지 않게 살았다며 억겁의 세월을 등에 업은 듯 건들댔는데, 처음인 게 이렇게나 많았다.

오래 살고 볼 일이란 말을 이번에 체득하면서, 그분처럼 바르게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간 그에게 내 책이 닿는 날이 현실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겠다 싶어 용기가 났다. 으으, 오늘 손 씻지 말아야지, 헿!







앞으로 내 생일을 나의 날로 선포하고, 안 해봤던 걸 해보거나, 안 가본 장소에 가보고, 나를 설레게 해주는 걸 찾아 나만의 기념행사를 거행할 것이다. 무표정한 날들이 겹겹이 쌓여갈 때, 대놓고 기분 좋아도 되는 날을 즐기며 생일상처럼 나만의 의미를 거하게 차려 보기로 했다. 의미는 부여하는 자의 것이니까, 얼마든지 마음대로 갖다 붙여도 된다. 나를 인정하고 대접하며 마음껏 좋아하라고, 생일은 그러라고 만들어졌나 보다.









저, 저만 추운 거 아니죠?

추위에 약해서 요새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ㅎㅎㅎ

맨날 춥다는 얘기만 하고 있네요 ㅎㅎ 이제 시작인데 우짜죠 ㅠ_ㅠ

모두 몸조심하세욧! 건강이 최고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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