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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일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by 놀마드놀

굶어 죽기 딱 좋다는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그 어렵다는 기획 출판에 도전했다. 10개월 동안 3차에 걸쳐 200번의 투고를 했고 모두 거절당했다. 역시나 인생에 생각대로 되는 건 ‘이러다 살찔 텐데’밖에 없다. 이렇게 많은 거절을 경험한 건 처음이었다. 알고 맞는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재난 문자라도 미리 보내줘야 하지 않나 싶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면 호적을 파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 슬픈 건 작가 못 해 먹겠다고 떠나보내기엔 아직 우린 시작도 못 한 사이라는 거였다. 이 가난한 일방통행식 외사랑을 이어가는 게 힘에 부쳤지만, 시작도 못 해보고 사랑이 어렵다고 울 수는 없었다.




투고 실패, 그 이후


찾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있었으니, 바로 지역 도서관이다. 너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들이 책장마다 꽂혀있다.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의 숫자는, 하면 된다는 희망의 증거이자 절망의 수치화였다. 이 많은 책 중에 내 책은 없다. 보이지만, 절대 넘어갈 수 없는 휴전선이다. 코앞에 있지만 실제로 내 앞에 있지는 않아서 영상을 통해 보는 다른 세상 같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었나 보다. 그저 나만의 외람된 꿈이었을 뿐. 열등감만 한가득 안고 영상을 꺼버리는 듯 도서관을 나설 때면 ‘일론 머스크도, 이재용도 똥을 싼대! 그들도 사람이야!’처럼 절대 같은 처지가 아닌데 자꾸 같은 사람이라며 세뇌를 당한 것 같았다.


나의 일상은 늘 비슷하다. 주 6일로 인스타에 글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일주일에 한 번 브런치에 올릴 에세이를 쓴다. 나도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자란 전형적인 한국인인지라, 붕어빵 찍어내듯 글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거듭나고 싶으나, 내 능력으론 지금 사이클도 겨우겨우 돌아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글을 쓰며 다친 마음을 치료하고 백수 생활을 버텼지만, 글을 일로 인식하고부터는 즐기지를 못했다.


그동안 내게 ‘일’이라 함은 ‘돈을 버는 것’이었는데, 일처럼 글을 쓰지만, 돈은 생기지 않는 인지부조화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가 꼴 보기 싫어질까 봐, 내 모든 노력이 그저 헛짓거리가 될까 봐 두려웠다. 이루기 전까지는 100만큼 노력해도 그냥 0일뿐이다. 나는 항상 뭔가를 하고는 있지만 한가한 사람이었고, 옷을 입고 있으나 벌거벗었고, 밥을 먹어도 허기가 졌다.




저는 일을 합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아는 지인은 거의 없다. 백수가 되어 방에 숨어들면서, 인간관계가 얕고 좁은 수준을 넘어 전멸해 버렸다. 이런 내게 친동생은 주기적인 전화로 생사를 확인해 주는 복지관 같은 존재이다. 어릴 땐, 싸우지 않는 게 헌법에 위배라도 되는 것처럼, 법을 지키듯 참 착실히 치고받고 으르렁댔다. 그만 싸우라고 친할머니께 파리채로 얻어맞으며 다진 미운 정 때문인지, 현재는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동생에게 글 제목이나 썸네일에 대해 의견을 묻곤 한다. 나의 자매님으로 말하자면, 내가 새로 산 모자가 좀 작은듯해서 어떠냐고 물으면 ‘족두리를 산거냐’며 팩트로 두들겨 패는 정직함과 객관성을 갖고 있다. 이 직사광선 같은 가차 없는 평가는 자주 도움이 된다. 동생이 개구리 이모티콘을 보내오며 ‘개 구리다’라고 하면 글 제목을 고쳤고, 괜찮다고 하면 통과가 되는 식이었다.


하루는 저녁 8시에 썸네일을 봐달라고 톡을 보냈다. 저녁때 귀찮게 한다고 한 소리 들을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 답장이 왔다.


‘괜찮네. 근데 왜 이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어?’






동생이 나의 헛짓거리에 대해 ‘일’이라고 말해준 순간 다시 힘이 났다. 글쓰기는 내가 선택한 내 일이다. 작가라는 직업에 끌렸건, 세상만사를 나의 시선으로 재정의할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었다. 쉽게 얻을 수 없기에 특별하다고 할 것이다. 하루아침에 특별 해지는 건 진정 특별한 게 아닐 것이다. 기약 없는 후불제 급여 시스템이 언제 작동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글을 놓는 법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특별해지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일을 한다. 글을 쓴다.













(+) 아 많은 분들이 글 보시고... 응원과 격려, 도움 주셔서ㅠㅠ 정말 큰 힘과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자주 혼자 있지만 정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기획출판 준비하면서 저 스스로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느껴요.

예전에 쓴 글은 지금 보면 조악하고 엉성해서 오히려 잘 안된 게 길게 보면 저에게 더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

그 덕분에 글을 일로 바라보는 눈이 생겼고, 알바도 구하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게 됐어요.

더 준비하고 다듬어서 작품이 되는 책을 세상에 내놓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을 쓴 덕분에 세상에 좋은 분들이 정말 많고, 그분들에게 받는 위로가 이렇게 큰 힘이 된다는 걸...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이 글 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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