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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땐 귀여운 게 필요해

by 놀마드놀

시쳇말로 귀여움엔 출구가 없다고 했다. 요즘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어떤 존재에게 귀여움을 느낀 순간 답이 없다. 속수무책으로 귀며들 뿐.


밭도 못 갈고 타고 다닐 수도 없는 개와 고양이가 그 증거다. 밥 먹고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귀여운 것밖엔 없는 이 생명체들은, 대대로 인간에게 귀여움을 떨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돈은 내가 벌 테니 넌 그저 귀엽기만 하라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사의 숫자가 15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귀여움이 생존에 유리한 게 분명하다.






댕댕이와 고영희


수많은 견종 가운데 내가 뽑은 으뜸은 시고르자브종이다. 특히 시골 똥강아지의 똥꼬 발랄함은 압도적인 귀여움이다. 천지 분간 못하고 날뛰는 걸 들어 올려서, 억울하게 처진 눈과 새까맣고 촉촉한 코, 털이 보송보송한 주둥이를 마주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하찮게 달린 말랑한 귀까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게 깜찍하다. 강아지 얼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본다. 킁킁.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댕댕이에게만 맡을 수 있는 달큰하고 기분 좋은 우유 향이 난다. 음, 스멜. 이 포근하고 고소한 새끼 냄새 때문인지, 보통 털이 까마면 흑미, 하야면 백설기, 달고나처럼 누리끼리하면 누룽지, 포슬포슬한 콩가루 같으면 인절미라고 이름 지어 부르곤 했다.


산책길에 으르렁대는 개와 몇 번 마주치고 나서는 고양이를 더 좋아하게 됐다. 욘석들의 적당한 무관심과 새침함이 좋다. 대쪽 같은 고영희 선생께서는 무념무상으로 식빵을 구워내는 기술자이며, 기분 좋을 땐 골골송을 멋들어지게 부르는 풍류객이다. 뭘 보냐는 듯 시큰둥하고 도도하게 거리 두기를 하다가, 은근슬쩍 사람 발목에 몸을 슬쩍 비비며 지나가는 반전 매력으로 상대를 홀린다. 거기에 까끌한 혀로 내 손을 그루밍해 줄 땐 영광스럽기까지 하다. 기술적인 밀당으로 인간의 심장에 치명타를 마구 가해온다. 삐빅! 거기 고영희씨, 기준치 이상의 귀여움으로 심장을 가격하시는 건 반칙입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다. 이미 빠져들고 있다. 이 무자비한 냥아치에게.


혼자 살다 보니 이 귀여운 것들을 내 공간에 들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팍팍하고 단조롭고 외로운 공간을 귀여운 존재로 채우고 싶은 거다.






살아있는 귀여움은 거저가 아니기에


문 앞을 지나가는데, 문 안쪽에서 들리는 개의 ‘멍!’ 소리에 놀라 걸음을 멈췄다. 주인을 기다리는지, 현관문 밑에 코를 박고, 힘없이 외마디로 짖는 개의 울음을 인지한 순간, 놀란 마음이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이 측은한 마음은 귀여움에 가려졌던 책임에 대한 문제를 들춰냈다. 보통 10년은 넘게 살 개와 고양이를 그 긴 시간 동안 보살필 수 있을지,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선인장을 며칠 만에 죽게 만드는 공포의 마이너스 손인 내가 과연 생명을 키울 수 있을지, 나의 외로움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털컥 생명을 들이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다. 책임의 무게 앞에 단지 귀여워서, 외로워서라는 이유는 잔뜩 주눅이 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무작정 뛰어드는 개와 그 개를 보며 놀랄 사람을 생각해 엘리베이터 문에서 몇 발짝 떨어져 있는 배려, 산책로에선 꼭 목줄을 착용하고 변을 수거해 가는 펫티켓, 아프면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경제력과 책임감, 그게 있는 사람만이 생명을 건사할 최소한의 자격을 갖는다. 살아있는 귀여움을 얻으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결국 나는 살아있는 귀여움 대신에 부담 없는 귀여움을 선택한다. 집 열쇠에 깜찍한 스누피 키링을 달았다. 책임은 없고 마음을 달래줄 건 필요하니까, 달랑거리는 키링으로 산뜻하게 외로움을 다독인다. 다들 썩어가는 표정으로 가방에 귀여운 걸 몇 개씩 달고 다니는 걸 보면,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도 살아있는 귀여움이 정말 절실할 때가 있다. 혼자 살 건 누구와 같이 살건,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이땐 이 구역에 귀여운 건 나 하나면 차고 넘친다는 생각으로 거울을 보며 딱 한 마디만 하면 된다. 뀨?











댕댕 고영희보단 못하지만 충분히 깜찍스러운 스누피 ^ ^










추워요오오오오 ㅠ_ㅠ

이불속에서 눈만 꿈뻑대다가 글업로드가 평소보다 좀 늦었습니다 ㅎㅎㅎ

모두 체력관리 잘하셔서 겨울을 잘 넘겨보자고요! 감기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 ^



★놀마드놀의 인스타 보기 : https://www.instagram.com/nolmad_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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