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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Nov 02. 2023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받을까 말까


가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순간 고민을 한다.



받아? 말아?



받기 귀찮은 상황이면 그냥 받지 않는다.

가끔 고민하다 받았는 데 광고전화이면 고민한 게 좀 억울해진다. 

만약 중요한 전화였다면 전화 달라는 문자가 올 테니 안 받을 때도 많다.




그런데 얼마 전에 모르는 핸드폰번호로 전화가 오길래 고민하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노을이니?"



"아.... 네에...."



네라고 대답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한때 나와 어떤 인간관계를 맺었을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내고자 기억력을 풀가동해 본다.



"...."



기억이 안 난다. 이런.

번호를 삭제한 사람 같은데... 서로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이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며, 미안하고 뻘쭘한 마음을 애써 접어본다.




"나야, ㅇㅇㅇ. 잘 지냈어?"




... 누구? 

(1초, 2초, 3초) 아.

3초 정도의 정보처리 시간이 걸린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 연락한 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정보처리 시간은 더 길어진다. 


11년 전, 내가 신규직원일 때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대리였다.

알게 된 지 6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가버린 후론 전혀 연락한 적이 없다.

그 당시 신규직원인 나에게 일 가르 쳐주는걸 은근히 귀찮아하며 남에게 떠넘겼던 기억이 있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었다.

지금까지 내 번호를 갖고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 =갑자기 뜬금포로 연락한 목적이 뭐요?)



"너 회사 그만뒀단 이야기 들었어. 뭐 하고 지내?"




10년 만에 연락해서 내 건강이나 안부 따위가 궁금한 건 아니었을 거고,

회사 그만두고 뭐 하고 사는지를 물어왔다.

그때 나한테 별로 신경도 안 써주고 신규직원이라고 귀찮아했잖아, 갑자기 그런 걸 왜 묻는 거야...

다짜고짜 전화해서 저렇게 묻는 게 좀 무례하게 느껴졌다.




"아, 그냥 있어요."

(=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꽤 친한 지인들한테도 나의 속내를 다 이야기하지 않는 나였다.

10년 만에 연락온 예전 회사사람은 그냥 남이었다.

아니, 그냥 안면 없는 쌩판 남이 오히려 더 낫다. 

어설프게 아는 사이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만 불러오니까. 

대리는 방어적인 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아, 그렇구나. 우리 회사가 힘들기는 하지. 나도 요새 어쩌고 저쩌고..."




이 여자대리는 너무 힘들고 관두고는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퇴사자는 뭐해먹고 사나 궁금해서 연락을 한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은근 회사사람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이해는 된다.

나도 먼저 퇴사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뭐 하며 어떻게 사는지가 참 궁금했었으니까.






사람은 본인이 듣고 싶은 말을 취사선택하여 듣고,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에 용기를 더해주길 바라며,

자신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받길 원한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을 보며 앞으로 닥칠 위기에 미리 대비하고 싶어 한다.



나도 퇴사를 꿈꿨기에 먼저 행동했던 퇴사선배들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가능하겠다는 용기를 나눠 받고 싶었고

어떤 다른 신박한 길이 있는지 정보도 얻고 싶었고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지금은 좀 더 다니면서 준비해야 할 때야라며 나를 다독일 구실이라도 만들고 싶었다.




이리저리 물어봐서 현명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정한 대답에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선택에 대한 이유와 근거를 자꾸 수집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길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선택을 하든 똑같은 길일 수는 없으니

그냥 내 방식대로 소화하면 된다.


어찌 됐든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어있으니까, 결정한 대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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