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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Oct 26. 2023

죽는다니, 정말 다행이다


올해 들어 극심한 안구건조증에 시달리고 있다.

조금만 무리해도 눈이 쿡쿡 쑤시고,

건조해서 자꾸 눈을 깜빡이게 되기 때문에

운전이나 걷기, 컴퓨터작업 등 일상생활을 할 때 불편한 게 정말 많다.

눈이 몸의 9할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결핍은 소중함을 일깨운다.

모자라면 모자랄수록 간절함이 가득 찬다.

그 간절함 덕분에 몸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염증제와 인공눈물을 투약하고 항생제도 먹고 있다.

따뜻하게 데운 안대를 하고 눈 마사지도 한다.

눈에 좋다는 블루베리, 아몬드, 오메가 3을 다시 먹기 시작했고,

설탕이 영향 흡수를 방해한다고 해서 그 좋아하던 빵과 과자도 줄였다.

물을 많이 마시게 됐고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다 필요 없고 건강이 최고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잠자리에 누우면 오만생각이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닌다.

아픈 눈을 감으니 괴로운 마음이 일어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하지...

-정말 괴롭고 힘들다...



힘듦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때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하는 건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알 수 없다는 것은,

희망이며 동시에 절망이기도 하다.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의 악력은 생각보다 힘이 세서

웬만한 발길질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절망이 무성하게 뿌리내린 머릿속을 정신없이 떠돌다 보면

온몸 구석구석에 무기력과 좌절이 도깨비바늘처럼 붙어서 따갑게 나를 찌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고통도 끝이 날 거라는 것 하나만큼은 명확하다.

공부에 머리가 아파도 졸업이 있고,

일이 힘들어도 퇴근이 있고,

사는 게 지긋지긋해도 죽음이 있다.



너무 힘들 땐 끝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공포스럽고 막연한 단어, 죽음을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의 평안은 또렷하게 자리를 잡는다.



불로장생, 영원히 산다는 것은 환상적인 형벌이다.

무한한 것은 매력이 없다.

희소하기 때문에 높은 값을 지불한다.

삶은 끝이 있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고통이 일깨워주는 삶의 소중함덕분에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이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

내 몸과 마음을 돌보며 나를 아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언젠가는 모두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끝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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