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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Oct 03. 2023

2번 집을 나왔다


스무 살의 3월은 따뜻했고 추웠다.

내 마음도 그랬다.

설렜고 두려웠다.


시골에 살던 나는 도시로 대학을 가는 게 꿈이었다.

그렇게 고대하며 받은 대학합격통보서는 도시로 가는 티켓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집, 답답한 시골생활, 하기 싫은 공부

다 떨어진 운동화밑창에 붙은 껌처럼 항상 떼내고 싶었던 현실에서 달아날 수 있는 가장 정당한 구실을 얻은 나는, 대학이라는 새운동화가 그렇게 가볍고 좋을 수가 없었다.


입학 며칠 전에 아빠의 트럭에 내 짐을 싣고 트럭 앞칸에 엄마와 셋이 앉아 학교 기숙사로 갔던 기억이 난다.

낯선 곳에 짐을 내려주시고는 걱정스레 날 바라보시는 아빠의 눈빛,

마지못해 발걸음을 돌리시는 구부정한 뒷모습


다 지긋지긋했는데...

마냥 후련할 줄만 알았는데...


멀어져 가는 아빠의 트럭,

혼자 남겨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성인이란 이름으로 누리는 대학생활은 고향도, 시골도, 어쩌면 부모님까지도 까맣게 잊게 만들 만큼 새로운 자극의 연속이었고, 시간은 흥청망청 지나갔다.


나는 졸업 후에 고향 주변으로 직장을 얻게 되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골, 그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살게 되었다.

시골생활은 물론 갑갑했다. 하지만 타지생활로 인한 외로움과 취업스트레스로 지쳐있었기에 다시 돌아온 집에서 바싹 마른 이불에 누은 것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



그렇게 11년이 흘러 퇴사를 하게 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모님 눈치도 보였고,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퇴사하고 집구석에 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게 힘들었다.

무엇보다 이 시골이, 집이 너무 답답했다.

나는 다시 '현실'이라는 낡은 운동화를 갈아 신고 싶은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독립을 결정했다.

부모님은 가전 사는데 보태라며 봄부터 가을까지 고추농사로 마련한 돈을 빳빳한 오만 원짜리로 봉투에 담아 건네주셨다.

이것저것 과일과 반찬도 같이 챙겨주셨다.


나는 넉넉지 못한 시골 우리 집이, 비 오는 날 하얀 운동화에 튀는 흙탕물 같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결핍이 불편했고 구질스러웠다.

그래서 하얀 운동화에 묻은 얼룩 같은 현실에 늘 불평했다.

비에 젖지 않게 지켜주는 우산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세차게 내리는 비가 운동화의 얼룩정도로 끝날 수 있게 우산이 되어주신 건 바로 부모님이었다.


30대가 된 나는 아빠의 트럭대신 내 차에 짐을 싣고 고향집에서 멀어져 나왔다.

또다시 맞이한 새로운 시작은 쌀쌀하면서도 화창한 3월의 어느 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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