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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lnoc Mar 26. 2018

사회/나쁜 페미니스트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면

나쁜 페미니스트

작가: 록산게이 (Bad Feminist, Roxane Gay)


나는 독립적이고 싶다.
하지만 누가 우리 집에 와서 나를 챙겨주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기 전에
일년 전 한 남자사람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질문받은 주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대답했던거 같다. “잘은 모르지만 너무 과격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는건 좀 불편해” 그 질문에 대해 그 친구는 “그럴 수 있지. 그렇지만 그들은 그렇게까지 얘기하지 않으면 들어주지도 않으니깐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라는 대답을 했다. 무심코 나눴던 대화에서 내가 했던 대답이 무척이나 부끄러워지는 요즘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요 일년 사이 무척이나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급격히 많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이년 전 쯤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부터인 것 같다. 피해자는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살해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당했던 부당한 일들이나 위험한 상황들에 대해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면서 크게 이슈가 되었다. 나 또한 '여자'로서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 같다.

외국에서는 이전부터 있어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비난 받고 있는 아이린에 대한 기사나 'Girls can do anything'이 쓰인 폰케이스를 들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과를 해야했던 손나은의 기사를 보며 아직 이 세상이 불평등 하다는 것을 깨닫고 끝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서 좀 더 알아야 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들이 지키고 있는 신념은 무엇인지, 그들이 스스로 알고 있는 한계점은 무엇인지, 어떤 이슈에 주로 반응하고 어떤 입장을 견지하는 지 등등에 관한 것들을 말이다. 사실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도 내가 가졌던 궁금점들이 모두 해결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모호해 진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여자로서 보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그리고 나의 행복을 위해 지켜가야 할 입장과 내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서는 조금 명확해진 것 같다. 감상에서는 어떤 부분이 모호하고 어려웠는지, 그럼에도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지녀야할 자세와 인정해야 할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요약
여성, 유색 인종, 성 소수자에게 가해진 차별과 폭력적 시선이 어떻게 실제 사건과 미디어에 나타나는 다양한 사례로 이야기하며 이를 통해 페미니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상
#ME TOO 여자가 사회적 약자일 때 겪는 것들
지난 몇 달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미투'라는 이름을 달고 사회적 약자인 '여자' 이기 때문에 나쁜 일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며칠 전에서부터 몇 십년전에 있었던 일들까지 그리고 그 방식은 메신저를 통한 추행에서부터 괴상한 마사지,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믿기 어려울정도로 다양하고, 더럽고, 폭력적이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한결같이 들었던 생각은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가 아니라 '아니 저 사람이 그랬단 말이야?'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이런 일이 내 주위에서도 다른 방법으로 '은근히' 그리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보거나 겪으면 분노하며 폭로하기 보다는 부끄럽다 생각하며 쉬쉬하고 감춰왔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나의 미래가 그리고 그 일을 당한 이의 미래가 걱정되었으며,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일이며 소문이 두려웠고, 그래서 누구도 드러내고 할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미투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일들이 무척 놀랍다. 뉴스에서 담담히 자신이 당한 일을 이야기하는 그녀들을 보며 자꾸 눈물이 났고, 그들의 용기가 눈물 겨운 한 편 그들의 내일은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직후 여론은 그녀들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미투 이후 몇 주, 몇 달이 흐른 지금 폭로된 이들과 폭로한 이들의 현황은 짧은 뉴스 한 토막으로 전해지거나 그 조차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를 지켜보며 이 세상이 참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너무나 고마웠다. 그런 폭력을 가해온 이들에게 그들의 행동이 무척이나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많은 명예를 얻고 있던 이들이 미투운동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폭로되진 않았어도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과 죄책감을 심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신체를 함부로 범해서는 안되며, 그 것이 범죄라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남자인 강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행동과 언행이 잘못인지 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고 더럽지만 이제라도 잘못의 범위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한국사회에서 아주 위대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희생과 용기가 그 가치를 더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이슈화되고 가해자들에게는 무거운 중벌이 내려져 어물쩍 넘어갈 수 없는 명백한 범죄임을 모든 이가 인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그들이 무심코 내 뱉은 말과 행동이 타인의 인격을 무참히 갉아먹는 범죄라는 사실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당해온 폭력인줄 몰랐던 폭력
대학생때 OT에서 복학생이라는 한 선배는 내 허벅지를 슬쩍 만지며 생각보다 하체가 튼튼하다고 모두에게 들리게 이야기 했다. 학교 졸업식 때 교수가 학사복을 걸어주며 이상하리만치 세게 포옹했다. 불쾌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한 남자선배는 술에 잔뜩 취해서는 한 여자 선배에게 "00는 가슴이 예뻐서 좋아" 라고 여러번 얘기해서 주변 분위기를 싸하게 했었다. 실제로 내가 겪은 일들. 여자라는 이유로 겪게되는 이런 신체적 언어적 폭력은 폭력이라 인식 조차 되지 못한 채 일어난다. 여자의 외모와 신체는 마치 공공재라는 듯 늘 평가되고 만져진다.

여성이 임신을 하면 사생활이 점점 더 줄어드는데
만삭에 가까울수록 현재 조건이 점점 더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임신을 한 적이 없지만 임신을 하면 당연하다는 듯 공공의 몸이 된다고 한다. 이전에 이런 문제에 대한 기사에서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임부의 배를 만지기도 한다는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마치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출산하는 기계를 대하듯 여성의 몸을 대하는 이 사회의 시선이 몹시 싫었다. 그래서 나는 임신과 출산이 두렵다. 몸의 변화와 고통도 두렵지만 나의 몸이 사회 구성원 유지를 위한 물건처럼 인식될까봐 두렵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미국 유럽 등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도 여전히 성평등에 대한 논의와 운동은 계속 되고 있고, '성평등' 이라는 주장 조차 어려운 비인간적인 나라도 지구상에는 가득할테니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 편에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메갈''미러링'등의 이름으로 폄하되며 성대립 구도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차별이라 인식 조차 되지 않고 있던 사회 구석구석을 함께 살펴보고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언행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나쁜 페미니스트'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에 대한 시선 또한 이야기 한다. '흑인 남성' 이기 때문에 의심을 받고 심지어 살해 당하더라도 가해자는 무죄로 풀려난다. '흑인'은 어릴 때부터 경찰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교육받고, 그들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백인'처럼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기도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곱슬머리의 '백인 남성' 이기 때문에 테러범죄를 저지르고도 범죄가 미화되고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합당한 이유가 만들어지는 사회현상. 영화나 드라마에서 유색인종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까지.

이런 이야기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 가해지는 차별 뿐만 아니라 내가 나도 모르게 건넨 차별적인 시선들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시선 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가 가졌던 남자에 대한 역할기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했다. 예를 들면 힘들고 험한 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거나 운전은 남자가 더 잘한다거나 하는 생각들이 있겠다. 아직 갈길이 멀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논쟁거리들이 많다. 이런 문제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내가 평등하게 취급받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온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오랫동안 독립적인 돈 버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의존한다고 해서 평등하게 취급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사람은 인격적으로 평등하게 대해져야 한다. 하지만 내 성격이 받기만 하고 줄 수 없을 때 자존감과 자신감이 매우 떨어지고 무기력해 짐을 알고 있기에 좀 더 스스로 당당하기 위해 하고 있는 노력인 것이다. 그런 생각들들 하면서 그래도 평등한 분위기 속에서 '여자 직원'에 대한 기대가 아닌 한 구성원으로 나를 대하는 조직에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 됨으로써 "너는 00에게 00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라는 말을 차단시키고, 나의 주장과 삶의 방식이 보다 설득력 있었으면 한다. 이런 노력들로 얻고 싶은 것은 너무 단순한 것 들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노력으로 내가 방어하고 싶은 말들은 아래와 같다.

- 나이 들어가는데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니. 너는 너만 생각하니?
- 그래도 애는 여자가 봐야지
- 과일 좀 깎아와봐라
- 여자애가 왜 이렇게 꼼꼼하지 못하니
- 여자애가 왜 이렇게 드세니. 의지 좀 하고 그래.
- 누나가 돼서 왜그러니 남동생한테 좀 잘해줘라. 등등 .. (이런 말들을 쓰는 것 만으로도 기운이 빠진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온 언어적으로, 신체적 폭력들을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나름대로 무척이나 고군분투하고 있다. 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누구도 나에 대해 함부로 얘기할 수 없도록. 이건 마치 흑인에게 '백인처럼 행동해'처럼 여자에게 '남자처럼 행동해' 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폭력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나는 내 스스로 방어하는 방법이 이것 뿐이다.

나도 나 스스로를 차별 안에 가두어 왔다
사실 나 스스로를 방어해야겠다고 생각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스스로 나 자신을 '여자'라는 프레임안에 가두고 '이건 여자니깐 못해' '여자니깐 너무 밝히면 안돼'라고 생각한 상황들도 많다. 나도 오랜 시간 그런 시선들과 사고방식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노력하는 지금도 편협한 사고방식 속에 묻혀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반복적으로 나의 사고방식과 언행과 태도를 돌아보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조금씩 부당한 차별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도 찾아봐야지. 작은 노력이지만 나에게는 그 것이 전부이고,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부끄러워 할 것 없다고
친구와 페미니즘 비슷한 얘기를 하다가 "나는 페미니스트라고는 못할 것 같아.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누려온 것들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아" 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 뒤에는 '페미니스트' 라고 하면 선언을 해야 할 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과, 한 편으로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 또한 위와 같은 고민을 겪었으며 그 생각들 끝에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 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페미니즘은 '여성은 남성처럼 00하게 행동해야 한다' 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의 행동에 편견이 생기는 이유는 주장하고자 하는 바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행동들(책에서 말하는 제모를 안한다거나, 핑크색을 거부하는 등의 행동들)이 마치 모든 페미니스트가 해야하는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여전히 참 어렵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좀 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여전히 어렵고, 나는 욕심이 많아서 내가 가진 것을 누리면서 가지지 못한 것들을 얻어오고 싶다. 그것이 인권과 폭력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페미니즘은 이 세상을 더 평등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라고 믿는다. 그저 여자만 더 편하게 살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일', '여자 일'이라고 나뉘어 있던 있던 일들을 함께 해나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학적 이유로 '여자만'할 수 있는 일이었던 '출산'을 더욱 가치있는 일로 여기고 그 일로 인해 '경력', '육아', '승진'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것이다. 레퍼런스 없이 처음 그 과정을 헤쳐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사회적으로 성대립이 줄어들고 함께 사회적인, 경제적인 무게를 함께 지고 간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긍정적인 일이 어디있겠는가? 언젠가 이러한 사고방식이 당연해져서 페미니즘이 과거에나 존재했던 단어가 되기를 바란다.

주관적 별점 & 한 줄 리뷰
★★★☆☆
조금은 나빠도 괜찮다. 페미니즘의 본질만 기억한다면 누구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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