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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lnomnon Mar 21. 2022

사람 산책시키는 개

잠원 한강공원

이렇게까지나 길어질 거라곤 다들 예상하지 못했던  세계적 역병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은비는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다. 심심치않게 있었던 해외출장이 없어지면서 다른 집에서 눈칫밥(물론 눈치 주는 사람은 없고 눈치 보는 개만 있을 뿐) 먹을 일도 없어지고, 부분 재택근무가 일상화 되면서 낮에도 사람에게 궁둥이 붙이고 낮잠도 자고, 산책 시간도 길어졌다. 특히 오미크론이 대유행하면서 은비 봉양을 위해 다니고 있는 회사가 드디어 100% 재택 근무로 전환하면서 은비 삶의 만족도가 최상인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은비 의사를 들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렇다...)


마침 날씨도 풀리면서 일주일에 몇 번씩 가까운 한강 반포지구로 산책을 가곤 하는데, 이날은 마찬가지로 강아지와 동거중인 지인과 동반 산책을 하기로 계획해서 오랜만에 잠원지구로 다녀왔다.



오늘의 산책메이트인 옥란언니. 올해 8세인 나이가 무색한 동안인 옥란이는 은비보다 4살이나 언니지만 강아지만 나타났다 하면 무조건 돌진해서 인사해야하는 천진난만한 기운이 넘치는 강아지다.


은비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겐 선비견으로 소문이 자자해 얌전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강아지를 포함한 동물들에겐 본인만의 잣대가 명확하다. 발랄하게 엉덩이 씰룩대며 다가오는 강아지들에겐 가만히 있다가도 왈왈 짖으며 화를 내기도 해서 산책하다 강아지를 만나면 긴장하게 된다. 우리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독 동네에 비숑 강아지들이 많았는데 한동안 비숑만 만나면 백발백중 성질을 부려서 (공격은 하지 않고 짖으며 저리 가라고 위협한다.) 은비가 비숑 포비아라도 있나 고민했던 적도 있다. 옥란이는 몇 달 전에 잠깐 인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은비가 역시나 성질을 부려서 (인간에겐 선비견이나 강아지에겐 선도부 행세를...) 걱정 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막상 만나니 둘은 서로 데면데면했지만 적어도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아니면 옥란이가 지난번 일을 기억해서인지 은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여튼 평화로운 산책이 시작되었다.

잠원지구 중앙에 너른 광장은 실로 개판이 따로 없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동네 모든 강아지와 인사 할 수 있다. 다행히 이날 은비는 어떤 강아지도 혼내지 않고 지나갔다. 네 살이 넘어 좀 착해진거니?

어느새 나란히 걷고 있는 옥란언니랑 은비. 은비가 약간 앞서 걸으면서 때때로 옆을 흘깃대며 잘 오고 있는지 확인도 한다. 둘이 그림체가 달라서 더 귀엽다. 은비는 가슴이 둔둔하고 옥란이는 털때문이지만 엉덩이가 둥둥하다. 너무 귀여워 너희 둘.

석양을 뒤로 하며 오늘도 인간 산책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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