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시작된 이야기

고등학교 졸업사진에 바다가 나온 사람

by 놀소


내가 유학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집안의 분위기가 큰 영향을 주었다. 부모님은 일찍부터 '우리 딸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아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아셨다. 대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며 자유롭게 자라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마침 한 살 터울인 오빠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 학원 뺑뺑이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풍경은 어린 나에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었고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차라리 검정고시를 치겠다고 아니면 해외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듯 졸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배치고사도 치르지 않은 내게 엄마가 무심한 듯 물으셨다.

"너, 뉴질랜드에 갈래?"

나는 여행을 가자는 제안인 줄 알고 망설임 없이 "좋아요!"라고 답했다. 그것이 내 삶의 첫 번째 전환점이 될 줄은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일주일 만에 짐을 꾸려 나를 비행기에 태우셨다. 그렇게 도착한 뉴질랜드에서 나는 공립학교에 입학했고 처음 겪는 홈스테이를 통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영어는 서툴렀고 세상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뒤돌아보면 그 무모한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방학 동안 한국에 다녀와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창밖으로 펼쳐진 초록빛 초원을 바라보며 가슴이 뛰었다. 그 시절의 나는 '하이, 바이, 쏘리, 땡큐'밖에 모르는 아이였지만 한국인 친구들보다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려 애썼다.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를 더 넓은 세계로 던져 넣고자 한 그 마음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꽤 대견하다.


뉴질랜드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였다. 인종차별이 비교적 적었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나는 다름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바닷가 옆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체육 시간에는 실제 바다에서 수영을 배우기도 했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며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 자유로운 풍경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한국에서 경험했던 학교는 그저 작은 우물에 불과했다는 것을.


서양, 동양, 남아공, 혼혈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의 교류는 내 시야를 더욱 넓혀주었다. 서로 다른 억양과 문화는 오히려 나에게 배움의 기회가 되었고, 점심시간에 함께 나누던 각국의 도시락은 내 편식마저 고쳐 주었다. 작은 일상 속에서 나는 차츰 씩씩한 어른으로 자라 가고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수업 방식이었다. 아침 9시에 등교해 내가 직접 선택한 다섯 과목만 듣고 오후 3시에 하교하는 시스템. 마치 대학교 같지 않은가. 음악과 미술을 좋아했던 나는 자연스레 미술 과목을 집중적으로 선택했고 마지막 학년에는 다섯 과목 모두가 미술 수업일 정도였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뉴질랜드에 온 것은 내 인생의 신의 한 수였다고.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을 때, 나는 더 많은 기회의 장이 펼쳐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낯선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토록 행복했던 나의 유학생활에도 빚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는지는 다음 화에서 들려드리려 한다. 오늘은 그저, 어린 시절의 가장 빛나던 기억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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