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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석 소장 Jan 14. 2019

평생 끝날 것 같지 않은 인형 놀이 탈출법

인형 놀이는 아빠의 몫이 아니다

여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을 중시하고 정서적인 반응에 민감하다는 특성을 가졌다. 이런 여성의 특성은 딸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부분 딸은 아들처럼 밖으로 멀리 나가 뛰어놀기보다 집 안에서 온갖 인형 및 잡동사니를 한껏 늘어놓고 역할 놀이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역할 놀이는 사람 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딸이 그런 본능을 충족하는 행위다. 여성의 뇌에 프로그램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의식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딸의 취향을 바꾸고자 일부러 인형 대신 변신 로봇을 안겨준다 하더라도, 결국 딸은 그 변신 로봇을 담요로 감싸 안고 엄마 흉내를 내며 자장가를 불러줄 게 뻔한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딸이 혼자 놀지 않고 아빠와 함께 놀자고 할 때다. 아빠는 기본적으로 남자의 성향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놀 때는 서로 성향이 일치하기 때문에 밖에 나가 축구나 야구를 하거나 탁 트인 공원으로 나가 뛰어노는 것으로도 놀이가 된다. 반면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은 다르다. 가만히 한자리에 앉아 함께 인형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인형들을 가지고 ‘역할 놀이’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빠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남자의 특성상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엔 딸과 웃으며 병원 놀이를 시작하지만, 아빠의 뇌는 이런 명령을 곧 내리게 된다.     


‘나는 의사 선생님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이 될 수도 없으며, 억지로 의사 선생님인 척도 하지 않겠다!’     

그렇게 5분을 넘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금새 뭔가 좀이 쑤시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아빠는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변칙 플레이를 시작한다.     

“나는 대마왕이다! 피융! 피융! 나의 공격을 받아라! 우워오!”

“아니야, 아빠! 의사 선생님이야! 대마왕 아니란 말이야!”

“으하하! 의사 선생님인 줄 알았겠지만, 사실은 대마왕이었다!”

“아니야! 대마왕 아니야! 으아앙!”     


그렇게 결국 딸을 울리고 마는 아빠.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도발은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는 엄마의 속은 더 불편해진다. 아빠가 ‘아이와 함께 노는 것’ 자체를 귀찮아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빠의 부성애를 의심받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물론 그렇게 하면 딸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아빠도 알고 있다. 하지만 ‘놀아준다’라는 식의, 마치 봉사 활동 같은 억지스러운 노력이 아닌 ‘함께 논다’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놀이 자체가 아빠에게도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는 인간의 본능과 가깝다. 아무리 아빠라 하더라도 본능을 억지로 꾸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딸의 놀이를 함께하면서 아빠도 동시에 즐거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만일 ‘아빠라면 딸이 즐거워하는 모습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자식이 밥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면, 정말 계속 굶고 있어도 괜찮을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딸의 눈물을 보니 잘못된 건 알겠지만, 아빠는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찌 설명해야 할지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입을 닫고 만다. 결국 딸과 노는 것은 엄마의 몫으로 돌아가고 아빠는 자신이 점수를 올릴 수 있는 다른 룰을 가진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말해봐야 뭐하나. 그냥 게임이나 하자’     


사실,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딸에게 인형 놀이나 역할 놀이는 매우 교육적인 효과를 가진 놀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빠와는 맞지 않으니 억지로 하면서 애를 울리기보단 엄마에게 부탁하고 아이에게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다.     


아빤 수아랑 함께 노는 게 너무 즐거운데,
인형 놀이는 아빠한테 너무 재미가 없어.
우리 대신 다른 놀이를 함께 해 보는 건 어떨까?  


친절한 아빠는 집에서 딸과 아기자기한 소꿉놀이도 거뜬히 소화해낼 수 있다. 하지만 남자의 특성상 모두가 그런 아빠가 되기는 힘들거니와 꼭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왜냐면 아빠는 아빠 나름의 장점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친절한 아빠는 딸의 성향에 맞추어 딸이 좋아하는 놀이를 함께 하지만, 현명한 아빠는 딸이 가지지 못한 성향을 파악해 딸의 부족한 경험을 채워줄 수 있는 새로운 놀이로 아이를 초대한다.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당신의 놀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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