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곧 성장의 기회가 된다
6살 딸아이가 있습니다.
평소 집에서는 주도적으로 놀이하는데 유치원에서는 기가 센 한 친구가
아이에게 자기가 하기 싫은 나쁜 역할을 시킨다고 합니다.
제 딸아이는 한두 번 거절하지만, 결국 하게 된다고 합니다.
때로는 울면서까지 그 역을 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그냥 안 하면 되지, 왜 하느냐?
그 친구는 네가 그걸 계속해주니 너에게 계속 강요하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딸아이가,
'나도 알고 있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안돼…….
그러다 그 친구가 나랑 안 놀아주면 어떡해?
그러다 나 외톨이 될 수도 있어'라고 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6살짜리 딸아이에게
친구 관계에 대해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귀한 딸아이가 밖에 나가 이런 대접을 받고 혹여 외톨이가 될까 봐 스스로 걱정하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아빠의 심정은 어떨까? 당장에라도 유치원에 달려가 아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선생님에게 중재를 요청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도 먼저 그 괘씸한 녀석을 찾아가 혼쭐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빠이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선생님의 중재만으로는 그 효과가 일시적인 것에 그칠 수 있다. 아무리 선생님이 아이들을 정성을 다해 돌본다고 하더라도 부모보다 더 깊은 사랑을 가질 수 없고, 아이에 관해 더 잘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거울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느끼는 것보다 어른들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본다. 지나가는 말투로 아무리 잔소리를 해봐야 어차피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의 친구에게 부정적인 모습을 보일 경우, 자칫 친구 사이가 더 벌어지는 역효과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아이들 또한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상황과 나름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이즈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뿐, 역시 사람 사는 건 마찬가지다. 아직 그런 갈등 상황을 혼자서 극복해 나가기는 무리일 수 있으니 아빠가 나서야 할 때 나서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빠가 전적으로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는 것보다 아이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친구의 기가 세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 아이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원래 성향 자체가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굳이 그런 친구 말고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 될 일이 아닐까? 아빠로서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예상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울화통 터지는 아빠보다 더 속상한 사람은 바로 아이 자신이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그런 상황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아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맘대로의 '예상'이 아닌 아이의 진심을 들을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먼저 아빠가 궁금해할 수 있을 만한 질문을 생각해 보자면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1. 우리 아이가 그 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2. 그 친구가 우리 아이에게만 그렇게 하는지, 아니면 다른 친구들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지?
3.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4. 그 친구가 싫어한다는 역할은 어떤 역할인지?
5. 우리 아이가 그 역할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아이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이와 긴밀한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통은 언제나 경청에서 시작하게 된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걱정하는 것보다, 먼저 '우리 아이가 어떤 마음일까?'를 궁금해하고 아이에게 질문하자. 항상 귀담아듣는 것이 먼저가 돼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아이의 속상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주고 우선 다독여 주자. '세상이 모두 너를 힘들게 하더라도 아빠는 죽을 때까지 네 편이다'라는 사실을 아이가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 주자.
지금 아이의 시선은 놀이 그 자체가 아닌 친구에게 가 있는 듯 보인다. 아이가 속상해하는 것이 자신이 진정 목표로 하는 것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아이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역할 놀이에서의 역할이라는 것은 넓게 생각해 보았을 때 직업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인식을 하게 하는 것은 인성적인 부분과 자존감 확보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라는 것을 알게 해 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럼, 다음으로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만한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자.
1. 나쁘다고 생각했던 그 역할에 관해 좋은 점을 생각해 보자!
2. 놀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를 위해서 하는 걸까, 즐겁기 위해서 하는 걸까?
3. 즐겁지 못하다면 네가 즐거워질 수 있을 만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
4. 한 친구가 어떤 놀이를 무척 재미있게 하고 있었을 때같이 해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5.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한 놀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기까지 진행이 되었음에도 아이가 여전히 문제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 친구와의 관계에 관해 고민하는 것이 느껴진다면 유치원을 직접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아이를 맡은 선생님을 만나 아이로부터 전해 들은 상황과 그에 관해 함께 이야기 나눈 것들에 대해 모두 말해보자.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아이에게 관심을 두는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선생님들도 아이에게 좀 더 관심을 쏟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문제의 그 친구를 직접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혼내거나 타이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구와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누구 아빠라고 소개를 해 주자. 그러면 친구는 우리 아이를 볼 때 자연스럽게 아빠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게 될 수 있다. 강압적이거나 부정적인 모습이 아닌 밝고 따뜻한 모습으로 말이다. 효과가 확실히 나타날 때까지 이것을 몇 번 반복해 주면 좋다.
아빠가, 혹은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엄마도 역시 마찬가지로 유치원에 직접 가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럴 땐 아이를 등 하원 시켜주시는 분과 이심전심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께 직접 전화라도 하는 등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물론 이런 방법들이 확실한 해결책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아이들의 상황이 어른들의 눈에 비치는 것처럼 항상 단순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켜줄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는 아빠라는 것을 기억하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자존감을 채워주는 일이다. 상황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아빠의 진심과 사랑은 온전히 아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아빠가 마음을 다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는 정서적으로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