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우석 소장 Jan 13. 2019

어른스러운 딸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

아이의 어린 시절은 평생을 좌우한다

아직 애라서 그런지, 아이가 항상 엄마만 찾습니다.   

  

어느 날, 놀자! 아빠육아연구소를 찾은 한 내담자와 상담을 하던 중 그의 휴대전화에 담겨 있던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된 적이 있었다. 동영상 속에는 내담자와 짧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내담자의 아이가 있었다. 5살짜리 여자아이. 아직 아이가 어리광을 부릴 법한 나이었음에도 그 눈빛은 마치 초등학생을 보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의 대화 속 분위기는 무척 건조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아빠를 좀 어려워하는 편인가요?”

“네, 제가 좀 무뚝뚝한 성격이라서요”

“평소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는 상황인가요?”

“일이 좀 바빠서……. 아직 아이도 어리니 좀 더 크면 그때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어린 시절은 평생을 좌우한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은 아이가 어리니까’라는 생각으로 아빠가 반드시 함께해야만 하는 육아의 시점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다. 기껏 시간을 내서 여기저기 다녀봐야 결국 나중에 기억이나 하겠냐는 생각을 하는 아빠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아버님이 지금 기억하고 계신 생애 최초의 기억이 언제 적 일인가요?”

“음…… 세 살 때인 것 같습니다.” 

“그때의 일이 생생히 기억나시나요?” 

“네, 상당히 또렷이 기억납니다.” 

“혹시 그 기억이 이제까지의 아버님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나요?”

“네, 물론이죠.”

“그 기억이, 앞으로 더 나이를 먹게 될수록 점차 흐려지게 될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결국 아버님에게 평생 영향을 주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는 몇 살인가요?”

 

물론 그 어렸을 때의 기억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단편적인 조각들처럼 남아있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기억이 너무나 또렷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상당한 영향을 끼          

친다는 사실이다. 만약 우리 아이가 지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단 한순간이라도 아이와의 시간을 갖는 것에 여유를 부릴 수 있을 것인가?     


아이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어른스러움을 보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란 경우, 눈치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너무 과하게 칭찬을 받아 그것에 부응하고자 어른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경우 또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원인은 바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의 부족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는 어리고 엄마가 함께 있으니 아직은 아빠가 나서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아빠의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아빠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남의 아이 대하듯 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며 원망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빠가 스스로 자신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게 되는 것은 결코 자신이 혼자 만들어 낸 착각의 결과가 아니다. 아빠 스스로 어린 시절에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그 정도만 돼도 충분하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그대로 아이에게 물려주게 된다.     


아이의 마음에 빈 곳을 허락하지 마라     


‘부모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은 아이가 행복하다’라는 말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이 말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다. 바로 ‘충분한’이라는 단어의 해석이 개인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하다는 것은 과연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혹시 ‘가득하진 않은’이라는 뜻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진공 상태를 싫어한다’라고 말했다. 비어 있는 만큼의 공간을 자꾸만 채워 넣으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결핍이 생기면 그것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는 본능이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아이의 경우엔 어떨까?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충분하지 못하면 아이 마음속에 빈 곳이 생긴다. 마음의 결핍이다. 처음엔 그 결핍의 크기만큼 부모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크게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답게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징징대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아이에게 남은 방법은 단 하나다. 자신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점차 지워나가며 어른스러워지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달콤한 열매를 맺길 바란다. 하지만 그 달콤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선 뿌리가 튼튼하게 내려져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은 험한 세상을 본격적으로 살아나가기 전, 세상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기간이다. 땅속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린 나무는 폭풍우가 치더라도 굳게 버텨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게 된다. 그렇게 어린 시절은 평생을 버텨낼 수 있게 하는 기초 체력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된다. 이 기간을 길게 가지면 가질수록 아이는 더욱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빠와 함께 하는 바로 지금의 순간이 아이의 기억 속에서 평생 남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자. 그것이 아이에게는 충격적인 기억이 될지, 혹은 평생을 걸쳐 힘이 될 수 있는 따뜻한 추억이 될지는 지금 우리 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아이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 남겨주고 싶은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딸과 세상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아빠 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