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민주에게
민주 씨
이렇게 몇 자 적으면서 이 신비롭고 놀라운 만남을 기록해볼까 합니다. 아무래도 기억은 쉬이 휘발되니까요. 편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 이리 씁니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민주 씨를 바래다드리고 오는 길에 남았던 문장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문장인데요, 왜 이 문장이 남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알겠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이야기 한 철학자 김상봉은 만남을 존재의 진리라 표현했습니다. ‘나는 너를 통해 비로소 내가 된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지요. 이게 무얼까. 오늘에 와 감을 잡았습니다. 오늘의 만남을 통해 제가 누군지 조금 더 감을 잡았달까요. 확신에 들어차 있는 저를 보았달까요.
지금 제가 하는 고민들과 생각들이 맞구나 하는, 이 길 잘 걸어가고 있누나 하는 확신입니다. 내가 생태학을 공부하는 것이 맞는가. 한국철학을 고민하는 게 맞는가. 사회과학을 연마하는 게 맞는가. 이 뻣뻣한 몸으로 요가를 하는 게 맞는가. 균형과 조화를 입에 올리는 게 맞는가. 완고한 확신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스스로의 길에 대한 긍정으로서의 확신은 소중하다고 봅니다. 덕분에 소중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살아감, 즉 존재의 지속은 만남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어진다는 생각이 충만하게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그 만남들이 소중한 만큼 우리는 관계 속에서 구성되고, 연결되어 있음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확신 또한 잇따릅니다. 생태를 공부한다는 것이 내가 세상에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라면, 세상이 인간계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에 대한 깨우침이라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누군가의 은혜를 입은 ‘빚져있는’ 존재가 틀림없다면,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되고, 우리는 ‘만남’을 통해 우리가 됩니다.
어제 김종철 선생님의 강연에서 제가 했던 질문은 마지막이라 촉박하기도 했고, 맥락도 잘려서 분명하게 전달되지도 못했지요. 돌아오는 전철에서, 그 점이 슬퍼서 조금 침울했습니다. 망한 질문이었네 싶어서요. 하지만 세상일은 알 수 없는가 봅니다. 민주 씨가 그 망한 질문을 통해 초면의 저에게 쪽지를 건넨 것은 보면 말이지요. 제 말과 목소리, 표정, 고민 어딘가에 ‘아, 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아야겠다!’ 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겠죠. 이에 참 벅찹니다. 제가 그래도 이 길 잘 걷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우연과 불확실성 가운데서 살아가고, 그것이 세상의 원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논리와 합리로만 가득 차 있는 근대가 부자연스러운 까닭입니다. 아래는 저의 애정하는 친구 하나가 저에게 선물해 준 정혜윤의 문장들 중 하나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하고 세계는 왜 이렇게 강할까? 나는 왜 온갖 한계에 둘러싸여 있고 세계는 왜 이렇게 넓을까?’ 궁금할 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이 모래알들을 바라보며 너를 생각하던 순간을 기억해야만 하겠어. 불확실한 것들, 낯선 것들이 우리를 존재하게 했어.’
- 정혜윤, <여행, 혹은 여행처럼>, ‘나의 여행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중, 31p
불확실한 것들이 우리를 존재하게 했어. 라는 문장에 눈길이 오래 머뭅니다. 우리가 오래 이야기했던 근대에 대한 비판들이 이 문장에서 출발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서울에서의 삶. 그리고 근대의 벅차고 부자연스럽고 버거운 논리들 앞에서 괴로워하는 민주 씨에게서 저를 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아르네 네스의 ‘동일시’가 이런 이야기인가 봅니다. 생태를 공부하고 전체를 생각하고 시름한다는 것은 필경 괴로운 일이지요. 그리고 이 괴로움에 우리가 함께 걸어나가야 하는 까닭이 있지요.
민주씨의 시를 읽으면서.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니! 하고 놀랐어요. ‘별들은 제자리에 앉아 가장 낮은 봉우리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되풀이한다’,
이상하게 사무치는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근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이 세계의 익숙함과 관성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궤도를 떠나서 새로운 궤도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더니스트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새로운 68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민주씨에게서 희망을 엿봅니다.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보는군요.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이성으로는 비관하지만 의지와 마음으로는 무한한 사랑과 희망을 품는 생명력 말이지요.
아무리 톺아봐도 무척 뜻깊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저의 이 몇 자도 그대를 그대로 만드는 하나의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부끄럼이 많고 낯을 가리지만 오늘은 좀 이상했네요.
참. 저는 브런치에서 노마라는 필명을 씁니다. 요가 잘하시지요, 다음 만남을 고대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먼저 용기 내어주어 감사합니다 :)
2019.7.18.
윤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