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노마어워드
그대에게도 치열하면서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가슴벅차게 행복한 날이 종종 있기를, 덧붙이자면 여유와 통찰력을 갖추기를
올 해가 몇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 정확하게 여덟 시간과 그리고 구 분이 남았다. 남은 몇 시간을 가장 의미있게 보낼 방법을 찾다가 결국 다시 자판에 손을 올렸다.
글을 쓰려고 애썼다. 상반기에는 토지공개념과 한국 남성에 대해서 서른 페이지의 레포트를 썼다. 한 달간 나를 갈아 넣었다. 학부생 주제에 그것도 이학년 주제에 왜 그리 정성 들여 레포트를 썼을까. 부조리한 세상 앞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하반기에는 휴학을 하고 브런치를 시작하며 서른 개의 글을 써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역시 ‘3호선에서 있었던 일’. 세상에 대한 마음가짐이 이 글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쓴 글이 세상에 작게나마 반향을 일으켜낸 것에 뿌듯했다.
친구 명주는 나에게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는 건 재능이라고, 너는 꼭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내 존재가 남긴 잔흔이 벗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벅찼다.
어느 작가는 상상력으로부터 내 몸을 지키기 위해, 내 몸으로부터 내 상상력을 지키기 위해 매일 일기를 썼단다.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지만, 글을 쓰는 것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말에는 한가득 공감을 표하고 싶다. 올해 나의 글쓰기가 그랬다. 슬픔 불안 우울이 유독 곁에 머무른 시간이 잦은 해였고, 이들이 나를 잠식하려 들 때마다 글을 썼다. 나를 지키려 글을 썼다.
이번 해를 시작할 때 나의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대에게도 치열하면서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가슴 벅차게 행복한 날이 종종 있기를.. 덧붙이자면 여유와 통찰력을 갖추기를" 문장이 지닌 힘이란 게 있는지 망각의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고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았다. 마지막 날의 아릿함으로 한 번 더 문장을 곱씹어본다. 나 잘 산 것 같다. 나름 치열했고. 따뜻하려고 노력했고. 또 “넌 참 따뜻한 사람이야”, “너의 글이 참 따뜻했어”라는 감사한 말들을 들었고. 가슴 벅찬 행복의 순간이 분명 있었고. 지금 이 순간도 괜스레 그렇고. 매사에 들어간 힘이 빠져서 여유로워졌고. 다만 통찰력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아직 세상에 대해서는 “알겠다”는 말보다 “모르겠다”는 말이 수백 배는 잦으니까.
쇼코의 미소를 읽으면서 여러 번 복잡한 감정과 마주했다. 눈물이 왈칵 흘러내릴까 봐 잠시 숨을 멈추며 호흡을 안정시켰다. 최은영 작가는 인간의 감정 속 심연을 미치도록 잘 다룬다. 상황의 서사라기보다 감정의 서사라 말할 수 있을지도. 이 책을 아끼는 세명의 친구에게 선물했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 이슬아 작가는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라고 소개한다. 단련된 글쓰기에 흡입되어 순식간에 읽었다. 이슬 아씨는 서울을 아름답게 살아간다. 그녀의 삶 전반에 드리운 어둠과 힘겨움 그 모든 것들이 슬아 씨의 손끝에서 삶으로 피어나기에 '아름답다'는 동사를 쓸 수 있는 것 같다.
상반기에는 토지공개념을 공부했다. 집값이 비싸 생겨나는 일들이 마음 아파하던 와중 이 영화를 봤다. 사회의 부조리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주인공 미소가 눈물겹게 멋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그랬다.
친구의 인생 곡인데 어쩌다 추천받아 듣고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담담히 읊조리는 가사가 잔잔한 자국을 남겼다. '매일 몇 번씩 무너져 내리는 세상 따위가 내 알 바 아니지' 이 가사가 특히 남았다. 백석 시인의 시구 중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가 연상된 건 왜일까. 세상에 대한 짙은 환멸과 비관은 어쩌면 세상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기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노미네이트 후보에는 사비나앤드론즈 <Stay>,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김윤아 <강>, <Going home> 9와 숫자들 <문학소년>, 산울림 <회상>, Eddie Higgins Trio - <Autumn Leaves>가 있었다.
김윤아를 좋아하게 된 앨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첫 트랙 '-'은 44초간 침묵을 지킨다. 음악가로서의 애도일까. 김윤아는 비긴어게인2 참가 사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노래도 할 수 없었다고. 이제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부르고 싶다고. 음악에 대한 그의 태도가 좋아서 팬이 되었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썼다.
뒤늦게 이랑 씨가 한국대중음악상 트로피를 경매하는 영상을 보았다. 어찌나 멋있던지. 이랑 씨의 노랫말들에 두 번이나 울었다. <잘 듣고 있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모두 그랬다.
오래간 프로필 사진을 바꾸지 않았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걸어놓고 이년을 흘려보냈다. 이제는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 나를 놓고 싶다. 이르쿠츠크에서 썸머가 찍은 사진이다. 자세에서 느껴지는 힘과 강단이 마음에 든다. 여행을 하는 저 때의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비에서 나는 방랑 화가처럼 그림을 그렸다. 지나가던 누가 그 모습을 찍어주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몇 개월 후에 메일로 사진을 받았고 고비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진이 되었다.
좌혜선 작가를 알게 된 해였다. 우연히 알게 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던. 독특한 경험을 했다. 이 그림에 특히 매료되었는데, 어두운 서울에서 따스하게 아이를 안아주고 있는 모습이 눈물겹게 따스해서 그랬다. 이제는 그림 가운데의 붉은 온기를 넓혀가는 것이 나의 숙명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인다.
늦었지만. 그래도 해갈이를 하고 싶어서. 아파서 앓다가 올리는 걸 잊어버렸다.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