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희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도플갱어가 있지 않은 이상 유일무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래도 상희는 유일무이하다고 말하고 싶다. 유일무이해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법, 사람들은 너도나도 개성을 좇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남들과는 달라지기 위해, 톡톡 튀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취향을 만들고 옷장을 채운다. 하지만 상희는 좀 다르다. 무언가 날때부터 개성옵션이 장착된 것 같다.
난 종종 엄마와 기질론을 놓고 맞느니 틀리느니 하며 논쟁하곤 한다. 심리학 전공 + 육구 년생 사주 아마추어인 엄마는 ‘기질’이 인간의 성격을 만들어내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 주장하고, 사회과학 전공 + 자칭 실존주의자인 나는 그런 게 어디 있냐며 기질 같은 건 사회의 분류법이고 인간은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형성해가는. 어쩌고저쩌고 열변을 토한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말해놓고도 상희를 볼 때면 ‘저건 기질인가..?’싶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 상희에겐 타고난 뭔가가 있다. 표현키가 힘들지만 어떤 특별함?인 것 같다.
상희는 대학에 와서 만났다. ‘경제학개론’ 수업에서 같은 조로 만나면서 친해졌다. 다섯 명이 모여 조 이름을 짓다가 ‘따자하오’로 정했다. ‘따뜻한 자본주의를 하오’라는 뜻으로 상희 감성의 향기가 나므로 아마 그녀의 아이디어였을 테다. 조 이름처럼, 우리는 맨큐의 교과서는 대충 넘기고는 따뜻한 차와 따뜻한 이야기가 따뜻한 세상을 만든다는 핑계로 잘 놀고 공부했다. 그때 생각만 하면 괜스레 웃음이 난다.
도무지 잊히지 않는 일화가 있다. 아직도 상희를 떠올리면 이 일화부터 연상된다. 마지막 국부론 모임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영국의 중상주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데 비판의 요지가 이상하다. 제3세계를 착취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국 경제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기 때문에, 자유시장에서 거래되어야 했을 자본이 국가정책의 '독점적 사용'으로 식민지로 넘어가기 때문에, 식민지를 얻기 위한 전쟁에 경비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식민지 정책에 반대한다.
상희는 화가 났다. 상희는 서구의 제국주의 침략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다. 영국을 필두로 서구 열강이 얼마나 잔악한 역사를 만들어왔는지 생생히 공부한 그녀는 도저히 스미스를 그냥 둘 수 없었다. 상희는 스미스의 한계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식민지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가 고작 이따위라니. 그들은 자신들이 저질러온 과오를 알긴 할까."
그러다가 상희의 손짓에 책상 위의 텀블러가 넘어졌고 물이 흘러나와 책상은 금세 흥건해졌다. 우리는 당황했다. 하지만 상희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 토시 하나 변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국 독점이니 효율성이니를 내뱉으면서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있는 거잖아. 이론상으론 전지전능한 시장에 의해 식민지와 지배국은 모두 상호 이득을 보고 있다구. 하지만 현실은, 현실은 다르잖아."
진지한 이야기라 진지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우리는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열변을 토하는 상희의 한 손은 치맛자락을 잡고 흘린 물을 닦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물을 훔치고 있고 - 그것도 본인의 치마로! - 다른 한 손으로는 웅변가가 으레 그러듯 동작이 큰 손짓을 하면서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화를 내고 있다니. 아직도 상희 치마의 무늬 - 모직에 약간 붉은 체크무늬 - 가 잊히지 않는다.
상희는 이런 사람이다. 공부와 삶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 나에게 상희는 학문의 동반자라 할 수 있다. 왠지 얘는 다른 친구들 다 휴학하고 졸업하고 여행 가고 사라져도 도서관에 앉아 손을 흔들어 줄 것만 같다. 불길한 소리를 하자면 한 오 년 뒤에도 그럴 것 같다. (미안) 나-아름 학문에 정진하려 애쓰는 나라서, 상희는 참 소중한 친구다. 상희마저 학교에 없다면 공부할 맛은 뚝뚝 떨어지고 말 테다. 요즘은 무슨 책을 읽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도란도란 이야기하고픈 친구다.
상희는 우리 중에 가장 언니지만, 그리고 내 친구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지만, 자주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가끔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얘들아 사실 상희가 젤 언니야~'하고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들 잠깐의 동공 지진 후 '아 그랬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워낙 편한 이미지인 데다가 약간의 허당끼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어째서 상희에게서는 그 터울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한국 사회에서 '나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변수인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의아할 따름이다. 가끔 동생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말하면 하극상..? 이려나..?
상희는 순수한 사람이다. 뭐 혹시 모른다. 방 한편에 홀로 있을 때는 어떤 상상을 하고, 오랜 친구를 만나면 어떤 걸쭉한 말이 튀어나올지. 순수함의 증거로는 '시'를 제시해야겠다. 나는 못돼먹은 탓인지 시를 잘 못 읽는다. 시가 가지는 맑고 순한 정서에 쉽게 동화되지 못한다. 하지만 상희는 참 시를 잘 읽는다. 어느날 상희가 윤동주의 시를 읽어주었는데 그 표정이 이 너무 순진순박해 나는 그 시구를 외워버렸다. '이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리도 욕될까.' 신기한 일이다.
얼마 전에는 이런 상희와 아주 오오랜만에 만났다. 재미난 일이 있었다.
상희와 나는 같은 방향의 버스를 탔다. 추억이 생각났다. 도서관에서 함께 과제나 책 읽기를 하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면 함께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기억과 추억의 차이는 약간의 감칠맛 차이인 것 같다. 상희와는 밥 먹을 때부터 이것저것 떠들었건만 반의 반도 못 나눈 것 같다. 우리는 할 말이 넘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상희를 학문적 동반자로 여기는 것 같다. 아무래도 상희가 보여주는 학구열 탓인 것 같다. 아직도 이 친구를 떠올리면 커피를 쏟았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열토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치마로 커피를 닦으면서 말이다.
잠깐의 추억팔이도 잠시 버스는 오류동주민센터 정류장에 멈춰 섰다. 상희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아쉬움을 강제로 멈춰 세운 채 상희를 보냈다.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지만 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곧 우울함이 나에게 닥쳐오리라는 걸 알았다. 외로움 다음에 찾아오는 수순은 우울함이니. 버스는 덜커덩 덜커덩 한 번 뒤돌아보지 않은 채 제 갈 길 잘도 갔다.
“띠리링”
전화가 왔다. 상희에게 왔다.
“윤석아, 어디 즈음 갔어? 이렇게 보내면 미안할 것 같아. 멀리서 왔는데. 내가 갈 테니까 신도림서 있어. 우리 만나서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
신도림에서 내렸다.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이곳에서, 제갈길 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나 보러 와준다는 친구를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미소와 함께.
- 11.23 일기 <외로움과 벅참 사이> 중
이날 상희는, 맥주 한 잔에 불콰해진 내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하고 푸념을 늘여놓자 '잠깐만'하고는 뒤적뒤적 감추어둔 글 한 편을 살며시 건넸다. 내 모습이 담겨있는 글이었다. 글이 사람을 닮는다는 걸 알았다. 상희의 글을 계깃점으로 내 주위의 사람들을 기록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상희가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아래에 상희의 글을 싣는다.
조개
0.
나는 제대로 야무진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늘 조금 느리고 모자랐다. 시간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나는 야무진 사람이 되어야만 할 때면 지나치게 긴장을 했다. 어깨를 세우고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거나 끊임없이 쓸데없는 일을 했다. 지나치게 빠르게 해 버려서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거나 걱정스러운 탄식을 남발해서 주변을 괴롭게 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도 야무진 사람이 되고 싶은 부들거림의 일종이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근로장학생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부모님께 적게나마 생활비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일을 저질렀다. 근로장학생 신청서를 내고 면접도 봤다.
민주자료관이라는 곳이었다. 민주주의 운동을 했던 시절의 자료들을 보관하고, 관리하고, 학자가 자료를 요구하면 찾아서 내어주기도 했다. 자료관은 책꽂이가 겹겹이 겹쳐져 있는 형태의 보관함으로 꽉 차 있었다.
1970~80년대의 한겨레 신문과 무슨 노동운동 단체의 회의록과 무슨 사회과학 교수의 메모와 강의자료. 노동운동 포스터, 분신자살 보도, 만화신문, (한문으로 된) 자본론, 맑스주의 세미나 유인물.....
이런 자료를 나도 언젠가 만들겠지, 이건 배움이 있는 일이야. 라고 생각했다가도, 나는 이런 자료를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출판사를 차려서 망해보기도 하고, 신문을 만들어 찍어내기도 하며, 회의록을 몇 박스나 만들어내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 내 나이에도 글을 써서 밥 정도는 거뜬히 먹고 산다던지. 학생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야무진 사람들을 나는 조금 멀리서 감탄하며 바라보곤 했다. 나는 민주자료관에서 일하면서 대학을 다니기에도 벅차서 쓰러질 듯 말 듯하며 걸었다.
1.
윤석이와 만나 저녁을 먹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나는 여성 노동자들의 결혼생활을 연구한다는 학생의 방문을 준비했다. 먼지가 가득하고 창문이 없는 지하실에 내려가서 1960-70년대 <한국산업 노동자의 형성과 생활세계 연구> 녹취자료를 100권쯤 꺼내 2층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김복순, 이명자, 박귀녀, 최명희, 허군자...
나는 곧 온몸이 먼지로 코팅된 것처럼 둔해졌다. 일이 끝나고 곧장 강의를 들으러 뛰어갔다. 스페인 내전, 그 여러 유명 화가(피카소)와 작가(헤밍웨이, 조지 오웰)들이 겪어냈다는 혼란. 교수님의 강의는 재미있을 것이었다. 소리가 내 껍데기만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수업이 끝나고 질문을 하러 교수님을 따라 나갔다. 나는 입을 약간 벌리고 앉아있었다. 친구가 돌아오자 뭘 물어봤냐고 물어봤는데, 대답해주지 않았다.
수업을 제대로 못 들은 것이 서러워서 잠깐 쭈그려 앉아 하수구를 보며 울었다. 벽을 돌면 식당이었다. 식당 앞에 있는 동그란 모양의 벤치에 윤석이가 앉아있었다. 윤석이는 안경을 쓴 말같이 생긴 친구였다. 말처럼 눈이 반짝였다. 하얀 티셔츠 위에 파란색의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바지는 정체불명의 고무줄 바지였다.
그날의 메뉴는 고등어조림이었다. 아침도 점심도 먹을 시간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때우거나 제대로 못 먹었던 참이라 온몸의 세포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식판에서 따듯한 기운이 올라왔다. 마주 보고 앉았다. 윤석이는 반갑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을 하고 또 했다.
2.
윤석이는 두꺼운 책 두 권을 들고 있다가 식탁에 내려놓았다. <진보와 빈곤> 그리고 <화폐와 경제>. 첫 번째 책 표지에는 근엄한 콧수염을 가진 저자의 사진이 박혀있었다. 윤석이는 그 아저씨가 귀엽다고 말했다. 커다란 책을 펼치자 종이들이 두 갈래로 무겁게 떨어졌다. 그가 형광펜으로 줄 쳐놓은 부분을 만져보았다.
“확실히 13학점이 좋긴 좋아. 정말 시간이 있더라니까.”
그가 말했다. 그는 이번 학기에 전공필수 과목마저 철회하고 13학점만 듣고 있었다. 13학점이란 건 네 과목만 듣는다는 뜻이다. 보통 대학생들이 여섯 과목씩 듣는 데 비하면 적은 것이었다. 그가 선택한 네 과목은 대부분 고학년이 듣는 어려운 경제학 수업들이었다.
그는 또 녹색 세미나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도 세미나에서 요구하는 책을 안 읽어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설득당했으며, 결국 생태주의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크게 웃었다.
정말? 정말?
그는 몸을 뒤로 젖히며 말했다. 그렇다니까. 세미나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어. 나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좋아하거든. 정말, 그리고 증명이 안 되는 것이 싫어. 예를 들면 경제학개론에서 나온, 왜 수입을 하면 더 싼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더 많은 농산물을 수입하지 않을까? 농부들도 살아야 하니까? 나는 그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번에 공부해보니까 수입하지 않는 게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더라니까. 무엇이 합리고 효율인지를 재고해 봐야 해.
그는 생태주의가 그에게 보인 증명들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말을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기쁘다는 것이 기뻐서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윤석이의 말의 향연이 그칠 때쯤 나는 이번 학기에 배운 것들에 대해 머릿속에 떠올려보고 있었다. 그에게 해줄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었을까? 선뜻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한없이 처지는 것만 같고 슬퍼졌다. 나는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나는 있잖아, 요즘 별로 배우는 것이 없는 것 같아..”
그는 말처럼 동그랗고 까만 눈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상냥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로부터 다양한 위로의 세례를 받았다. 학교 옆에는 산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산을 잠시 걷기로 했다.
3.
대학에 들어와 윤석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이었다. 이후 몇 번 마주칠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잘 다린 바지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 나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는 윤석이는 방금 농사를 짓다 온 것만 같은 정체불명의 고무줄 바지를 입었는데, 나는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둔한 상태에 있었다.
좁은 길을 나뭇가지들이 천장처럼 덮고 있었다. 한여름의 생그러움이 무척이나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았다. 나뭇잎들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으로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나 다음 학기에 휴학할 생각이야. 윤석이가 말했다. 왜? 나는 윤석이를 돌아보았다. 이번 학기 성적이 완전히 망했다고 그가 말했다. 특히 미시경제학은 F가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기본이 너무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너무 없는 게 많아.
나는 땅을 보다가 철봉을 보다가 말했다. 내가 있잖아. 영화 청년 마르크스라고 알아? 얼마 전에 그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는 마르크스가 딱 서른 살이 되자마자 끝난다? 정말 젊었을 때만 다룬 거야. 그 영화를 보면서 계속 느껴졌던 게 뭐냐면 말야. 마르크스가 계속 초조한 듯이 걸어 다녔던 거야. 그 사람의 이상은 분명 저-기 높은 곳에 있는데 자기 실력이 아직 따라주질 않은 거야. 아직 그 사람은 자본론을 쓰기 전이잖아. 아직 그 완벽하게 과학적인 사상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지 않단 말야. 그래서 있잖아. 대단한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기본이 없다고 느끼곤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산길은 축축했다. 돌들이 박혀있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가 써져있는 커다란 비석들도 박혀 있었다.
4.
20분만 걸으면 정상이랄 것도 없는 정상이 나왔다. 커다란 철봉 하나와 나무 벤치 세 개가 있었다. 벤치 앞으로는 동네 주민분들이 손바닥을 앞뒤로 짝짝 치면서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때쯤 윤석이는 자신이 왜 13학점을 듣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사실은 자신이 신뢰하는 똑똑한 선배가 있었는데, 학기 초에 학교를 그만두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는 곤란한 듯 손을 뒷목에 갖다 대었다. 그래서 나도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수업을 다 내려놓아 버렸어.
게다가 그와 함께 어려운 졸업반 경제학 수업을 듣던 무모한 동기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마저도 휴학해버렸다고 했다. 함께 수업을 듣던 동지 두 명이 떠난 것이다.
떠난다는 건 참... 가끔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는 것 같아. 내가 말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있었고 윤석이는 벤치 뒤에 있는 나뭇잎 덤불들을 바삭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머무르는 입장이고 누군가가 떠나는 입장일 때, 사람 마음을 흔들리게 하잖아. 윤석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멋지게 떠나는 사람이고 싶어 하던 때가 있었어. 내가 좋아하던 시도 봄, 파르티잔,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난다는 소식, 이라는 시야. 하지만 나는 진짜로 떠났을 때 잘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냥 내 일상을 이루던 요소들이 한순간에 없어졌다는 걸 말야.
우리는 체조를 하다가 산에서 내려왔다. 나는 분명 이해하지도 못한 것을 말해버리는 걸 좋아했다. 그건 윤석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비록 서로서로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다가 윤석이가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늦은 공부를 하러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상희에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준다는 건 참 부끄럽고 떨리는 일이야. 특히 그 글이 '누군가'에 대한 글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 부끄럼과 떨림을 떨쳐내고 보여준 글을 받아 들면 참 좋더라. 네가 쓴 글을 여러 번 읽었어. 앞으로도 간혹 읽게 될 것 같아.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지면 말이야. 네 글을 계기로 친구-기록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 미처 하지 못한 말이나 감정 그리고 생각들을 찬찬히 끄적여 보고 있어. 반응이 참 좋더라구. 누군가 나를 이렇게 가깝고 소중하게 느껴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싶어서 그런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