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명주라는 친구가 있다. 대학에 들어와 만났다. 첫 만남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죽이 잘 맞았다. 나는 기숙사 7층에 명주는 6층에 살았다. 우리는 열악한 기숙사 속 열악한 주방에서 함께 밥을 해 먹었다. 일과를 마치고 공용 주방으로 뛰어가 돌솥에 쌀을 안치는 게 유일한 낙이던 시절이었다. 명주와 나는 그렇게 친해졌다.
명주는 한 학기를 마치자마자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이 좋았는지 명주는 그 길로 휴학 버튼을 누르고 학교를 벗어나 지구 저편으로 떠났다. 나는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고서 학교에 남았다. 명주의 빈자리는 컸고, 이따금씩 그리워했다. 함께 준비했던 지구의 날이 한 해를 돌아 다시 찾아올 때, 함께 들었던 도마의 노래가 들려올 때 드문드문 생각이 났다. 명주에게 주려고 도마님 사인도 받아놨는데 부치지 못한 편지마냥 방 한켠에 놓여 먼지만 쌓여간다. 볼 때마다 친구가 생각난다. 저걸 언제 주나.. 그렇게 한 해 반의 시간이 흘렀다.
한때 매일 부대껴 숟가락을 나누었던 우리지만 서로의 길은 갈라져 버렸다. 명주는 작은 한국의 좁은 학교보다 광활한 세상에서 여행하며 배움을 구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 남아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책을 펴는 길을 택했다. 각자의 길을 간다고 편히 생각하면 될 일인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내가 가고싶은 곳만 쏙쏙가는지. 산티아고 순례길, 인도, 네팔.. 나는 명주가 부러웠다. 하지만 부럽다고 인정해버리면 내 삶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 못된 생각을 시작했다. 두 개의 삶을 나누었다. 온 곳을 누비는 배낭여행자로서의 삶과, 한국 사회의 악폐·모순을 공부하는 학자로서의 삶. 나는 부러움과 질투,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명주의 삶을 깎아내렸다. 전자는 세상의 모순을 외면한 채 개인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사람, 후자는 세상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런즉 명주가 사는 삶은 한국을 외면하고 떠나 스스로의 행복만을 즐기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는 내가 배낭을 메지 않고 이곳에 있는 것은 한국사회에서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내는 멋진 일이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그 한 해 반 동안 여행 한 번 가지 않고, 그리 성실하게 읽지도 않은 책만 잔뜩 책상에 쌓아두었다. 쌓인 책의 높이는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중인 거야. 내 불행은 세상을 위해 감수할 수 있는 거야. 명주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돼. 나는 내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명주의 삶을 깎아내렸다.
그러다가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드넓은 바이칼과 광활한 초원 앞에 서자 그간의 내가 얼마나 좁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온갖 감정으로 얼룩덜룩해진 낡은 관념을 끄집어내고 나니 그제야 비로소 명주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여행을 안 오고 싶었다. 무언가 모순 가득한 한국의 현실을 그냥 둔 채 떠나가고 싶지 않았다. 여행이 사치처럼 느껴졌달까. 미약하나마 죄책감을 안고 떠나온 나였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 그 말의 무게에 잔뜩 짓눌려 있었다. 모순 가득한 세상을 바꾸는 나의 모습, 그리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며 여행을 떠나는 나의 모습은 공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좁은 생각이었다. 개인과 사회를 나누는 벽을 부셔야 한다. 세상이 너무 커서 두렵다면, 내가 그만큼 커져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 넓어 버겁다면 내가 그만큼 넓어져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마음이 한결 넓어진 기분이 들었다. 지금 하는 이 여행이 나를 더욱 키운다면, 그것은 세상을 외면하는 일일 수 없다.'
- 7월의 여행에서, 알혼 섬을 나오며
그러고는 오랜만의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못난 마음을 고해하고 벅찬 마음을 전했다. 문득 떠오르는 사월님 노래의 한 구절. ‘내 못난 마음 꿈에서는 다 용서해주세요.’
명주의 인스타를 볼 때마다 우리의 관계가 시간의 침식에 깎였다는 생각을 했다. 저 먼 곳 어디선가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웃는 명주의 삶에 나의 자리는 없어 보였다. 애처럼 하는 질투는 아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이제는 한때 죽을 만큼 부대꼈던 사이라 할지라도 흐르는 시간과 바쁘다는 미명 아래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안다 해도 감출 수 없는 아쉬움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그리움이 있다.
명주가 한국에 올 때면 학교에 찾아왔던 걸 안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타다가 명주를 봤던 적이 있다. 명주는 날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따금씩 명주가 왔다는 사실을 친구들의 입을 통해 들을 때 복잡한 마음이 일었다. 먼 곳에 있을 때는 먼 곳에 있으니까 하고 그리워하면 되지만 가까이 있는데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보내다니. 나는 내가 가졌던 못난 마음 때문인지 서운하면서도 말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난주에 친구 공연을 보러 갔다가 스치듯 명주를 봤다. 인사하고 싶었지만 명주인지 분명치 않았고 공연 중간이라 인사를 못했다. 그러나 봤다 하더라도 인사할 수 있었을까. 나약한 자존감에 힘입어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는 친구가 맞는 걸까?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이미 낡아버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는데도? 앞으로 함께 할 날이 있긴 할까? 흐릿한 기억을 안고 인스타에서만 간간이 소식을 접하는 우리가?
복잡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얼룩덜룩 해질 즈음 명주에게 문자가 왔다.
어제 윤석이 글 보고 힘을 얻었어! 글 쓰고 있었는지 몰랐는데 대단해... 시간 날 때 차근차근 읽어보고 싶어.! 오늘은 꿈에 너가 나왔다? ㅋㅋ 신기해 어쨌든 윤석아 하고픈 말은..! 나도 요즘 많이 지치고 힘들었는데 너 덕에 힘이 났어! 너는 존재만으로 힘이 나게 해주는 사람이야. 고마워. 보고 싶어. 다시 만날 때까지 몸과 맘 건강히 잘 지내자야!
벅찼다.
잠시 치솟는 감정을 내려놓고 폰을 꺼내 셀카를 찍었다. 지금의 나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참 오랜만에 활짝 웃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우린 멀리 떨어져 각자의 긴 시간을 보냈지만 친구, 맞구나. 내가 있음으로써 너에게 힘이 될 수 있구나. 너의 힘듦에 내가 조금이나마 위안을 건넸구나.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복학을 굳혔다. 우리는 한때 같은 길을 걷다가 갈림길을 만나 다음을 기약했었다. 지금이 그때 기약했던 '다음'인 것 같다. 갈렸던 길은 다시 모아져 우리의 만남을 예고하고 있다. 괜스레 설렌다. 내년은 어떤 행복한 일들이 우리 앞에 나타날까. 현실은 행복한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치고 힘들더라도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소박한 꿈은 아직 변치 않았다. 주방에 밥물 올려놓고 친구들을 불러 따뜻한 밥 한 끼 노나 먹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명주에게. 내가 꿈에 나왔다니 궁금하네. 내 못난 마음 꿈에서는 다 용서해주길. 쓰면서 너가 강아솔님의 노랫말로 쓴 글이 떠올랐어. 나는 그 글을 읽고 따스해서 너무 좋다고 호평했는데, 교수님의 점수는 따뜻하진 않았지. 노래 하나를 추천하고 싶어. '4년전 5월 그때의 우리', 그 때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었으면 좋겠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