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

잃어버린 온기를 불어넣는 따뜻한 밥 한 끼

by 노마 장윤석

1.


요근래 의식주의 중요성을 깨달아가고 있다. 입고, 먹고, 자고, 이보다 일상적인 게 어디 있을까. ‘일상’이라는 낱말이 주는 평범함의 향기에 우리는 쉽게 그 소중함을 잊는다. 후각세포가 쉽게 둔감해지는 것과 분명 관계가 있을 터, 평범함의 향기는 평소에는 맡을 수 없다. 그 향기가 느껴질 때는, 입고, 먹고, 자는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났기에 그렇다.

2.


지난 한 달간 ‘토지공개념’을 주제로 레포트를 썼다. 서문에 집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한껏 담은 갖가지 통계들을 인용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나라의 총 국부 중 87.1%는 부동산 자산이다. 이 나라의 땅을 전부 팔면 캐나다를 두어 번 살 수 있으며, 호주와 독일도 살 수 있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중간급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연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7년을 모아야 한다. 이 나라의 10년간 소득은 1088만원 올랐는데 집값은 1억 8500만원이 올랐다. 이 나라의 자산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953으로 완전 불평등 수치인 1에 수렴한다.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숫자다. 이 나라의 상위 1%는 하위 10%에 비해 646배나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 나라의 열 명 중 네 명은 단 한 줌의 땅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나도 없다.

왕복 네 시간의 통학길, 나는 영등포를 지나치며 평범한 일상이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조그만 포장마차 하나 믿고 장사하시는 아주머니, 더덕 깎는 할머니, 노숙자 할아버지 모두 삶의 팍팍함을 조각해 놓은 마냥 주름이 깊게 패어있다. 밤에는 온갖 명품이 즐비한 타임스퀘어의 찬란한 불빛과 그 뒷골목 홍등가의 붉은 등이 참 대비되어 보인다. 이들의 일상에는 ‘평범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겠지. 어디선가 평범함의 향기가 난다.

나는 서울이 싫다. 나는 솟아오른 고층빌딩을, 쉴 새 없이 찾아오는 미세먼지를, 쾌쾌한 매연을, 퇴근길의 신도림역을, 만원 경의중앙선을, 먼저 앉으려고 닥치는 대로 밀치는 개저씨를, 끊이지 않는 공사 소음을, 온 곳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광고들을, 따스한 방 한 칸 허락하지 않는 살인적인 집값을 혐오한다. 통학의 후유증이려나. 이곳에서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3.

온기가 사라진 도시에서 사람들은 쉽사리 ‘동상’을 입는다. 산업사회 이전에 정신병동은 없었다. 자본주의의 톱니에 이곳저곳 갈려 병원을 찾지만,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건 항우울제 처방뿐. 심리치료나 요양병원도 임시방편일 뿐. 잃어버린 온기를 채워 줄 수 있는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나는 그 역할을 뜨끈한 밥 한 끼가 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 면이나 빵도 좋다. 사람의 손길이 가득 담겨 곳곳에서 손맛이 느껴지는 따스한 식사라면 뭐든 오케이.

얼마 전, 「심야식당」을 봤다. 차가운 도시에서 이곳저곳 상처 입은 사람들이 심야식당으로 하나 둘 찾아오고, 식당의 주인 ‘마스터’는 그냥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며 요리를 만든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낫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약과 의사가 아니었다. 손길이 닿은 따끈한 식사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

마스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힘들어 찾아온 누군가에게 같잖은 충고 대신에 뜨신 밥 한 끼 대접하는 그런 사람. 막 지어진 현미밥 같은 사람.


4.


마스터는 아니지만 잠깐 마스터 행세를 한 적이 있다. 작년 3월, 기숙사에 들어가며 남몰래 속앓이를 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고 욕심부려 꽉 채운 시간표는 나를 늘 피곤에 찌들게 했다. 대학생활의 낭만이 사라지는 데는 한 달이면 족했다. 나를 견디게 했던 건, 일과를 마치고 공용 주방으로 뛰어가 돌솥에 쌀을 안치며 친해진 친구들과의 식사였다. 기껏해야 국 몇 개, 반찬 몇 개가 내가 할 수 있는 요리의 전부지만 그뿐이라도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 한기를 마쳤다. 방학을 맞아 나는 집으로 왔다. 혼자 있을 때도 요리를 하겠거니 싶었는데, 웬걸.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생각하니, 나는 대충 때우는 걸 좋아했다. 나를 위한 가장 사치스러운 음식은 계란 두 개 넣은 라면이다.

그렇다고 남을 위해서만 요리하는 건 아니다. 남을 위해서라, 맞긴 한데 보고만 있어도 내 배가 부르니 남만을 위한 건 아니지. 그때가 그립다. 살인적인 집값을 이겨내기 위해 총알을 모으고 있다. 하루빨리 돈을 모아 넓은 부엌이 있는 집을 구해야지. 전쟁터같은 서울의 생활에 지친 친구들에게 든든한 밥 한 끼로 잃어버린 온기를 불어넣고 싶다. 언젠가 두 손 가득 장을 봐 온 후, 밥을 안치며 톡방에 메시지를 하나 툭 보내리라. “※번개모집! 밥 팟 긴급 소집! 굶주린 이들은 7시까지 우리 집으로!!”




이 글은 [어딘글방]에 참여하면서 올해 유월에 쓴 글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산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