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입장은 다양하고 세상과 사회는 복잡하다.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상대주의의 늪에 빠진지도 모르겠다. 인정하자. 내리막이다. 늘 좋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행복과 고통의 시소에서 다시 기울 때가 있는 것이니까. 번뇌가 나를 옥죈다.
폴라니를 읽으면서, 따사로운 햇살아래서 스파니랜드 법에 대해서 주욱 읽어나갔다. 도대체 내가 저 18세기 말미의 구빈법을 어저다 들여다보고 있는가 싶으면서도, 끝내야지 하는 생각에 계속 읽어내려간다.
아니, 같은 역사적 사실을 보는 시야가 왜 이리 달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진보인가. 아니, 진보는 가능한가. 인위는 필요한가. 무위가 답인가. 그렇다고 현실을 좌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란 것이 이토록 크고 복잡하고 어려운 유기체일 줄이야. 이 변수들의 총체로 이루어진 사회로 과학이 가능한가? 사회과학이 어떻게 힘을 쓸 수 있지?
방황 중이라 말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는 것, 당장 남은 하루의 시간을, 그것도 엄청 귀하고 아까운, 어떻게 보내야할지 모르겠다. 할 건 많은 것만 같은데 그걸 인생의 총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그 핑계 되고 미루기를 몇 번, 학자가 되겠다 거창한 포부를 내비췄으면 좀 참고 앉아서 할 필요도 있지 않은가 작은 채찍질을 한다. 근데 이 스스로의 갉음이 본래의 설렘과 감동까지 갉아먹는 것 같아 책을 중간에 덮었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공부는 무릇 즐거운 것이여야 한다. 그런데 이 몹쓸 번뇌들로 그 본연의 것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슬픈 것이 어디있겠는가.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게 참 중요하게 다가온다.
자기시야에 매몰되어 있어 다른 이야기들이 안 들린다. 해야한다는 강박에 쫒기고 있어 시간들을 음미하지 못한다. 방금의 애인과의 전화에서 되도 않는 소리를 늘여놓았다. 답답함과 막막함을 전염시켰다. 번뇌는 나에게도 해롭고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도 해롭다. 논리(라 쓰고 개소리라 부른다)들을 무덤에 던져놓고, 번뇌들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독인다면 남는 건 소중함으로 가득한 사랑이다.
자. 퓨즈를 끊자. 지금 끊어버리지 못하면, 남아야지 하는 관념의 올가미에 걸려 부동의 자세로 앉아있더라면, 결국 망가지고 말테다. 확실성의 세계에서 불확실성의 실현으로. 모든 투두리스트를 지워버리자. 노트북의 전원을 꺼버리고 가벼운 가방만 들고 훌쩍 떠나버리자. 인생 좀 더 막살자. 동전을 챙긴다. 나의 선택을 너에게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