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by 노마 장윤석

질문은 한결같다. 어디에 어느 방향으로 서 있어야 하는가. 이거다 싶다가도, 이게 아니다 싶고, 잡은 것 같으면서도 놓친 것 같고, 확신하면서도 흔들리고 그런다. 올바른 길로 동지들과 함께 걷고자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저마다의 생각도 달랐다. 이루자 했던 꿈은 일이 되자 힘겨워졌고, 간직하고 싶었던 마음은 나날이 잃어가고 있다. 굳은 다짐은 쉴 새 없이 흔들리며 희미해지고, 호언장담은 이불킥이 되었다.

동지 루에게 화가 났다. 존경하고 믿었기에 그 화가 짙었다. 루는 내가 인정하는 학자다. 그의 통찰과 식견, 일침은 안일에 젖은 나에게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씌우곤 했다. 그래서 더욱 화가 크다. 그의 태도와 말들에서 엿보이는 확고함과 확실함에 화난다. 화를 내기로 했다. 한판 붙기로 했다. 마음을 살피고 언어를 정돈하고 있다. 과학, 합리, 보편성, 오만과 편협에 대한 이야기다. 방향과 감수성이 부재한 유물론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한, 무엇이 괄호 치기 되고 다루어지지 않고 비가시화 되는지에 대한, 수로 이루어진 세계-보편성의 폭력과 폭압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확실성의 세계에서 불확실성을 말하려 한다.

부족함과 미숙함을 잔뜻 탓했다. 다 엎어버리고 싶다고, 낡은 사회과학과 편협한 담론을 뒤집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나는 김상봉도 이경룡도 되고 싶다고. 뛰어난 학자이자 인격적으로 깊은 사람도 되고 싶다고. 민은 따스한 야식을 내주었다. 100인분 세상 바꾸려는, 100편 논문 쓰려는 욕심 조금 내려놓으라 했다. 정리되기를 바란다 했다. 링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것 같다는 찝찝함이 있었지만 갇혀 있음을 보아준 그에게 고맙다. 경계하고 있다.

기후위기 세미나를 마치면 우울하다. 그래서 좋다. 함께 우울해 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 있나. 거짓 웃음과 외면의 기쁨이 위선과 가식처럼 느껴진다. 혼자 우울하면 울적하니 함께 우울해하는 게 낫다. 동지 우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곧 보트에 타게 될 사람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주는 거라 했다. 우는 기후위기를 동남아에서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다. 그들을 두고 온 부채감에 시달린다 했다. 곧 많은 눈물과 피가 흐를 거다. 20년 안에 10억 명의 난민이 발생한다. 문명을 유지했던 토대에 금이 커져가고 있다. 실존적 위협을 실존적으로 자각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내다보아야 한다.

금, 규는 설리 이야기를 하며 슬픔이 짙게 배인 표정을 지었다. 뭐 할 의욕이 안 난다고 했다. 규는 아이돌이 이 비루한 시대의 우리들에게 희망 같은 존재였다고, 우리들은 평소에 팝이나 인디노래를 듣다가도 가장 행복하고 흥겨울 때는 그들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냐고. 곧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잠잠해지고, 우리는 희망을 잃은 표정으로 살아가려나 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참 희망차기 어렵다. 하늘은 원망스럽게 맑다. 외적으로 무너지고 내적으로 망가지는 기분이다.

앎은 앓음이라지만, 세련된 투병일지가 되면 안 된다고 누가 그랬다던데, 그러나 투병일지라도 좋으니 함께 앓고 써나가자. 너가 아니라면 어찌 힘을 내고 삶을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 너도나라 서로주체성의 이념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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